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당시의 '별난 직업'
아래의 사진들은 '시사포토'지의
1969년 4월호의 기사 내용이다.
지금은 남여차별을 떠나
공유하는 직업들이 헬 수 없을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남여의 직업 구분이 뚜렸했던 시절에
성별을 초월한 별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여체를 곱게 다듬는 남자 미용사.
24세의 총각미용사가 여체를 마음껏 주무르는
맛사지를 하면서도 미안하기는 커녕
외려 돈을 받는다는 소개글이다.
창공을 누비는 여류비행사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여자파일럿이었던
김경오 여사를 소개하고 있다.
여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남자디자이너
'꽃밭'(?)에서 사는 직업이라며
의상디자이너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서울에만 남자 디자이너가
20명정도 활약했다고 한다.
처녀대서소
남자대서사들이 다수인 그 때,
필체와 한문실력이 중요한 대서일을 35세의 노처녀가
종로구청 앞에서 노점 대서소를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벗이되는 남자간호원
당시에 간호원 면허증을 갖고있는
남자간호원이 5,6명일 정도로
병원내에서 청일점이었던 모양이다.
핸들잡고 가로수를 누비는 여자운전수
자동차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고
여성운전자가 일반화 된 지금이지만
자가용도 아니고 영업용 여자운전수는
취재의 대상이었다.
처녀운전사로 당시 월급은 만 8천원
노래와 율동을 함께 선사하는 여자 밴드
무대의 악사들이 거개 남자이던 시절,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밴드는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영감들 틈바구니의 할머니복덕방
주변 복덕방 영감님들의 미움을 샀다고.
구두를 닦으세요- 슈샨 걸
슈샨보이가 아닌 슈샨걸은 이미 흔했던 시절에
사진의 주인공은 슈샨걸이 아니라
두남매의 어머니인 슈샨우먼이었다고.
1965년~1966년의 서울
1965년의 미국대사관
인근에 반도호텔이 있었다.
용산 미8군 사령부 영내에 정차하고 있는 통근버스
1965년의 반도호텔
인근에 미대사관과 조선호텔이 있었다.
한강의 모래톱의 면적이 넓기만 하다.
지금의 동호대교자리
1965년의 한강변의 유엔빌리지 아파트의 미국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