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마는 자식 농사처럼 맘대로 안되는 일이 또 있을까요? 흔히들 아버지와 아들 간 조합의 유형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호부호자(虎父虎子)! 호랑이 같은 아버지에 역시 호랑이 같은 아들, 다시 말해 아버지도 훌륭하고 아들도 잘난 한마디로 '부전자전'의
유형입니다. 모든 가정이 그토록 원하는 이상적인 부자 관계로 가문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둘째, 호부견자(虎父犬子)! 아버지는 호랑이인데 아들은 개, 즉 아버지는 뛰어난데 자식은 형편없는 한마디로 자식 농사 망친 경우입니다.
셋째, 견부호자(犬父虎子)! 아비는 천하의 망나니인데 자식은 폭풍처럼 훌륭히 성장한,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난 경우입니다.
넷째, 견부견자(犬父犬子)! 피는 못 속인다구 작게는 한 가정의 불행이자 크게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대물림된 경우를 일컫습니다.
우리 사회로 보자면 '호부호자'의 사례가 많으면 좋으련만 그 확률은 높지 않고 안타깝게도 언론이나 인구에 자주 회자되기로는 '호부견자'의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 집 양반 밖에서는 그렇게 잘나가더니 자식 농사는 망쳤더라"며 고소해하는 인간 세상의 원초적인 질투심을 충족시키는데다 요즘처럼 외동이 많고 피붙이 애지중지하다 못해 망치기 십상인 시대에 아들들을 올곧게 키워내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튼 요즘 한국에서 사고 친 아들 탓에 고개 숙인 사회지도층 아버지들의 소식이 잇따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남경필 경기지사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사례 말고도 두 번이나 대권 목전에서 고배를 든 이회창 전 총재 역시 아들들 문제로 발목이 잡힌 경우입니다. 이밖에도 아들들의 병역이나 국적 문제 등으로 낙마한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이 어디 한둘이었습니까?
물 건너 중국 CCTV에서도 아들의 병영 폭력 문제로 머리 숙여 사죄하는 남경필 지사의 모습을 주요 뉴스로 전하며 '관얼다이(官二代)' 의 전형적인 폐해라고 꼬집었습니다. '관얼다이'는 아시다시피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그 아들이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한 행위를 저지른 경우를 일컫는 중국의 관용어입니다. CCTV를 포함해 중국 관영언론들이 한국에서 일어난 부조리나 일탈 사례를 지적하며 "거봐라! 선진국인 척 하지만 한국 너희도 별 수 없지?"라는 심정을 담아 다소 과하게 보도하는 경향이 없지만 CCTV가 남 지사 부자 건을 이렇게 다룬 이유는 또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역시 '호부견자'의 사례가 부지기수인지라 그 만큼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한때 총서기까지 꿈꿨던 야심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부자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중국 공산 혁명의 원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부총리까지 지낸 보이보(薄一波)의 아들로 한때 '호부호자'소리를 들었던 보시라이는 외동 아들인 보과과(薄瓜瓜)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자신의 앞길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국으로 아들을 유학보냈지만 아들은 그곳에서 외국 여성들과 유흥에 빠져 갈팡질팡했고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함께 딸려 보낸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는 아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영국인 닐 헤이우드와 불륜에 빠집니다. 중국에 돌아와서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결국 불화를 일으켰고 마침내 2011년 11월13일 구카이라이는 청산가리를 풀어 닐 헤이우드를 독살하고 맙니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소리 소문없이 뒤처리해 준 남편의 충복,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이 보시라이와 반목 끝에 2012년 2월6일, 청두 미 영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함과 동시에 주군의 온갖 약점을 폭로하면서 대권을 꿈꾸던 보시라이는 하루 아침에 추락하고 맙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최측근으로 비서실장인 중앙판공처 주임 자리를 지키며 지난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표대회에서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하던 링지화(令計劃)의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꿈꿔 온 대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2년 3월 18일 새벽, 베이징대학 대학원생이던 아들 링구(令谷)는 만취한 채 페라리 승용차를 몰고 베이징 시내를 질주하다 교각을 들이받고 현장에서 즉사합니다. 차에는 반라의 티베트 출신 여성 두 명이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아들의 방탕한 오렌지족 생활과 그 뒷받침이 되어온 아버지의 부정축재 의혹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순식간에 떠오르던 태양은 서산 저 뒤편으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서민 총리로 이름을 떨치던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도 아들 문제로 꽤나 골치를 썩었습니다. 재계 일선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아들은 이런 저런 이권 사업에 관여해 뒷돈을 챙기고 아버지의 뒷배를 이용해 사업을 확장해왔다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퇴임 직전인 2013년 3월 중난하이에서 열린 내부간담회 자리에서 원자바오는 "아들이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을 막지 못한 게 정치적으로 중대한 잘못이었다. 내 평생의 한이 될 것이다"라며 잘못 키운 아들로 인한 고충과 회한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선행의 대명사로 불리는 홍콩의 월드스타 성룡(成龍)이 아들 팡쭈밍(房祖名)의 일탈행위로 인해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별장에서 마약을 피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약퇴치 홍보대사인 아버지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들 말고도 재벌가 2세들의 타락상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심각한 상황이라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행실이 개에 비유될 만큼 모범적이지 못한 아들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는 아버지들을 보며 연좌제도 아닌데 부모가 무슨 죄냐는 동정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견자(犬子) 위에 과연 호부(虎父)가 있을 수 있냐며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보시라이나 링지화, 원자바오 등은 아들들로 인한 횡액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 자신들의 표리부동한 이중생활이 속속 드러나면서 보시라이는 무기수로 영어의 신세가 됐고, 링지화는 끊임없이 사정 당국의 조사설에 시달리고 있으며, 원자바오는 은퇴 후에 원치 않는 칩거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의 집 가정사는 집안 식구들만 아는 일이고 밖에서는 아무리 똑 떨어지게 일처리하는 아버지도 자식 교육에서는 낙제점 면하기 힘든 경우도 있게 마련일 겁니다. 그만큼 자식농사가 어렵다는 얘기일 겁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성군으로 각인돼 있는 세종대왕께서도 여기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슬하에 무려 18남 4녀를 뒀던 세종은 여염집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들을 유난히 예뻐했다고 합니다.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은 어찌나 여색(女色)을 밝혔던지 대궐의 여종들과 '사통(私通)'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악공의 딸인 기생 금강매(錦江梅)에 빠져 그녀를 첩으로 삼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조르기까지 했습니다. 세종이 아들을 가상히 여겨 이를 허가해주려고 하자 승지인 허후 등 신료들이 "대군이 기생을 축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반대하자 도리어 화를 내며 아들을 옹호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적혀 있습니다. 천하의 세종께서도 망나니 자식 문제는 어쩔 수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남보다 뛰어난 것 같으면 더 잘 키워보려는 마음에, 또 모자란 것 같으면 안쓰러워 도와주고픈 마음에 자신의 분신인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원을 쏟아주려는 아버지들의 심정을 누군들 탓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칫 '호부호자'의 칭송을 쫓다가 결국 허망하게도 '호부견자' 혹은 '견부견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신을 돌아봐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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