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합시다!" 쥐의 대답은…
[아르네 네스와의 대화]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오창은 중앙대학교 교수
전라북도 남원 인월면에 '지리산 생명 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지리산과 그 주변에서 이뤄지는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지역 주민과 연대해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리산댐 건설 반대, 구례 산동의 골프장 개발 반대, 지리산 케이블카 건설 반대 등이 그것이다.
그중 지리산 케이블카 건설은 지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현안이다. 환경부가 6월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를 확정하자, 경상남도 산청·함양군,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이 유치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설치에 나선 지방자치단체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라거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길은 케이블카 설치뿐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경제 논리를 앞세운 이러한 주장에 대응해 지리산 생명 연대는 "뭇 생명의 삶의 터전이 훼손" 되는 것에 적극 반대하며, "지금 그대로의 지리산 보존"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역 경제를 내세우는 지방자치단체와 생태 환경 보존을 위해 헌신하는 지리산생명 연대의 갈등은 팽팽한 평행선을 긋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는 하나의 개별적 사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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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네 네스(1912~2009년). ⓒscanpix |
노르웨이의 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Dekke Eide Næss, 1912~2009년)는 근대적 세계관이 파생시킨 보편적 문제로 이러한 사안들을 바라본다. 그는 생태 환경 보존 운동을 개별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하나의 전체로 보는 폭넓은 경험" 속에서 사유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생태학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근본적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르네 네스는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바 없는 철학자이다. 그는 27세의 나이로 노르웨이 최연소 정교수가 된 재능 있는 철학자였다. 하지만, 종신직 교수를 버리고 노르웨이 할링스카르베라는 산 위에 트베르가스타인으로 명명되는 조그만 오두막에 자신을 유폐시킨 이단아였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인 박노자가 그의 이름을 가끔 인용해 한국에 알렸지만, 그의 철학적 비전을 본격적으로 접할 기회는 없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박준식 옮김, 낮은산 펴냄)는 이 독특한 철학자의 이력과 사상을 심층적인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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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데이비드 로텐버그 지음, 박준식 옮김, 낮은산 펴냄). ⓒ낮은산 |
특히, 제7장의 ''깊이'를 정의하기'는 '심층 생태론'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에 대한 치열한 공박이 이뤄지고 있어 이론적으로도 흥미롭다. 제8장 '새로운 눈으로 세상 보기'도 게슈탈트(gestalt) 개념을 둘러싼 아르네 네스와 대담자 데이비드 로텐버그의 논쟁이 팽팽한 긴장 속에 펼쳐진다. 이 부분은 철학적 화두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학문적 진전으로 화합하기 보다는, 화해되지 않는 모호성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읽는 이의 사유를 자극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재능 있는 철학자 아르네 네스는 어떤 도정을 거쳐 심층 생태론의 창시자가 되었을까? 아르네 네스의 사유는 20세기 유럽사를 가로 지르는 정신적 모험의 산물이다. 그는 노르웨이의 부유한 가정인 베르겐 가의 네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나 성장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1930년대 서구 지성사의 핵심적 쟁점이었던 논리 실증주의, 정신 분석학, 행동주의 심리학 등에 빠져들었다. 20대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서클의 학자들 사이에서 논리 실증주의 세미나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정신 분석에 매료되어 철학자의 입장에서 정신병원 환자를 관찰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아르네 네스는 다음과 같은 절절한 언어로 표현해냈다.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것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세계를 보여 준 모든 이들에게는 감사했습니다. 훗날 오슬로 대학교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척 많은 젊은이들이 인류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매우 쉽습니다. 그냥 앉아 있으세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과 함께 앉아 있으세요." 조금만 공감할 수 있다면 엄청나게 간단한 일입니다. 교도소나 병원에 가세요. 그 비명소리들을 듣고 난 뒤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105쪽)
아르네 네스는 비엔나를 떠나, 1938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심리학과에서 동물 행동주의를 연구한 것이다. 그는 '쥐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다른 존재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객관화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고 있는 삶의 측면, 생명의 보편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당당하게 "저는 플라톤에게서 배운 것만큼이나 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독일군에 부역해 고문을 행한 자들과 고문 피해자의 가족들을 면담하는 역할 수행했다. 그리고 유네스코의 요청으로 '민주주의의 의미에 관한 연구'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간디와 레이첼 카슨의 영향으로 심층 생태론을 창시했다. 심층 생태론(deep ecology)은 자연의 일부로 인간의 존재를 파악함으로써 "인간 운명의 불가피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명체에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려는 철학적 노력이 심층 생태론에는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생태계의 일부임을 인식함으로써 세계의 지속 가능성을 발견하는 철학적 사유의 소산이다. 또한, 생태학(ecology)과 철학(philosophy)을 결합한 생태 지혜(eosophy)를 통해 "전 세계에 걸쳐 사회와 문화 구조 안에서 환경 문제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아르네 네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는 '자연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으로 보는 파편화된 세계 인식이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도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인식론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폭력적 행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르네 네스는 "인류가 자신의 행복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세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근대화 과정이 자연에 대한 폭력이었고, 자연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는 것이었다면, 심층 생태론은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긍정적 비전을 생사하는 능력을 고취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르네 네스가 제시하는 '심층 생태론의 8대 강령'은 만만치 않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함께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강령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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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산 |
심층 생태론의 8대 강령 1.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의 번영은 그 자체로 고유의 가치를 갖는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의 가치는 인간에게 유용한가의 여부와는 별개이다. 2. 지구상 생명 형태들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은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인간의 문화 형태도 여기에 포함된다. 3. 인간은 생명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감소시킬 어떠한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4. 인간 생활과 문화의 번영은 인구가 상당히 줄어들 때에만 이룰 수 있다. 5. 현재 인간이 비인간 세계에 하고 있는 간섭은 과도하며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6. 이상의 강령들은 지금까지 인간이 지구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보여 왔던 지배적인 행동 방식을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한 변화는 정치적·사회적·기술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조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7. 부자 나라들의 사상적 변화는 생활의 물질적 기준을 높이기보다는 삶의 질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주가 될 테며 이를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구적 상태가 준비될 것이다. 8. 이상의 강령에 동의하는 이들은 필요한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265~2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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