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아름다운 산하

[스크랩] 남강 발원지 답사기

나 그 네 2010. 8. 13. 14:37

 

하천과 문화 Vol. 2 No.2 ● 봄

 

남강 발원지 답사기

일시 : 2006년 3월 18일
이 용 수 | (주) 도화종합기술공사 수자원개발부 (lyswater@dohwa.co.kr)

 

1. 남강 개요

  남강(南江)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남덕유산(EL. 1,507.4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면서 지류인 덕천강(德川江)을 합하고, 진주에서 북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함안천을 합하고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사이로 낙동강에 합류하는 유역면적 3467.52㎢. 하천길이 186.3㎞인 하천이다. 

<그림 1 > 남강 유역도

 남강은 서부 경상남도의 동맥으로서 임천, 위천(渭川), 양천(梁川), 덕천강, 빈영천(瀕穎川), 함안천(咸安川) 등의 지류가 있다. 남강 상류지역의 운봉, 산청(山淸), 함양, 생초, 안의(安義), 서상(西上) 등지에 분지를 형성하여 지방중심지가 발달하고, 하류지역에는 진주평야를 비롯한 충적평야가 분포한다. 북쪽에 소백산맥이 있어 여름에 남서쪽에서 오는 저기압이 이 산맥에 부딪혀 지형성강우(地形性降雨)가 많다. 옛날에는 하류지방에 수해가 잦았으나 1970년 남강댐을 건설하고 이후 1999년 보강공사를 실시함으로써 홍수조절 및 남강댐하류 와 낙동강 하류지역을 관개하고, 진주와 인접한 산업단지에 전력과 용수를 공급한다. 

조선 성종 때 지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강 : 진주 남쪽 1리에 있다. 물 근원이 둘인데, 하나는 지리산 운봉현 경계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주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의령현 경계에서 정암진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 영조 때 이긍익이 지은 「연려신기술」지리전고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진주의 촉석강(矗‘石江)은 그 근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지리산 북쪽 운봉현 경계에서 나와서 함양의 임천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용유담(龍遊潭)이 되고 엄천이 된다. 이물은 산청 경계에 이르러 안의의 동천하류와 합하여 진주 서쪽에서 우탄(牛灘)이 되며 단성에 이르러 신안진(新安津)이 되는데 삼가의 여러 냇물이 흘러 합쳐서 진주 서쪽에 이르러 소남진(召南津)이 된다.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와서 산을 돌아 동쪽으로 흐르다가 진주 서쪽에서 합쳐서 청천강(靑川江)이 되며 성 아래에 이르러 촉석강이 된다. 다시 동쪽으로 의령에 이르러 정암진(鼎巖津)이 되며 영산의 기음강(岐音江)에 이르러 낙동강과 합한다’

  즉 1,500년대에는 진주 ‘남강’으로 불리었다가 임진왜란을 지난 후 ‘촉석강’으로 뷸리웠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조선조 말 고산자가 그린 ‘대동여지전도’에는 다시 ‘남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주 남강은 진주시 남쪽으로 돌아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에는 영강(濚江)이라고도 불렸다. 즉 조선조 영조 때 이중환이 지은 「擇里志」에 ‘안음의 동쪽은 거창이요 남쪽은 함양과 산음인데 지리산 북쪽에 있다.......  네 읍의 물을 합하여 영강(濚江-현재의 남강)이 되는데 진주읍 남쪽을 돌아 낙동강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1)

  남강의 발원지는 고문헌을 제외하고 현대의 각종 문헌은 대체적으로 통일되게 함양군 서상면 또는 남덕유산이라고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부 문헌 및 지자체에서는 남강의 발원지를 지리산으로 표기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각종 고지도상의 남강 발원지를 살펴보면 「대동여지도」상에는 남덕유산을 봉황봉(鳳凰峯)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또한 동시대의 필사본 지도인「동여도」에는 역시 남덕유산을 봉황봉으로 표기하고 아래의 하천에 ‘진강지원(晋江之源)’으로 표기하여 진주 남강의 발원지임을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청구도」상에는 현재의 영각사의 말사인 봉황사가 표기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청구요람」에는 남덕유산이라는 표기는 없고 덕유산이라는 대표명칭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림 2> 대동여지도

 

 

<그림 3> 동여도

 

<그림 4> 청구도

<그림 5> 청구요람

현재 남강의 지류로는 국가하천 및 지방1급 하천으로 남강, 덕천강, 함안천, 함양위천 등이 있으며 그 외 222개소의 지방2급 하천을 포함하고 있다. 

 <표 1> 남강 법정하천 현황 

하천명

하천등급

하천연장(㎞)

유역면적(㎢)

비고

남강

국가

145.40

3,467.52

지방2급

222개소

덕천강

국가

2.90

445.14

함안천

국가

9.32

155.53

남강

지방1

18.00

500.47

함양위천

지방1

9.60

178.88

 

<그림 6 > 남강 표고분포도

 

 

<그림 7 > 남강 법정하천 현황

남강의 발원지가 있는 남덕유산은 덕유산 국립공원 관할하에 있는데 덕유산국립공원은 면적이 231.65㎢로서 전북 무주군, 장수군, 경남 거창군, 함양군 등 2개 도 4개 군에 걸쳐있으며, 1975년 2월 1일 강원도 오대산과 더불어 1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림 8> 덕유산 국립공원(http://www.knps.or.kr/togyu/)

  덕유산은 예로부터 '덕(德)이 많아 넉넉한 산, 너그러운 산'으로 불리고 있는 덕유산은 해발 1,614m의 향적봉(香積峰)을 주봉으로 삼고 무풍의 삼봉산 (三峰山, 1,254m)에서 시작하여 수령봉(水嶺峰, 933m), 대봉(大峰, 1,300m), 지봉(池峰, 1,302m), 거봉(居峰, 1,390m), 덕유평전(德裕平田, 1,480m), 중봉(中峰, 1,594m)을 넘어 향적봉에 올랐다가 다시 중봉, 덕유평전을 거쳐 무룡산 (舞龍山, 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산(南德裕山, 1,508m)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달리는 덕유연봉(德裕蓮峰)들이 장장 100리 길의 대간(大幹)을 이루며 영·호남을 가르는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 하나다. 

삼남을 굽어보는 덕유연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르면 북으로 가깝게는 적상산(赤裳山, 1,038m)을 아래에 두고 멀리 황악산(黃岳山), 계룡산(鷄龍山)이 보이며, 서쪽은 운장산(雲長山), 대둔산(大屯山), 남쪽은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智異山), 반야봉(般若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가야산(伽倻山), 금오산(金烏山)이 보인다.

 

<그림 9> 영각사

향적봉 정상에서 발원한 옥수가 흘러내리며 구천동 33경을 만들고, 북사면의 무주리조트, 서남쪽의 칠연계곡을 이루어 수많은 탐방객을 맞이하는 덕유산은 두문산(斗文山, 1,051m), 칠봉(七峰, 1,161m), 거칠봉(居七峰, 1,178m) 등의 고봉(高峰) 등을 거느리고 봄철이면 칠십리 계곡에 빨간 철쭉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피서객을 손짓하며,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으로 만산을 물들이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뒤덮인 설경 속에 설화를 피워 신비경을 이룬다.

  또한, 발원지로 오르는 초입에는 신라시대 헌강왕 3년(877년) 심광대사가 창건한 영각사(靈覺寺)가 위치한다. 영각사는 불교 최상승 법문인 화엄경판을 소장하였던 사찰이나 6.25때 화엄경판을 모두 화재로 읽은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사찰이다.  

 

2. 현지답사

  2006년 3월 13일 더 이상의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하천협회”로 하여금 입산금지 기간에 덕유산 국립공원을 답사할 수 있도록 “국립공원관리공산 덕유산 사무소”에 필요한 공문을 발송토록 한 결과 15일 회신이 왔다. 산불방지 기간의 입산금지 기간임을 고려하여 답사시 필요한 조치와 안내를 받으라는 지시와 함께 답사예정지인 남덕유산의 정상부근은 아직도 눈이 많으니 겨울 등산 채비를 갖추라는 친절한 안내와 입산을 허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06년 3월 17일 때늦은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왕 가기로 한 김에 그냥 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밤11시쯤 집에서 답사에 필요한 장구를 챙기고 차를 몰아 경부 고속도로를 내려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달려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서상 I.C.를 통과하여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육십령 인근까지 가도록 인근에 숙박할 여관이 보이질 않아 ‘이게 아닌데’ 하면서 할 수 없이 육십령을 넘어 장수군 장계면 소재지까지 갔으나 여기서도 여관은 보이질 않아 할 수 없이 옆에 보이는 파출소를 들어가 인근의 여관을 물으니 자기도 여기로 발령받은 지 3일째라고 하면서 파출소 내의 서류를 뒤져 여관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걸어보니 장계는 여관이 없고 장수읍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몰아 장수까지 가서 허름한 여관에 짐을 풀었다. 장수는 금강의 발원지가 남쪽의 수분리에 있고 또한 서쪽의 산을 넘자마자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는 원신암 마을이 있으니 내일 답사할 낙동강의 남강 발원지와 함께 우리나라 주요한 강의 발원지 3개의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짐이 무척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깥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어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 늦은 잠을 청하였다

  2006년 3월 18일 아침 밤늦게 도착한 탓에 약간 늦게 일어났다. 장구를 챙기고 부지런히 차를 몰아 서상으로 향하던 중 길옆의 식당에서 김밥 두 줄을 사서 옆좌석에 놓고 아침을 대신하면서 장계를 지나 육십령을 넘어 남덕유산의 초입인 상남리 영각 매표소를 향하였다.

  날씨는 비가 그치었지만 아직도 주위의 나무에는 많은 물기가 있었으며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20m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드디어 영각 매표소에 도착하여 직원에게 가져온 공문을 내 놓으니 연락받고 기다렸다고 하면서 쉽지 않은 산행일 것 같다고 하면서 내가 묻는 이것저것 궁금한 점에 관해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사실 떠나오기 전 사전 조사에서 지도를 살펴본바 남강의 발원지는 ‘덕유교육원을’을 중심으로 남덕유산을 향하여 왼쪽의 계곡인 ‘절골’로 올라가 남덕유산 정상으로부터 서남쪽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 관리사무소’와 ‘국립공원 관리공단 덕유산 사무소’에서 남강의 발원샘 이라고 찾아 표식까지 설치한 ‘참샘’은 ‘덕유교육원을’의 오른쪽 계곡인 ‘은제골’로 올라가 남덕유산 정상부로부터 동남부에 있는 1437봉 아래에 있는 것으로 되어 의문이 있었고 이번 답사에서 진위를 판별하리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따라서 먼저 ‘절골’로 올라가 발원지를 확인하고 남덕유산 정상을 밟은 다음 내려오는 길에 ‘은제골‘의 참샘을 확인하는 답사순서를 정하고 먼저 경상남도 교육위원회’ 관할 ‘덕유교육원’ 정문 옆에 차를 주차하고 정문을 지나 야영장 쪽을 향하여 남강 발원지로 향하는 첫발을 내 디뎠다. 

드디어 발원지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절골’에 들어서는 앞에서 펼쳐진 광경 때문에 나는 너무 놀랐다. 입산금지 기간이 이때 인근 주민들의 소득사업인지는 모르지만 고로쇠 나무 수액채취를 위하여 계곡의 초입에서 앞으로 전개될 아주 높고 멀리 있는 계곡의 상류부까지 보이는 나무마다 구멍을 내고 파이프를 연결하여 수액을 채취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고로쇠나무 수액이 사람의 몸에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 수려한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을 해치며 족히 3km는 되는 계곡을 전선같이 생긴 파이프로 온통 연결하여 채우고 있단 말인가?

 

<그림 10> 계곡을 뒤덮은 고로쇠 수액 채취 파이프

  답사 시작부터 못 볼 것을 본 느낌이었지만 계속해서 상류로 계곡을 바위돌덩어리를 밟으며 올라갔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바위는 촉촉이 젖어 있었으며 물은 바위틈을 헤치며 우렁찬 소리를 내며 계곡을 빠져나가고 있었으나 주위는 온통 안개가 자욱해서 멀리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길은 공식적으로 폐쇄된 등산로여서 산죽 덤불과 이름 모를 들풀, 덩굴식물, 덜 자란 나무로 얽혀 있고 습기로 인한 미끄러움에 한발 한발 내 디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힘든 발걸음을 한발 두발 내디디며 올라가면서 동안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무로 인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한참을 헤맨 적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남아 있는 잔설로 인해 눈구덩이에 빠지곤 하면서 계속해서 발원지를 향해 올라갔다.

  그렇게 힘든 걸음을 내디디며 올라가길 2시간쯤 하니 드디어 지도상의 하천 시점에 도달하였다. 이곳까지 하천은 지표면을 흐르고 있으며 물소리도 제법 우렁차게 들렸다. 그러나 위쪽을 살펴보니 건기에만 마르는 하천형태를 띠고 있는 너덜지대하천이 뚜렷하게 보였으며 이 하천은 남덕유산 서봉에서 남덕유산 정상으로 향하는 마루금으로 향하여 진행하고 있었다.(GPS좌표 : 북위 35°46′08.1″, 동경 127°40′44.5″)

 

<그림 11> 남강 발원지

  하지만 이곳으로부터는 지난겨울에 내려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뒤덮혀 있으며 군데군데 눈구덩이가 있어 위로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경사도가 너무 심해 앞을 향해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몇 번을 미끄러워 넘어진 다음 할 수 없이 준비해온 아이젠과 스페츠를 차고 어렵게 지그재그형태로 정상을 향하였다.

  다시 2시간을 소모하여 경사 급한 눈길을 올라가니 드디어 발원지라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랐다(GPS좌표 : 북위 35°46′08.4″, 동경 127°40′65.5″). 이 지점은 해발 1,390m 정도 되는 지점으로 정확히는 남덕유산의 정상으로부터 약간 북서쪽에 있으며 지도상의 하천 시점으로부터 약 120m 정도를 더 올라가야만 하는 지점이었다.

  발원지는 그 위쪽 여러 방향에서 지표면을 흐르던 물이모여 한줄기 물줄기를 이루는 시점으로 전형적인 한국하천 발원지 형태를 띠고 있었다.

  주위는 아직 녹지 않은 많은 눈이 쌓여 있었고 일부 나무에는 고산지대 특유의 상고대(나무나 풀에 서리가 내려 눈꽃처럼 된 것)가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드디어 남강 발원지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남덕유산 정상을 밟고 내려가는 길에 ‘참샘’의 위치를 확인하여 새로 찾은 남강 발원지기 진짜 발원지임을 증명하여야 했다.

  다시 1시간을 더 경사진 언덕을 올라간 끝에 남덕유산 정상에 다다랐다(GPS좌표 : 북위 35°46′05.4″, 동경 127°40′77.2″).

 

 

<그림 12> 남덕유산 정상석

  남덕유산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왔으며 안개가 시야를 가려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산 아래를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사진 한 장도 못 찍고 내려가야 했다.

  남덕유산에서 출발지점으로 내려가는 길은 먼저 수십m나 되는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다행히 내려가는 길이어서 망정이지 올라오는 길이였으면 무척 힘이 들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조심 철계단을 내려와 하산길을 재촉하였다.

  하산길은 ‘은제골’로 내려가야 하므로 남덕유산 정상으로부터 동남쪽으로 향하는 마루금을 따라 내려갔다. 몆개의 봉우리를 지나 약 200m 정도 내려가니 130m 좌측으로 ‘참샘’이 있다는 표지가 보였다. 표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니 드디어 ‘참샘’에 다다랐다(GPS좌표 : 북위 35°48′81.9″, 동경 127°40′91.6″).

 

 

<그림 13> 남덕유산 참샘

  ‘참샘’ 주위는 잘 정돈되어 있고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 관리사무소’와 ‘국립공원 관리공단 덕유산 사무소’에서 세워놓은 남강 발원지라는 표지가 있었으며 샘이 발원하는 지점은 화강석 및 철판으로 수원을 보호하는 구조물을 만들어 놓아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다. 물맞은 갈증에 목마른 탓인지 몰라도 시원하고 무색무취의 전형적인 샘물 그대로 였다.

  ‘참샘’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4시 반쯤 되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집에서부터 가져온 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제 목적했던 바는 모두 이루었다.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하산하려면 아직은 1시간은 더 걸어야 하는데 벌써 힘이 빠지면 해지기 전에 하산하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다시 기운을 내어 1시간을 등산로를 타고 ‘은제골’을 내려와 영각매표소에 다다르니 정확히 오후 6시가 되었다.

  영각매표소에 도착하여 직원과 힘들었던 답사길을 얘기하니 친절하게도 차로 ‘덕유교육원’입구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여 염치불구하고 차를 얻어 타고 ‘덕유교육원’엘 갔다.

  아직은 해가 지기 전이어서 바로 차를 몰아 바로 옆에 있는 영각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영각사에 도착하니 사람은 보이질 않고 안개와 해질녘의 희미한 어둠 속에 천년고찰만 고즈넉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얼른 사진을 몆장 찍고 돌아 나왔다.

  사실 아침에 육십령을 넘어오면서는 답사가 끝나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논개묘를 둘러보리라 마음먹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다음에 둘러보기로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내 기억 속에는 남강 하면 진주가 떠오르고 진주 하면 임진왜란의 영웅호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논개가 동시에 떠오른다.

  논개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나 진주에서 왜장을 껴안고 장렬하게 죽은 후 장수출신 의병들이 남강에서 논개의 시신을 건져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속칭 ‘탑시기’라는 곳에 묻었다고 한다.

 

<그림 14> 진주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야후 불로그 :  http://kr.blog.yahoo.com/expo239/658140.html)

남강의 발원지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장수군 대곡리에서 태어나 남강의 중류인 진주에서 죽었고 다시 남강의 발원지 아랫마을인 금당리에 묻힌 논개야말로 남강과 함께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각인을 한 남강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 15> 진주 유등축제 포스터

또한 진주의 남강변에서는 매년 인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서 유래한 진주 유등축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진주 아니면 보기 드문 등(燈)을 이용한 축제이다.

  유등제는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장군이 3,8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크게 무찔러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진주대첩’을 거둘 때 성 밖의 의병등 지원군과의 군사신호로 풍등(風燈)을 하늘에 올리며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로 쓰였으며, 진주성내에 있는 병사들과 사민(士民)들이 멀리 두고 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두루 쓰였던 진주남강 유등은 1593년6월 12만 왜군에 의해진주성이 적의 손에 떨어지는 통한의 ‘계사순의(癸巳殉義)’가 있고 난 뒤부터는 오직 한 마음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와 겨레를 보전하고 태산보다 큰 목숨을 바쳐 의롭게 순절한 7만 병사와 사민의 매운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세세연년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1)

 

<그림 16> 남강 발원지 답사로

출처 : 발원지를 찾아서
글쓴이 : 이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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