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승현] “감옥에 가더라도 환자는 치료해야제.”
무면허 한의사 장병두(92·사진)씨의 기이한 법정 투쟁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21세기 화타(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의)'라고 불린다. 29일로 예정됐던 대법원 상고심 선고는 장씨 측의 변론 재개 요청으로 연기됐다. 장씨는 1,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치료 행위가 왜 죄가 되느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장씨는 2006년 검찰의 기소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그가 전북 군산 지역에서 '화타'라고 불릴 정도의 명의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장씨는 호적상 나이가 10살 어리게 등재돼 실제 나이가 102세라고 한다. 현존 최고령 피고인인 셈이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궁중 전의였던 외할아버지에게서 의술을 배우고, 17세 때 지리산에 들어가 민중 의술과 도학을 익혔다는 이력도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이력과 관계없이 장씨를 부정 의료업자라고 판단하고 기소했다. 무면허 한의사임에도 3000여 회에 걸쳐 환자들에게 한약을 조제해 주고 약 14억원의 치료비를 챙긴 혐의(보건범죄단속법 위반)를 적용한 것이다.
검찰이 그를 기소하자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처벌하면 안 된다”며 진정과 호소가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항소심 법정엔 현직 대학 교수·교사·약사·공무원 등 번듯한 사회인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재판부에 “생명의 은인인 할아버지를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대학 교수는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다가 장병두 할아버지의 약을 먹고 놀랍게 통증이 사라져 강단에 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장씨에게 치료의 비법을 공개해 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환자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장씨는 “내 의술을 의심하는 사람에겐 말해 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의 비방에 대해서는 '100년 묵은 나무' 등 희귀한 약재를 사용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특정 시술 방법으로 어떤 질병을 상당수 고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에 의해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은 의료 행위는 항상 국민 보건에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장씨의 상고심 변론을 맡은 엄상익 변호사는 “장씨의 의술은 현행법 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장씨에게 환자를 치료할 권리를, 환자들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대도' 조세형과 '탈옥수' 신창원의 변호인이었던 인권 변호사 출신인 엄 변호사는 장씨를 변론할 추가 증거를 준비 중이다.
불치 환자를 치료해서 그 증거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 역시 통풍을 치료받고 있다. 엄 변호사는 “장씨는 현재 모처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다시 처벌을 받더라도 환자들을 계속 치료하겠다는 게 장씨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