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프랑스신문 보도 ‘호랑이 습격사건’
일제 강점기에 자취를 감춘 ‘한국호랑이’가 100년 전만 해도 도처에 출몰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으로 외지에 보도된 사실이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쁘띠 주르날’ 1909년 12월12일자 신문기사는 한국은 호랑이 천국이라며 집안에서 가족들이 호랑이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한 컬러 그림을 곁들여 호환으로 불안에 싸인 한국의 분위기를 보도해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많았음을 전하고 있다.
화제의 신문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연구가이자 시인인 송명호 씨가 공개한 이 날짜 르 쁘띠 주르날지는 한국에서 호랑이 수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여행마저 위협할 정도로 당시 우리나라 내륙의 들판에서 늑대와 호랑이 같은 맹수들을 볼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33명이 며칠 동안에 걸쳐 호랑이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어느 마을에서는 집안까지 침입한 호랑이에 의해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신문에 게재된 그림은 이 같은 사실을 상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림에서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민가에 칩입, 각각 사람을 물고 있는 처절한 습격 장면을 담고 있다.
당국은 이처럼 호랑이가 인명을 해치는 등 피해를 주게 되자 근본적으로 호랑이를 비롯한 육식동물의 급속한 증가를 막기 위해 대책 마련에 부심했으나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해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호랑이와
신문은 이 같은 호환의 원인을 일제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사가 보도된 해는 이미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압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조약까지 체결된데 이어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까지 당한 뒤였다. 일제는 당시 한국인들의 무장 항일운동에 대비, 모든 한국인들에게 무기소지를 금지시킴으로써 맹수들의 습격에 무방비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르 쁘띠 주르날지는 당시 한국의 이러한 실정을 우회적 표현으로 “한국에서 무기휴대나 수입을 엄금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마지막 힘을 기울여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인들의 혁명적 욕구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사실상 사냥이 불가능해져 육식동물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됐고 이로 인해 육식동물들이 모든 지역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백두산호랑이라고도 일컫는 한국호랑이는 1901년까지만 해도 경복궁에서 발견될 만큼 흔했고 1915년에는 호환으로 죽은 사람이 8명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남한에서는 강원도 횡성에서 호랑이가 포획됐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1924년 2월 1일자 매일신보에 게재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공식적인 물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땅에서 호랑이가 언제 멸종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에 무차별 살육으로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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