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나 길거리 등 병원 밖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이 살아날 확률은 2.5%에 불과하다. 심장 박동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고, 설사 심장이 재박동하더라도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멈췄던 피의 흐름이 갑자기 재개될 경우 장기(臟器)손상이 생길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개발된 것이 체온을 낮춰 인위적인 '동면(冬眠)' 상태로 만든 뒤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게 하는 '저체온 치료법'이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박규남 교수팀이 16일 밝힌 저체온 요법의 치료 실적은 놀랍다. 박 교수팀이 최근 19개월 동안 심근경색증·뇌졸중 등으로 병원 밖에서 심장마비가 왔다가 심폐소생술로 심장 박동이 회복됐지만 혼수상태가 된 164명에게 저체온요법 등의 집중 치료를 한 결과 최종적으로 38명(23.2%)이 생존해 퇴원했다. 일반적인 심정지 환자 생존율(2.5%)에 비해 9배나 높은 수치다.
저체온 치료법의 원리는 이렇다. 심장 박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면 우리 몸의 뇌 세포와 신체 조직은 그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싹 움츠러든다. 그러다 심폐소생술로 심장 박동이 돌아오면서 피가 돌면 세포에는 갑자기 엄청난 압력의 혈류가 들이닥치게 되는 셈이 된다. 이로 인해 심각한 장기 손상이 생긴다. 이른바 '심정지 후(後) 증후군'이다.
이 때문에 심폐소생술로 심장 박동이 다시 돌아와도 사망하는 사례가 절반이 넘는다. 지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2차적으로 난 불에 희생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저체온은 심장 재박동으로 인한 '화재'에 물을 뿌리는 효과를 낸다. 세포와 조직의 신진대사를 완전히 다운(down)시켜 불길을 피하게 한 후 천천히 회복시키는 원리다. 차가운 식염수 주입과 '냉각관' 삽입 등을 통해 체온을 32~34도까지 떨어뜨린다. 이 상태에서 24시간 장기 손상 회복 치료를 한다.
그러고는 한 시간에 0.25도씩 체온을 천천히 올리면 환자는 혼수상태에서 벗어난다. 흥미로운 현상은 환자들의 의식이 과거 기억부터 최신으로 역순(逆順)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전두환이라고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식으로 대답한다.
이같은 현상은 뇌 손상을 입으면 최근 기억을 만들고 활용하는 뇌의 '해마' 부위가 먼저 손상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이 저장되는 뇌 부위는 늦게 파괴되는 경향이 있어 과거 기억부터 재생된다는 것이다.
저체온(低體溫) 요법
심장마비 발생 후 의식을 잃은 환자의 체온을 급속히 떨어뜨려서 '동면(冬眠)' 상태로 만들었다가 천천히 체온을 끌어올려 의식을 되찾게 하는 치료법. 정맥에 차가운 식염수를 주입하거나 혈액을 냉각시키는 특수 관을 혈관 안에 심는 방법을 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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