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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 도종환

나 그 네 2017. 1. 28. 14:23





 

 

 

등잔 /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 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을음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 하랴

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 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