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제일봉 개요
경남 합천 거창과 경북 성주에 걸쳐있는 가야산 국립공원에는 '석화성(石火星)' 가야산이라는 명산이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숨은 명산이 또 하나 있다.
가야산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이 그것이다. 만추의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 가야산이 있다면 남산제일봉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해서, 혹자들은 남산제일봉을 두고 가야 남산이라고도 한다. 가야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산세를 지니고 있는 탓이다.
남산제일봉은 한마디로 바위산이다. 기암괴석과 날카로운 암봉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으며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불가에선 남산제일봉을 천불산(千佛山)이라 일컫는다. 실제로 들머리의 천년고찰 청량사를 알리는 커다란 이정석에는 남산제일봉 대신 '천불산 청량사'라고 음각돼 있다.
송림 사이로 오글오글 솟은 기암괴석이 아마도 천 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명명된 모양이다. 흔히 산꾼들은 매화산과 남산제일봉을 혼용하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매화가 피어있는 형상인 매화산(954m)은 남산제일봉(1010m)에서 남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산. 남산제일봉은 매화산 자락의 하나의 봉우리로 보면 무난하다.
지리산의 적지 않은 봉우리 중 천왕봉이 으뜸이듯 매화산에선 남산제일봉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화산 남산제일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할 듯싶다.
▣ 해인사 소리길
천년의 시간을 숨어 지낸 가야산의 마지막 절경, 그 숨겨진 보물이 긴 침묵을 깨고 수려한 자태의 속살을 드러낸다.
홍류동계곡은 2011년 9월 23일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개막과 함께 "소리길"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탄생을 시작한다.
소리란 우주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의미한다.
소리길은 가족과 사회, 민족이 화합하고 소통하여 완성된 세계를 향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가야산 입구에서 해인사통제소까지 6km 거리에 2시간 코스로 이어지는 소리길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한 친환경적 테마로드로 조성된 명품길이다.
논두렁을 낀 들길을 시작으로 황토길, 호젓한 오솔길, 노송으로 우거진 숲길과 기암괴석의 바위 사이를 데크로 설치하였다.
또한 곳곳에 전망대와 구름다리를 마련하여 천년의 역사와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낸 아름다운 가야산 품속으로 안내한다.
900년경 신라 학사 최치원이 이름붙인 홍류동의 각 명소를 소개한다.
▶소리길 16명소
1 멱도원, 갱맥원 :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는 멱도원
2 축화천 : 봄날의 진달래 꽃잎과 가을의 단풍이 계곡의 수면을
붉게 물들이며 흘러가는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 올라가는 축화천
3 무릉교. 가야면에서 해인사로 들어오는 다리가 있던 자리이다.
그옛날 나무를 이어 만든 섭다리였으나 해방이후 시멘트로 다리는 만들었고
지금은 그마져도 계곡물에 휩쓸려가 다리의 흔적은 무너진 조각으로 여기가
무릉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릉교에 위치한 바위에는 무릉교를 관리하는
주민에게 해인사에서 논과 밭을 주어 경작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희미하게
남아있어 해인사에서 무릉교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알 수 있다.
4 칠성대 :동인洞人이 기도중 칠성이 떨어진 곳
5 홍류동紅流洞 봄꽃과 가을단풍에 붉게 물들어 흐른다
6 농산정(籠山亭) 1936년 정진기 군수 중건
농산정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농산정에 치치원의 입산시가 적혀있는 바위 치원대
7 신선의 피리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 한 취적봉
8 체필암. 분옥폭 옆에 있으며 붓으로 벼루에 먹을 찍은것처럼 바위에
구멍이 움푹 패여있다.
9 음풍뢰 : 바람이 노래하는 여울
10 광풍뢰 : 빛을 머금은 바람(仙風)이 춤추는 여울목
11 완재암
12 분옥폭, 분옥량 : 옥을 뿜어내며 쏟아지는 분옥폭의 폭포수
13 제월담 : 분옥폭포 아래 물이 넓게 자며있는 곳
14 낙화담 : 길상암 위쪽에 위치한 낙화암의 이끼 낀 반석위로 천년세월의
무게가 하얀 포말을 그리며 낙화담으로 떨어진다.
15 첩석대 : 바위가 층층이 겹쳐 쌓인 첩석대에 올라 자연과 전설의 조화 가 이룬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는다. 도로가 옆 약수터가 있는 바위
16 회선암, 회선대 : 신선이 노니는 바위
17. 해인사학사대
18 가야산 봉천대
19 가야산 우비정
최초 2011년 11월 올렷던 소리길 16명소를 2013년 11월 5일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없던 사진을 추가하여 올렸습니다.
▣ 가야산 홍류동계곡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입구까지 이르는 4km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주위의 송림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하며,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말해주듯 농산정과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홍류동에는 주요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 19명소가 있으며 특히 농산정 맞은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 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합천 8경중 제3경이다.
가야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홍류동계곡은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여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수많은 절경이 10리 길에 널려있다.
요즘은 차를 타고 훌쩍 지나쳐버리는 곳이 돼버렸지만 계곡주변에는 맑은 물과 깊은 숲의 정취가 있고,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럴듯한 전설이 찰랑거리는 물이 되어 미끄러지고 있다. 그러나 계곡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인파가 떠난 지금이 좋다.
솔향을 맡으며 물소리만이 가득한 계곡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으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천국을 넉넉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한철 피서인파에 몸살을 앓았던 홍류동계곡엔 지금 운치가 흐른다.
고즈넉한 풀숲에선 풀벌레 소리가 맑고 계곡 가득 은은한 소나무향이 진동하니 그 속에 서면 온몸이 맑아진다.
소나무와 집채만한 바위, 하늘로 솟구친 바위절벽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이 담쟁이넝쿨을 온몸에 두르고 용트림하고 있는 노송뿐만 아리라 다른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수많은 활엽수가 우거져 있다.
홍류동계곡의 이름은 금강산처럼 계절에 따라 변한다. 가을에는 홍류동이라 부르지만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고 해서 옥류동으로 불린다.
수량이 많고 깨끗하며 굽이굽이 폭포와 소를 만들며 흐른다.
관리사무소 옆 칠성대가 특히 그렇다.
옥빛의 물이 바위를 돌아돌아 힘차게 쏟아져 나온다.
그 수량이 엄청나 작은 폭포를 이루고 소를 만든다.
속절없이 흘러제끼는 물소리는 옆사람과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10여명은 족히 앉을 정도의 평평한 바위만이 세차게 흐르는 물을 견뎌내고 있다.
홍류동계곡엔 고운 최치원에 대한 얽힌 이야기가 많다.
신라 말 어지러웠던 세상을 비관하며 이곳으로 들어온 선생은 홍류동 물소리에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세상사람들은 홍류동의 세찬 물소리가 최치원의 귀를 멀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선생이 갓과 신발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농산정. 홍류동계곡 제일의 절경이다. 농산정의 자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농산정을 둘러싼 붉은 소나무의 자태가 그것이다. 늙을수록, 허리가 휘어질수록 굳센 생명력을 발휘하는 홍송이 농산정을 부드럽게 안아준다.
더러는 바위벽에 붙어 삶에 대한 질긴 집착을 보여주고 더러는 사모관대 차려입은 가야산의 주인처럼 계곡 가운데 홀로 우뚝 서 있다.
농산정에 앉아 소나무와 바위를 희롱하며 흐르는 무심한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숲속 어딘 가에서 조롱과 비웃음을 머금은 최치원이 슬쩍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농산정과 마주보는 석벽엔 최치원이 쓴 시가 새겨져 있다(송시열이 새겼다는 설도 있음).
첩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
사람의 소리는 지척 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모두 귀먹게 했구나
부드러우면서 힘찬 글씨체를 바라보고 있으면 역사 속 인물과 대면하는 듯 하다.
고운은 농산정에 자주 올라 시심을 달래고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과연 최치원이 이곳에서 신선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곳을 두루 찾아다녔다는 최치원이 유독 여기에 많은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볼 때 농산정은 확실히 그의 존재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농산정을 뒤로하고 좀 더 상류쪽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가파른 계단을 5분쯤 오르면 길상암이 나온다.
자그만한 암자지만 대웅전, 나한전 등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특히 주위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길상암 뒤 절벽 어디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고 전해진다.
길상암에서 조금 더 오르면 어디선가 맑은 기운이 쏟아져 나온다.
낙화담이다.
낙화담이란 떨어진 꽃이 무수히 떠 있는 못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은 꽃과 단풍은 없고 세찬 물줄기가 꿈틀대고 있다.
협곡이 둘러싸인 곳에서 옥색 물이 쏟아져 나오고 하늘과 맞닿은 절벽에선 눈부신 폭포가 흘러내린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협곡안에는 신선이 된 고운이 웃고 있을 것만 같다. 협곡 안엔 깊은 소가 있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발버둥치는 양 요동치고 있다.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끝을 모를 정도라니 섣불리 다가선 사람들은 화를 당한다고 안내하던 사무소 직원 김석용(35)씨가 들려준다.
이런 전설은 낙화담을 좀 더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낙화담을 돌아나와 계곡을 따라 허리가 휜 홍송을 보면서 일주문으로 간다.
일주문과 봉황문 사이의 정갈한 길은 양쪽으로 아름드리 잣나무가 도열해 방문객을 탈속의 세계로 안내한다.
무려 1200년 수령을 다한 봉황문 앞 고사목은 ‘일장춘몽’ 같은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산문에 든다.
홍류동의 맑은 기운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으니 마음은 이미 신선이 된 듯 하다.
★산정갤러리
나오는 길에 가야산 입구에 있는 ‘산정갤러리’에 들러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성 싶다.
한국화가 장윤진(56)씨와 서양화가 정선희(51)씨가 2001년 10월 개관한 이 갤러리는 주위환경과 잘 어울려 그림처럼 아름답다.
현재 장윤진씨의 ‘실경산수화전’이 열리고 있다.
가야산 자락 곳곳의 풍경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잡아두었던 우리 산하의 풍경 1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가로 13m, 세로 2.3m의 그림 ‘가야산’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장.정 부부의 친절이 인상 깊게 와 닿는다. 문의: 055)932-1939.
▣ 청량사
가야산국립공원 입구 홍류동천 남쪽, 해발고도 1,010m의 남산 제일봉 아래에 있으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사기》에 최치원이 짓고 즐겨 찾았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시대에 세워진 절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합천 8경 중 제4경이다.
대웅전 앞에 청량사석등(보물 253), 청량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65), 청량사삼층석탑(보물 266) 등 3점의 우수한 석조 문화유물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석등은 고복형 석등으로,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이 빈틈없고 깔끔하며, 장식이 화려하다. 석조여래좌상은 장방형 좌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데, 9세기를 대표하는 불상으로서 불신·광배·대좌 등 불상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완전한 석불좌상이다. 세부 표정이 살아 있으며 위엄과 당당함을 드러낸다.
삼층 석탑은 전형적인 사리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곳곳에 특이한 의장을 보이는데, 기단 주위에 장대석으로 탑구를 마련했고, 상하 기단은 위쪽에서 완만한 경사를 그리다가 4귀 끝에 가서 옥개석처럼 반전한다.
주변에 매화산, 홍류동계곡, 해인사, 가야산, 포천계곡, 수도산, 합천댐, 신부락 등의 관광지가 있다.
▶보물 제266호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 (陜川 淸凉寺 三層石塔)
청량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청량사는 매화산(梅花山) 기슭에 있는 사찰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최치원(崔致遠)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한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바닥돌 아래에 화강석을 두른 널찍한 구역을 이루고 있는 보기드문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닥돌 위의 아래층 기단은 가운데돌을 한 돌로 하여 4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다. 아래·위층 기단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기단부의 맨윗돌 네 모서리는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특색이 있고, 그 위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구성하였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아래에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사진 면은 완만하나 네 귀퉁이는 경쾌하게 치켜올라가 있다.
이 탑은 각 부분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면서 조각수법도 경쾌하고 우아하여,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1958년 이 탑을 수리할 때 3층 지붕돌에서 사리를 두던 둥근 공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보물 제253호
합천 청량사 석등 (陜川 淸凉寺 石燈)
청량사(淸凉寺) 안에 3층석탑과 나란히 놓여 있는 석등이다.
각 부재가 8각으로 이루어졌으며, 아래에서부터 받침부분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 지붕돌과 머리장식부분으로 구성된다. 8각의 아래받침돌은 측면에 사자상과 향로를,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끝마다 작은 꽃을 돌출시켰다. 가운데기둥은 장고를 세워놓은 모양이며, 그 위로 연꽃모양의 윗받침돌을 올렸다. 받침부분 위로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이 놓여있는데 네 면에 창을 내고 옆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지붕돌은 얇은 편으로 경사면은 완만하고 각 귀퉁이는 곡선을 이루며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하다. 머리장식부분은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두 개의 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평면이 8각인 석재를 층층이 쌓아 올려 신라시대의 기본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나, 받침부의 가운데기둥이 변형된 점이나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265호
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 (陜川 淸凉寺 石造如來坐像)
불신, 대좌(臺座), 광배(光背)가 모두 갖추어진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게 표현되어 있고, 풍만한 둥근 얼굴에서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가슴이 발달되었고, 두 팔과 다리 등은 양감이 풍부하여 힘이 넘치는 자세이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얇게 빚은 듯한 평행계단식의 옷주름이 매우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광배는 배(舟) 모양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광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와 비천(飛天)무늬가 조각되었고, 머리광배 위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대좌는 4각형인데,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다. 중대는 4각형으로 각 면마다 2구의 보살상이 조각되었는데 풍만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그 아래 1면에 2구의 팔부신상(八部神像)을 새겼다.
전체적으로 양감을 강조한 것으로 풍만감과 탄력성을 지니고 있는 이 석불좌상은 불상조각의 우수함과 대좌 양식 및 그 장식이 우아한 점에서 9세기에 만들어진 뛰어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쏟아지는 시냇물 소리에 마음의 소리 얹은 해인사 소리길
이제 홍류동(紅流洞) 계곡을 따라 걷는‘소리길’이다.
해인사를 시작점으로 보면, 길은 절입구 주차장 아래로 해서 골짜기와 산기슭 이쪽저쪽을 번갈아 지나치며‘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행사장인 가야면 야천리 대장경천년관까지 7km 남짓 이어진다.
이어지는 내내 시냇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데서는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기가 어려울 정도로 크기도 하고 때로는 흐름이 거세지 않아 나즈막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물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졌다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가 하기를 되풀이한다.
길이 골짜기에서 조금 떨어진 쪽으로 틀었다가 돌아오기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소리길은 이렇듯 시원스런 물소리와 아름다운 골짜기모습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골짜기 비탈이 걸을 수 있을 정도면 길이 그리로 나지만 그렇지 않은 데서는 길이 산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물론 가파른 데는 없고 그렇다 해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소나무, 노각나무, 떡갈나무, 떼죽나무, 줄참나무, 굴참나무 같은 가늘거나 굵은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길섶 바위 옆에서 서글픈 전설을 머금은 며느리밥풀꽃도 만날 수 있다.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을 품고 있는 가야산은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야산 자락의 남산제일봉(1,010m)은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겨울이면 소나무 숲과 어울린 설경이 가히 천하절경이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능선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들이 마치 매화꽃이 만개한 것 같다 하여‘매화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소리길의 계곡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다리와 나무 데크, 그리고 사람이 가다듬어 놓은 어귀들을 몇 차례 넘나들다 보면 농산정(籠山亭)이 나온다.
고운 최치원이 수도하던 장소에 들어선 정자다. 여기 오르면 눈 앞 풍경이 아주 그럴 듯하다. 잘 자란 소나무들이 미끈하게 뻗었고 물 속에 아랫도리를 담근 바위들도 멋지다.
하지만 이런 바위와소나무도 흐르는 물과 그 쏟아지는 소리를 압도하지는 못한다. 치원대 (致遠臺) 또는 제시석(題詩石)이라 하는 건너편 바위벽에 새겨진 고운의 칠언절구가 일러주는 그런 경지다.
첩첩 바위들 사이 미친 듯 내달려 겹겹 쌓인 산들 울리니(狂奔疊石吼重巒) 지척 사이 사람 말소리조차 구분하기 어려워라(人語難分咫尺間) 시비 다투는 소리 귀 닿을까 늘 두려워(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물로 산을 통째 두르고 말았다고 일러주네(高敎流水盡籠山)
여기 물소리를 들으니 과연 옳음과 그름을 따지는 세상 갖은 소리가 파묻히고도 남겠다 싶다.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다보면 여기 해인사에서 살다 적멸에 이른 성철 스님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이의 이름난법어(法語)‘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도 떠오른다.
가만 생각하면 산이 언제나 산이지도 않고 물이 언제나 물이지도 않다. 산은 산이기도 하고 산이 아니기도 하다.
물 또한 물이기도 하고 물이 아니기도 하다.
만물은 이리 변전하는 가운데 그저 그러할 뿐이고‘그저 그러함’에는 사람이 스스로를 끼울 여지가 있지 않으리라.
그래서 성철 스님 법어를 두고“만물은 그냥 그러하다”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소리길의 즐거움을 더하는 ‘대장경 밥상’
농산정을 뒤로 떨치고 매표소를 지나 다시 숲길로 접어들어 1km남짓 걸으면 가야면 황산리 상수원보호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곧바로 무릉동 마을과 이어진다.
가야산 해인사 가는 길과 매화산 청량사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인데 소리길은 여기서부터 들판을 가로질러 1.7km 가량 떨어진 대장경천년관에 가 닿는다.
아직은 햇살이 따가워 챙이 긴 모자를 눌러써야 마땅할 법하지만 추석 지나 다가올 가을에는 넘실거리는 벼이삭이 누렇게 보기 좋겠다. 아니나 다를까 길 따라 펼쳐진 들에서는 벌써 나락이 패고 있고 고개까지 숙인 녀석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들판 몇몇은 이번 세계문화축전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코스모스 꽃밭으로 변신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제대로 걸은 다음에는 이번 축전을 앞두고 개발된 음식‘대장경 밥상’을 한 번 받아봐도 좋겠다. 합천군 지정을 받은 백운식당(055-932-7393)과 해인식당(055-933-1117) 두 군데서 맛볼 수 있다.
도 토리 비빔밥(7000원), 도토리 비빔밥 세트(기본 4인상, 1인분 1만5000원), 채식나물 밥상(기본 2인상, 1인분 1만5000원), 대장경 한정식(기본2인상, 1인분 3만원)이 있고 어린이 메뉴로 소고기 덮밥·파프리카 볶음밥(9000원씩)이 준비돼 있다. 절간 스님들 먹는 차림을 기본으로 했지만, 어른이라면 누구나 술 한 잔은 곁들여도 좋을 맛깔나는 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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