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하지만 이 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두향을 향한 깊은 연정을 보여주는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 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눈 속의 매화 설중매(雪中梅).
천지는 눈 속에 하얗게 얼어 붙었는데 홀로 꽃을 피우니,
설중매(雪中梅)는 고매한 선비정신에 비유되어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그림이나 시 속에 많이 등장하여 칭송받던 꽃이었다.
또한 설중매는 선비 정신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기생들도 다투어 제 이름을 설중매라 하였다.
'健康 > 아름다운 야생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미꽃 (0) | 2009.02.22 |
---|---|
버들 강아지 [폄] (0) | 2009.02.22 |
아름다운 꽃 - 성공하는 사람들 중 (0) | 2009.01.10 |
진주서 14㎏짜리 '적하수오' 발견 (0) | 2009.01.05 |
가을에는 국화가 피는 구나! (0) | 2008.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