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만행/일본의 만행

太平洋戦争の日本A級戦犯遺骨、米軍将校が海にまいて

나 그 네 2021. 6. 7. 10:06

機密解除の米軍文書で死刑戦犯遺骨の処理方式を初めて確認、死刑となったBC級戦犯朝鮮人遺骨も太平洋にまかれた可能性がある。

報道によると、日本大学の高澤弘明専任講師(法学)が米国立文書記録管理庁(NARA)から入手した米第8軍作成文書にこのような内容が盛り込まれていた

(東京=聯合ニュース)金浩準特派員=太平洋戦争が終わり、極東国際軍事裁判で死刑判決を受けた東條英機さん(1884-1948)ら日本のA級戦犯7人の遺骨が海に撒かれたという記録が盛り込まれた米軍公文書が発見されたと、共同通信が7日報じた。

 

極東国際軍事裁判で判決を受ける東條英機(東京共同=聯合ニュース)1948年11月12日に東京で開かれた極東国際軍事裁判で、東條英機元首相が判決が言い渡されるのを聞いている。 彼はこの裁判の結果によって絞首刑になった。 2015.6.16 sewonlee@yna.co.kr

 

 

太平洋戦争後、米軍の日本占領期当時、第8軍は横浜に司令部を置いていた。
機密解除された8軍文書によると、A級戦犯7人の死刑執行は、48年12月23日0時、東京収監所で行われ、遺体は横浜に移され、火葬された。
火葬後に収拾された遺体は、8軍の滑走路に運ばれた。
当時現場の責任者だったルーサー·フライオ昇少佐は文書に「横浜東48キロ、太平洋上空まで連絡機で移動し、私が遺骨を広範囲にまいた」という記録を残した。
A級戦犯遺骨の処理方式が公文書を通じて明らかになったのは、今回が初めてだ。
当時、A級戦犯の遺骨は遺族に返還されず、太平洋と東京湾に撒かれたという推測があり、「第8軍文書」と確認されたわけだ。
東條英機のひ孫である英機(48)氏は、「(遺骨が)どこかで廃棄されたことより自然に戻った方がいい」と落ち着いた反応を見せたと、共同通信は伝えた。
A級戦犯処刑を参観する当時、連合軍総司令部(GHQ)のウィリアム·シーボルト外交局長は著書で、「指導者の墓が将来神聖視されないように遺骨をばらまくことになっていた」と記述している。
文書を発見した高澤専任講師は、B、C級戦犯も処刑された後、海上に遺骨が散布された可能性を提起した。
侵略戦争を企画·開始·遂行した指揮部は、A級戦犯、上級者命令などによって拷問や殺人などを行った者はB、C級戦犯に分類した。
太平洋戦争当時、朝鮮人148人も捕虜虐待などの疑いでB、C級戦犯に分類され、23人が死刑された。

 

태평양전쟁 일본 A급 전범 유골 미군 장교가 바다에 뿌려

 

기밀 해제 미군 문서로 사형 전범 유골 처리 방식 첫 확인
사형된 BC급 전범 조선인 유골도 태평양에 뿌려졌을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등 일본 A급 전범 7명의 유골이 바다에 뿌려졌다는 기록이 담긴 미군 공문서가 발견됐다고 교도통신이 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니혼(日本)대학의 다카자와 히로아키 전임강사(법학)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입수한 미 제8군 작성 문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서 판결 듣는 도조 히데키 (도쿄 교도=연합뉴스) 1948년 11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일본 총리가 판결이 선고되는 것을 듣고 있다. 그는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교수형을 당했다. 2015.6.16 sewonlee@yna.co.kr

태평양전쟁 후 미군의 일본 점령기 당시 제8군은 요코하마(橫浜)에 사령부를 두고 있었다.

기밀 해제된 제8군 문서에 따르면 A급 전범 7명의 사형 집행은 1948년 12월 23일 0시에 도쿄(東京) 수감소에서 이뤄졌고, 이들의 시신은 요코하마로 옮겨져 화장됐다.

화장 후 수습된 유골은 제8군 활주로로 옮겨졌다.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루서 프라이어슨 소령은 해당 문서에 "요코하마 동쪽 48㎞ 태평양 상공까지 연락기로 이동해 내가 유골을 광범위하게 뿌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A급 전범의 유골 처리 방식이 공문서를 통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A급 전범의 유골은 유족에게 반환되지 않아 태평양이나 도쿄만에 뿌려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는데, 제8군 문서로 확인된 셈이다.

도조 히데키의 증손자인 히데토시(48)는 "(유골이) 어딘가에서 폐기된 것보다 자연으로 돌려보내진 것이 낫다"며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A급 전범의 처형을 입회한 당시 연합국군총사령부(GHQ)의 윌리엄 시볼트 외교국장은 저서에서 "지도자들의 묘가 장래에 신성시되지 않도록 유골은 뿌리기로 돼 있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해당 문서를 발견한 다카자와 전임강사는 B·C급 전범도 처형 후 해상에서 유골이 살포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침략전쟁을 기획·시작·수행한 지휘부는 A급 전범, 상급자 명령 등에 따라 고문과 살인 등을 행한 이들은 B·C급 전범으로 분류됐다.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148명도 포로 학대 등의 혐의로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23명이 사형을 당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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