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그림이란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화폭에 구현하는 예술이다. 3차원을 2차원에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화가들은 원근법을 고안했다. 원근법 중 가장 대표적인 기법이 소실점을 통한 원근법이다. 즉,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물체의 크기가 작아지도록 화폭에 그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행한 철도선로가 거리에 따라 점점 더 가까워지다가 지평선에서는 결국 만나도록 그림을 그리면 평면인 화폭 속에 철로의 거리감을 나타낼 수 있다. 소실점을 통한 원근법은 간단한 비례 공식을 이용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원근법이 존재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처럼 기본적인 원근법보다 좀 더 복잡한 방법인 색채원근법(또는 공기원근법 : 거리가 멀어질수록 색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것)을 이용하여 원근감을 나타냈다. 이번에 소개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란 작품 역시 색채원근법을 활용한 그림이다.
△ 암굴의 성모(Madonna of the Rocks) 1483~1486, 레오나르도 다 빈치(Vinci, Leonardo da), 199×122㎝,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암굴의 성모>는 성모 마리아가 세례 요한에게 아기 예수를 소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해 다 빈치가 그린 그림으로, 지금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다빈치가 이 그림이 다 그렸을 때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이 그림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 빈치는 같은 제목의 그림을 한 장 더 그려야만 했다. 두 번째로 그린 <암굴의 성모>는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 빈치보다 그의 제자가 대부분 그린 그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암굴의 성모>는 보는 이에게 마치 꿈속처럼 신비로운 인상을 준다. 어찌 보면 그림 전체에 안개가 자욱하게 서린 듯도 하다. 다 빈치는 성모와 아기 예수 등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윤곽선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고 사라지듯 모호하게 처리했다. 이러한 기법을 스푸마토(sfumato)라고 하는데, 이는 ‘연기처럼’이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색과 색 사이 경계선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기법이다. 원근법과 관련하여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머리 왼쪽에 있는 산의 모습이다. 가까이 있는 산은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만, 멀리 있는 산들은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희미한 산은 자연스럽게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푸마토 기법을 쉽게 이해하려면, 대상과 관찰자 사이에 안개가 끼어 있는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안개 속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색깔은 미묘하게 변하고, 사물의 윤곽 역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물체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결국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을 광학에서는 비어(Beer)의 법칙 또는 비어(Beer)-람베르트(Lambert)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Beer란 단어 때문에 ‘맥주의 법칙’으로 잘못 불리는 일도 있지만, 실제로는 발견자들의 이름을 딴 법칙이다. 19세기 독일의 물리학자인 August Beer(어거스트 비어),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 Johann Heinrich Lambert(요한 람베르트), 18세기 프랑스의 과학자 Pierre Bouguer(피에르 부게르)가 이 법칙에 이바지한 사람들이다. 빛이 통과하는 매질의 농도가 짙거나 빛이 통과하는 경로가 길수록 투과되는 빛의 양이 더 많이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 이 법칙의 내용이다.
자연의 관찰자인 화가와 그림의 대상 사이에는 항상 공기가 존재한다. 공기 속에는 산소, 질소,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는 물론이고 에어로졸이나 물 분자 등도 있다. 대상에서 떠난 빛이 화가의 눈에 도달하기 전, 이런 분자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빛의 굴절, 산란, 흡수 등 다양한 물리적 반응이 일어난다. 거리가 멀어지거나 농도가 짙을수록 중간에 이러한 분자들과 반응할 확률이 높아진다. 즉, 거리가 멀수록 원래의 대상에서 떠난 빛 가운데 원래 상태 그대로 화가의 눈에 도달되는 양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거리가 멀수록 대상은 점점 더 흐릿하게 화폭에 그려지게 된다.
비어의 법칙은 화학에서 용액의 농도를 측정하는데 널리 사용되어 왔다. 다 빈치는 물론 비어의 법칙을 전혀 몰랐지만, 관찰과 경험을 통해 그림에서 색채원근법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아트에서는 그림 위에 스푸마토 효과를 줄 수 있는 레이어(layer, 층)를 덧붙여서 쉽게 스푸마토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와인이나 위스키 전문가들 역시 비어의 법칙을 모르지만, 술을 통과하는 빛의 색깔이나 빛이 감소하는 정도를 보고 술의 숙성도, 알코올의 함량 등을 짐작한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술과 술 사이에도 엇비슷한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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