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아름다운 旅行

전설도 사라지고 독일식 계산법만[폄]

나 그 네 2010. 5. 31. 12:32

 전설도 사라지고 독일식 계산법만

로렐라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나는 알지 못하네/왜 내가 그리고 슬퍼하는지/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한편/내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네…

 로렐라이 언덕에선 이제 더 이상 전설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는다. 뱃사공을 홀렸던 금발의 요정도 사라져 버렸고, 시인 하이네의 탄식조차도 뱃고동에 묻힌 지 오래되었다.

 독일의 시정(詩情)이 넘치는 라인강변의 로렐라이 언덕에 올라가본 사람은 누구나 실망부터 한다고 소문나 있다.

 하이네의 시어(詩語)로 꾸며진 바위는 서울의 북한산 계곡에 널려 있는 돌들보다 아름답지 못하며, 벼랑에서 내려다보는 강변풍경 또한 우리네 남한강 여울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적다.

 다만 강변 계곡 군데군데 요새처럼 서 있는 중세의 고성(古城)들과 수도원 풍경들이 영주할거(領主割擧)시대의 '전설의 고향'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혼탁한 강물을 감싸주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쓸쓸하기조차 한 이 라인언덕이 어째서 독일 관광의 명소로 알려져 있을까? 그 이유는 모젤 포도주처럼 담백한 독일 전원의 낭만과 투박하면서도 넉넉한 인심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각나라 수송선과 유람선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활기찬 장면을 통해 IC고속열차와 아우토반으로 상징되는 독일의 경제 저력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보면 라인강은 독일에게만 혜택을 주는 자연의 젖줄은 아니다. 알프스 깊은 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지를 거쳐 북해로 흘러들기 때문에 서유럽 6개국이 공동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강인 셈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마인츠와 본, 쾰른 사이의 라인강유역이 돋보이는 까닭은 이 강을 번영의 지렛대로 이용했던 독일사람들의 근면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중세 암흑시대 때 '니벨룽겐의 보물'이 버려졌다는 라인강에서 벤츠와 BMW, 지멘스로 통하는 세계 일류의 경제 부흥을 이뤄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초토화된 라인강변에서 세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담뱃불을 붙일 성냥을 켜지 않았다는 그 유명한 일화가 결코 '과대포장'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도 이곳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라인강변에 있는 각 도시의 대학 게시판에는 주말마다 '베카베(BKB)'라는 독일식 차함께타기 안내문들이 나붙는다. 차 있는 학생이 주말을 이용해 뮌헨 방면으로 여행하고자 할 때 같은 방면의 동행자를 찾기 위해 안내쪽지를 붙여놓는다. 차없는 학생들도 자신의 목적지를 당당하게 붙여놓고 원하는 차를 골라잡아 '합승'할 수 있다.

 이같은 독일식 카풀제의 특징은 차주나 동승자 모두가 기름값을 똑같이 나눠 낸다는 것이다. 차주라는 프리미엄없이 공평하게 분담해 여행경비를 줄인다는 합리적인 독일식 계산법이다.

 라인지역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또 하나의 저력을 치밀한 계획과 준비성이었다.

 쾰른에서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유로시티(EC)기차를 탔을 때였다. 운행시간이 정확하고 쾌적하기로 소문난 독일 기차안은 여름 휴가철인데도 승객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차창밖으로 라인강변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는 코블렌츠와 마인츠 사이의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슈톨첸펠스성(城)·쥐성·고양이성 등 중세의 성채들이 요새처럼 서 있고 구릉사이로 포도밭이 펼쳐진 강변 풍경을 보면서 일본인 관광객 몇 사람은 연신 캠코더를 찍으며 '백 튜더 프로이센'으로 빠져들었다.

 승객 중에서 우리의 시선을 끈 것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세미나 때문에 간다는 쾰른 노교수와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으로 휴가를 즐기러 간다는 5인 가족이었다.

 콜 수상처럼 거구인 노교수는 줄곧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주변 관광객들의 움직임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피렌체 지방을 집중적으로 여행할 계획이라는 5인 가족 역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우체국에 근무한다는 30대 후반의 부인은 11살짜리 둘째 아들에게 피렌체 예술에 관해 설명했고, 호기심 많은 그 아들은 쉴새없이 질문을 해댔다. 답변이 궁해진 그 부인은 이탈리아 미술책까지 꺼내 '시청각적'으로 아들의 이해를 도왔다.

 여행지에 대해 철저히 알고 떠나서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온다는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지난 해 독일 사람들이 여행경비로 뿌렸다는 5백60억 마르크가 결코 '과소비'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글 : 구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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