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당시의 '별난 직업'
아래의 사진들은 '시사포토'지의
1969년 4월호의 기사 내용이다.
지금은 남여차별을 떠나
공유하는 직업들이 헬 수 없을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남여의 직업 구분이 뚜렸했던 시절에
성별을 초월한 별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E2C354FE3F2ED24)
여체를 곱게 다듬는 남자 미용사.
24세의 총각미용사가 여체를 마음껏 주무르는
맛사지를 하면서도 미안하기는 커녕
외려 돈을 받는다는 소개글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4F5354FE3F2EF2A)
창공을 누비는 여류비행사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여자파일럿이었던
김경오 여사를 소개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4569354FE3F2F027)
여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남자디자이너
'꽃밭'(?)에서 사는 직업이라며
의상디자이너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서울에만 남자 디자이너가
20명정도 활약했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101354FE3F2F02A)
처녀대서소
남자대서사들이 다수인 그 때,
필체와 한문실력이 중요한 대서일을 35세의 노처녀가
종로구청 앞에서 노점 대서소를 운영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132354FE3F2F119)
환자의 벗이되는 남자간호원
당시에 간호원 면허증을 갖고있는
남자간호원이 5,6명일 정도로
병원내에서 청일점이었던 모양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501B354FE3F2F322)
핸들잡고 가로수를 누비는 여자운전수
자동차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고
여성운전자가 일반화 된 지금이지만
자가용도 아니고 영업용 여자운전수는
취재의 대상이었다.
처녀운전사로 당시 월급은 만 8천원
![](https://t1.daumcdn.net/cfile/cafe/175E52354FE3F2F317)
노래와 율동을 함께 선사하는 여자 밴드
무대의 악사들이 거개 남자이던 시절,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밴드는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5E2354FE3F2F422)
영감들 틈바구니의 할머니복덕방
주변 복덕방 영감님들의 미움을 샀다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17547E354FE3F2F41F)
구두를 닦으세요- 슈샨 걸
슈샨보이가 아닌 슈샨걸은 이미 흔했던 시절에
사진의 주인공은 슈샨걸이 아니라
두남매의 어머니인 슈샨우먼이었다고.
1965년~1966년의 서울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048354FE3F2F522)
1965년의 미국대사관
인근에 반도호텔이 있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D54354FE3F2F624)
용산 미8군 사령부 영내에 정차하고 있는 통근버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476C354FE3F2F628)
1965년의 반도호텔
인근에 미대사관과 조선호텔이 있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5C9B354FE3F2F615)
한강의 모래톱의 면적이 넓기만 하다.
지금의 동호대교자리
1965년의 한강변의 유엔빌리지 아파트의 미국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