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가?/그래도 되는가?

한 재벌 3세의 화려한 회사 생활

나 그 네 2014. 8. 24. 18:55

한 재벌 3세의 화려한 회사 생활

입력 : 2014.08.22 08:49|수정 : 2014.08.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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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0> 존 바바토스 매장(Central valle)
A 법인카드 117만 4,524원 07:00
B 법인카드 117만 4,524원 07:00
C 법인카드 117만 4,524원 07:00
D 법인카드 117만 4,524원 07:00

<2012.1.12>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A 법인카드 350만 원 18:05
B 법인카드 280만 원 18:05
C 법인카드 420만 원 18:06
D 법인카드 320만 원 18:06
E 법인카드 290만 원 18:06
F 법인카드 220만 원 18:06
G 법인카드 310만 원 18:07
H 법인카드 443만 원 18:07

<2012.10.29> CHANEL(BEVERLY HILLS)
A 법인카드 355만 5,950원 05:39
B 법인카드 440만 7,342원 05:39
C 법인카드 382만 1,783원 05:38
C 법인카드 222만 6,332원 05:43


이 정도 되면 정말 회사 생활하는 맛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돈으로 피부과나 헬스장을 이용하고,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고급 미용실까지 이용하고. 해외 나가면 명품 쇼핑을 회사 돈으로 가능한 회사 생활. 수십 장의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으니 비싼 것은 카드 여러 장으로 쪼개서 결제가 가능해 사용액에 제한도 없다면 정말 살 맛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걸까?’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효성그룹 조현준 사장은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해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 돈 많은 재벌 3세가 왜 회사 법인카드로 계산을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도대체 어디에 돈을 쓰고 다녔을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현준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입수했습니다. 회사 돈 횡령의 근거가 되었던 바로 그 법인카드 사용내역이었습니다.



● 석연찮은 결제 내역

사용 내역을 분석했습니다. 시간, 장소, 카드별로 분류하고, 그룹핑했습니다. 데이터 분석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주로 어느 지역에서 주로 카드를 쓰는지, 어디에 주로 가는지 등 카드 사용 패턴 추출이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조 사장의 직장 주소와 집 주소를 대입했습니다. 카드로 추정되는 소비 지역과 직장, 집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업무 연관성이 있는지를 추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석연찮은 점이 쉽게 발견됐습니다.

효성 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공덕동이나 계열사가 있는 청담동 등과 연관성을 찾기 힘든 곳에서 사용된 내역들. 업무 연관성을 찾기 힘든 곳에서 사용된 내역이 속출했습니다.

석연찮은 사용 내역과 조현준 사장의 연관성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회사 사장이라면 본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도 업무 연관성이 인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조현준 사장은 포털 사이트의 프로필에 1968년 생으로 올라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47살입니다. 사용 내역 중에는 47살 남자가 갔을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힘든 내역들이 확인됐습니다.

2012. 4. 26 000 피부과 1,900,000원
2012. 4 .3 000 필라테스 1,097,250원
2012. 10. 17 000 피부과 3,438,800원
2012. 2. 15 0000 미용실 2,00,000원
: :

분석은 끝났지만 이를 보도할지는 고민이었습니다. 너무 내밀한 개인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한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아닌 회사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에 대한 내역이고, 재벌 기업의 등기임원으로 공적 감시를 받아야하는 인물이 회사 돈이라는 공적 자금을 사용한 것에 관한 것인 만큼 공개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더욱이 조 사장의 행태는 회삿돈을 개인돈처럼 이용하는 재벌 총수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변화된 사회, 변하지 못한 윤리의식

소위 재벌 1세대가 기업을 세우고 경영하던 시절에는 '회사 돈=재벌 총수의 돈'이라는 게 용인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기업 공개가 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개인 돈으로 회사가 운영되기도 했으니까요.

세상은 변했습니다. 기업 공개가 일상화가 됐고, 아직 상장되지 않은 회사들도 많은 주주들의 돈을 모아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더 이상 자신의 돈 만으로 경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이제는 '주주 자본주의', '분기 자본주의'라는 이름에서처럼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는 주주들에 의해서 기업 경영이 지나치게 간섭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 주주들의 단기 이익 추구 행위에 의해서 기업의 장기적 먹거리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비용 절감만 내세워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제 살 깍아먹기를 하고 있다는 폐해까지 지적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비판받고 있는 주주 자본주의지만, 이면에는 회사의 주인이 기업 총수 1인이 아닌 다수의 주주들이며, 대주주로서 기업 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 총수는 다른 주주들의 감시를 받아야한다는 건강한 생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대주주로서의 총수의 전횡을 막겠다는 거죠. 즉, 과거와 같이 '내 돈은 내 돈, 회사 돈도 내 돈'이라는 식으로 총수가 기업을 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현준 효성 사장의 법인 카드 사용 행태는 어떤가요?

● 연봉 10억 원, 법인카드 사용액 1년 16억 원

"조석래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대외활동이 많아져 카드 사용 금액이 늘어났다."
"3만 명의 임직원의 생계를 책임지는 기업 총수로서 활동이 많다보니 사용 금액이 많았다."

조현준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효성 측의 답변입니다. 명품 쇼핑, 피부과나 피부관리실 이용, 필라테스 이용이 3만 명의 임직원의 생계를 책임지는 기업 총수로서의 활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조석래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고, 회사 돈을 전경련 활동을 위해서 써도 되는지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연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씀씀이 규모는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조현준 효성 사장이 등기임원으로서 회사에서 받아간 돈은 기본 연봉 6억 3200만 원에 성과급 3억 400만 원을 더해 모두 9억 3600만 원입니다. 그런데 조 사장의 법인카드 결제액은 1년에 평균 16억 원으로 본인 연봉보다 많습니다.



● 견제받지 않는가?, 인식하지 못하는가?

회사에서 받는 연봉을 제외하고도 가진 것 많으신 분이 왜 이렇게 회사 돈으로 카드를 사용하고 다녔을까요? 그리고 왜 아무도 잘못 됐다고 이야기하지 못 했을까요? 재벌 총수이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이야기 하지 못했고,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잘못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조현준 사장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취재하면서 소위 재벌 2, 3세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별에서 온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몸은 21세기를 살면서 왜 머리는 20세기에 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견제를 받지 않아 그렇게 되었든,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혹은 사실은 호도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든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모두 불행한 일입니다.

기회는 있었습니다. 잘못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 때 주위를 둘러봤다면 다른 잘못도 바로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효성 조현준 사장은 그러지 못 했습니다. 문제가 된 법인카드 사용내역 중에는 LA 부동산 불법 취득과 관련해 받은 집행유예 기간 중에 발생한 것도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