마추피추 Machupicchu
1911년 7월 24일, 새벽
잉카 마지막 도시인 빌카밤바를 찾아 하이럼 빙엄 일행은 발 디딜 곳 조차 없는,
뱀들이 우글거리는 우루밤바강 계곡의 가파른 벼랑을 오르고 있다.
24 July 1911, Dawn.
'Leaving the stream, we struggled up the bank through a dense jungle, and in a few minutes reached the bottom of a precipitous slope. For an hour and twenty minutes we had a hard climb. A good part of the distance we went on all fours, sometimes hanging on by the tips of our fingers. Here and there, a primitive ladder made from the roughly hewn trunk of a small tree was placed in such a way as to help one over what might otherwise have proved to be an impassable cliff. In another place the slope was covered with slippery grass where it was hard to find either handholds or footholds. The guide said that there were lots of snakes here. The humidity was great, the heat was excessive, and we were not in training.'
오후가 되어서야 인디오 소년의 안내를 받은 빙엄 일행은
해발 2,000m가 넘는 이 안데스 산꼭대기에서 잉카의 화려한 문명과 마주하게 된다.
잃어버린 잉카제국의 도시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24 July 1911, Early afternoon.
'Richarte and Alvarez sent a small boy with me as a "guide".
He urged us to climb up a steep hill over what seemed to be a flight of stone steps.
We came to a great stairway of large granite.
Only a really small man could have passed along it in the time of the Incas.'
'Our guide led us along one of the widest terraces, and we made our way into an untouched forest beyond. Suddenly I found myself confronted with the walls of ruined houses built of the finest quality of Inca stone work.
It was hard to see them for they were partly covered with trees and moss, the growth of centuries,
but in the dense shadow, hiding in bamboo thickets and tangled vines, appeared here an there walls of white granite ashlars carefully cut and exquisitely fitted together. What a marvel!
Taken From 'Lost city of the Incas'
1531년 11월16일,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스페인 왕의 사절로 왔다고 하자,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왈파는 반가히 그를 맞이한다.
그러나 피사로는 유럽의 발달된 무기를 이용해 황제를 포로로 잡는데 성공한다.
사로잡힌 아타왈파 황제는 자기가 갇힌 방을 가득 채울 만큼 황금을 줄 테니 살려 달라고 사정한다.
그 방은 높이가 7m, 너비가 6m나 되었지만, 두 달 만에 황금 200상자, 은 20상자, 보석 60상자를 모아 채운다.
하지만 피사로는 황금을 받았는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황제를 처형시켜 버린다.
슬픔에 젖은 잉카인들은 분노에 떨며 뿔뿔이 흩어져, 밀림으로 숨어들어갔다.
스페인군의 꼭두각시로 황제에 오른 망코잉카는 기회를 엿보다, 제국의 수도 쿠스코의 삭사이와만에서 봉기한다.
그러나 전투의 승리는 스페인군으로 가고, 잉카군은 더 깊은 오얀따이땀보로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스페인의 침입은 오얀따이땀보에서도 밀어내 잉카는 우루밤바강 기슭의 빌카밤바로 도망가 스페인군과 최후까지 대적한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망코잉카가 살해되고, 1571년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가 스페인군에 처형되자,
40여년에 걸친 잉카의 저항은 결국 막을 내리고 사라져간다.
그로부터 340년이 지난 1911년 하이럼 빙엄에 의해 마추피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마추피추가 망코 잉카가 최후까지 버텼던 빌카밤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이 그렇게 빌카밤바를 찾아 나선 것은, 그곳에 숨겨진 잉카의 황금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추피추는 빌카밤바도 아니고, 잉카인이 먼저 세운 도시도 아니었다.
빙엄의 발굴보고서에 잉카시대 이전에 만든 옹기와 접시가 많이 발굴되어다고 나와 있고,
1988년 카본 테스트를 해보니, 이미 마추피추에는 서기 800년경에 정착해 산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잉카 이전에 세워져 버려졌던 마추피추를, 쫓기던 망코잉카가 다시 건설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황금을 찾지 못한 유럽인인에게는 그곳이 황금의 도시가 아닐 수가 있으나
오늘날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마추피추는 잉카의 후예들에게 황금보다 더한 것이리라..
하이럼빙험은 이 마추피추 탐험을 'Lost City of the Incas'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는데,
그 이후로 마추피추는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가 되었다.
Ritual Fountains 잉카제국은 사라져도 물줄기는 아직 그때 그대로 흐르고 있다.
the House of the Guadians
Agricultural Terraces
Temple of the three windows
와이나피추 Huayna Picchu
항상 마추피추 사진의 뒷 배경이 되는 우뚝 솟은 봉우리가 와이나피추이다.
'늙은봉우리'라는 마추피추와는 반대로 와이나피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와이나피추를 오르는 길..
와이나피추에서 바라본 마추피추
지그재그 모양으로 된 도로로 지금은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진의 도로 왼편에 세로로 흘러내린 흔적은 산사태가 나서 된 것이다.
때문에 자연과 유적 보호차원에서 잉카트레일은 매년 제한된 인원만이 가능하며
지금 이렇게 올라가고 있는 와이나피추의 경우, 하루 200명, 오후 2시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와이나피추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 좁은 바위통로를 통과해야만 한다.
잉카제국의 잃어버린 도시..Machu Picchu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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