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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 가 된 여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

나 그 네 2009. 1. 28. 12:30

 

크리스타 매콜리프


“여기는 우주! 여러분, 잘 들려요? 자 그러면 챌린저 호가 어떻게 이 우주정거장까지 왔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콩코드 고등학교 여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전 우주에서 수업하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그 벅찬 시간이 그녀의 힘찬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우주에서 수업 진행 실험을 할 계획이었다).

 

 

1986년 1월 28일 세계의 눈과 귀가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 집중되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이륙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현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으며, 탑승자의 가족들과 친지들, 매콜리프의 제자들이 숨을 죽인 채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사람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망원경을 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온 신경을 모아 망원경에 연장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1시 38분. 발사! 우주선은 힘차게 솟아올랐다. 사람들의 눈은 연기 속에서 솟아오르는 우주선의 날갯짓에 넋을 잃었다. 그러나 발사 73초 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거짓말처럼 펼쳐졌다. 큰 폭발음과 함께 전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1만4,020미터 상공에서 우주선은 폭발했다. 이미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주쇼가 펼쳐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편이 튀는 것을 보고서야 오열을 터뜨렸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신나는 행진에 갑자기 급제동이 걸린 것이었다.


 

우주선에 탑승한 승무원은 모두 7명. 조종사 마이클 스미스(47세), 선장 딕 스코비(40세), 탑승운용기술자 엘리슨 오니즈카(39세), 그레고리 자비스(41세), 주디스 레스닉(36세) 등 군인과 기술자 외에 특수 임무를 안고 탑승한 물리학자 로널드 맥네어(36세),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37세) 등이었다.

 


사고의 원인은 오른쪽 로켓 부스터에 있는 O링의 결함이었다. O링은 일종의 고무링으로, 부스터 두 아랫부분 사이의 이음매를 밀봉해주는 역할을 한다. 발사 당시의 추운 날씨 때문에 O링은 제 역할을 못했고, 그 이전에 약간 부식되어 있었다. 발사 후 그 틈으로 새어 나온 고온 고압의 연료에 불이 붙었다. 먼저 연료탱크가 폭발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고온 고압의 연기 속에서 챌린저 호 본체도 압력을 못이기고 폭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수업을 진행해보려던 크리스타 매콜리프의 꿈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열 번째 비행이 되는 STS-51-L 미션의 계획은 사뭇 흥미로운 것이었다. 주목적은 TDRS-B 인공위성의 궤도에 투입하는 것이었지만, 맥네어와 매콜리프에게는 특수한 임무가 주어졌다. 맥네어는 핼리 혜성을 관측하고 우주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기로 했고, 매콜리프는 원격으로 학교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임무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그야말로 챌린저 호는 세계의 화젯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챌린저 호는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더 영원한 화젯거리가 되고 말았다.

 

컬럼비아 호에 이어 미국의 두 번째 우주왕복선이 된 챌린저 호는 1983년 4월 4일 첫 비행을 시작했다. 챌린저 호는 첫 비행 뒤 미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의 주력 우주선이 되었다. 3년간의 우주 항해에서 적지 않은 진기록을 남겼다. 첫 항해에서는 미국 최초의 우주 유영(遊泳) 기록을 세웠다. 또 밤에 이륙하여 밤에 착륙한 첫 우주선이었다.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도 챌린저 호에서 탄생했다. 1983년 6월 18일 두 번째 비행에서였다. 물리학자 샐리 라이드는 미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지구 바깥세상을 밟았다. 챌린저 호에 탑승한 첫 흑인 우주인은 로널드 맥네어였다. 그는 1984년 2월 3일 STS-41-B 미션에 참가하였다.  

 

NASA는 교사를 우주인으로 선발하여 우주에서 원격강의를 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수많은 교사들이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어린 시절 아폴로 호의 달 착륙에 유난히 관심을 갖았던 매콜리프에게도 솔깃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도전했고 1985년 7월 19일 NASA는 11,000명의 후보자 중에서 매콜리프를 선택했다(바버라 모건은 후보자로 지명됐다).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눈앞에 다가올 수도 있단 말인가. 매콜리프는 도전정신의 날을 세우며 훈련에 임했지만, 결국 우주에서의 원격강의는 바버라 모건이 22년 후에 이루게 된다.


 

 

매콜리프는 1948년 9월 2일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970년 프래밍험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몇 주 후에 스티븐 매콜리프와 혼인하여 워싱턴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곧 스콧과 캐롤라인,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 두 아이는 아홉 살과 여섯 살이었다. 매콜리프는 워싱턴에서 8년을 머물렀고, 중학교에서 미국 역사와 사회, 법률, 경제를 가르쳤다. 그녀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매릴랜드 보위 주립대학의 예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1978년 뉴 햄프셔의 콩코드로 이사했고, 1982년부터 콩코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매콜리프는 인기 있고 실력 있는 교사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인으로 선발된 그녀는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고 래리 킹, 자니 카슨, 데이빗 레터만, 레지스 필빈 등이 진행하는 텔레비전 토크쇼에 여러 번 출연했다. 챌린저 호에 탑승할 7명의 우주인 중 최고 주목을 받은 매콜리프를 따라 지구에 남아서 우주인이 된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제자들의 임무도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순간은 쉽게 와주지 않았다. 처음 예정은 1월 22일이었으나 다른 계획과 겹쳐 23일로, 다시 24일로 연기되었다. 착륙 예정지의 악천후로 25일로 연기됐다가, 발사 기지의 악천후로 27일 9시 53분으로 미뤄졌다. 결국 챌린저 호 본체 추가 정비 후 28일 오전에 발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운명의 순간은 7명의 우주인을, 아니 우주개발의 꿈을 지켜보는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삼켜버렸다.

 

 

인간은 왜 그토록 우주에 가고 싶어하는가? 우주는 카오스와 코스모스로 분류할 수 있다. 코스모스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우주라면, 카오스는 미지의 우주이다. 코스모스가 질서 있는 우주라면, 카오스는 무질서한 우주이다. 시인 헤시오도스는 세계의 기원을 카오스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성서는 카오스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창세기 1:2)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장자는 혼돈(混沌)이라는 신으로 의인화한다. 사람에게는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호흡할 수 있으나, 혼돈에게는 구멍이 없었다. 이에 혼돈의 친구 숙(儵)과 홀(忽)이 혼돈의 몸에 날마다 구멍 하나씩을 뚫어주었는데, 7일이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혼돈의 몸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질서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돈의 생명은 무질서였으므로, 구멍을 뚫음으로써 혼돈은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사실상 코스모스의 탄생을 의미한다. 인간의 꿈은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카오스는 인간의 상상력이 도달하기 힘들 정도로 광대하다. 카오스의 극히 일부분을 코스모스로 만드는 데에도 인간에게는 적잖은 희생이 따른다. 그렇다면 혼돈을 혼돈으로 놓아두는 것이 선일까? 답은 없다. 다만 인간은 도전할 뿐이다. 내가 직접 도전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속의 도전 정신을 누군가는 실현한다.

 

 

 

존 덴버는 크리스타 매콜리프를 추모하며 <Flying for me>라는 노래를 불렀다. 매콜리프는, 그리고 우주선과 함께 산화한 탑승자들은 나(우리)를 대신하여 비행했다는 노래이다. 그들은 실로 우리들의 꿈의 대변자이다. 그들의 희생은 곧 우리의 희생과 다름없다. 존 덴버는 우주인들의 희생의 의미를 너무나도 애절하고도 적절한 선율과 가사에 담았다. “나도 또한 날고 싶은 이였다/ 하늘 속으로 뛰어드는 불의 화살에 오르고 싶었다/ 나는 모든 사람, 모든 어린이, 모든 어머니와 아이들을 대신하여 가고 싶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을 별을 향해 나르리”라는 꿈꾸는 듯한 가사는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을 대변한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은 그것이 혼돈의 몸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무모한 것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와 정신의 총체적인 욕망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챌린저 호의 참사의 충격은 너무도 컸다. 우주왕복선 발사 계획이 모두 중단되어 2년 8개월 동안 우주왕복선의 운용이 전면 중지되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딴 학교, 도로, 건물 등이 생겨났고, 달의 크레이터와 소행성에도 희생자들의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학자 출신인 맥네어와 교사 출신인 매콜리프의 이름을 따 개명된 학교가 많다. 승무원들의 유족이 중심이 되어 비영리 교육재단인 챌린저 재단이 설립되었다. 챌린저 재단은 미국 내외에 약 60여 개의 우주과학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도 양주에 위치한 송암천문대에서 챌린저 러닝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존 덴버의 노래 외에도 챌린저 호와 승무원들을 추모하는 노래가 다수 만들어졌다. 스웨덴의 그룹 유럽의 <The Final Countdown>은 챌린저 호와 승무원들을 추모하는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 우리는 구름을 걷는 기분이 된다. 챌린저 호의 폭발 장면과 희생자들 마음속의 큰 꿈이 노래 속에서 어우러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온다. 장 미셸 자르는 텍사스 주와 휴스턴 시의 1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Randez-vous VI>을 공동작곡한 로널드 맥네어를 추모하여 <Last Randez-vous(Ron's Piece)>로 제목을 바꾸어 연주하였다.


챌린저 호의 폭발로 인해 1986년 1월 28일은 이렇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그날은 우주를 향한 인간의 도전이 아름답게 산화한 날이다. 특히 평범한 민간인이자 교사로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더 큰 교실로 안내하려던 크리스타 매콜리프의 꿈은 존 덴버의 노래와 함께 아직도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우주의 발견>(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푸른숲)
우주에 대한 꿈은 과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인 것이었다. 신화를 과학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주의 발견’이다. 과학은 신화와 대립되는 것임에도, 우주를 발견하려는 인간의 꿈에 의해 어느새 과학이 신화와 친구가 되었다. 미지의 신화를 과학으로 만들어온 인간의 놀라운 힘, 그러나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손바닥 위에서 추는 춤! 1986년 1월 28일 챌린저 호의 폭발은 그 춤의 위험함을 준엄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이 그 위험한 춤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위험한 만큼 매우 매력적인 것이 우주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발견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한스 할터 지음, 말글빛)
이 책은 세계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혁명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의 마지막 유언을 담고 있다. 그런데 1986년 1월 28일 폭발한 챌린저 호가 남긴 블랙박스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 흥미롭다.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연료탱크에 이상이 생겨 플로리다 해안에 거대한 불덩어리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그때 탑승하고 있던 6명의 남성 우주비행사와 1명의 여성 우주비행사는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폭발하자마자 비행사들이 바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그들의 대화 내용 속에서 7명의 비행사들이 바다로 탈출하려 했다고 말한다. 인용하자니 좀 길게 느껴지지만, 발사 후 그들이 대화를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그 시간은 지극히 짧은 것이었다. 여자 목소리는 당연히 크리스타 매콜리프의 음성이다.

 

<출발 후 58초>

마이클 스미스(조종사) : 출력을 높입니다.
59초 딕 스코비(선장) : 로저.
60초 스미스 : 여러분, 이것 나는 것 좀 보세요! 야호! 35,000피트, 마하 1.5.
73초 스미스 : 아! 이런!(여기서부터 기록이 훼손됨)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 신이시여! 안 돼! 안 돼!
여자 : 어머나! 신이시여!
여러 목소리 : 너무 뜨거워. (흐느껴 우는 소리)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제발 그 상황이, 말하지 마세요. 앗! 신이시여! 지금 눌러욧!
여자 : 이렇게 죽게 내버려두지 말아요. 지금 여기서는 아니라고요.
남자 : 당신 팔이…… 앗, 안 돼요.
여자 : 정신이 혼미해져요.
남자 : 아직 우리가 죽은 건 아니오.
남자 : 단 하나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빌 수만 있다면…… (비명)
남자 : 그녀가…… 그녀가…… 젠장!
남자 :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남자/여자 : (비명) 예수님! 안 돼요! 안 돼요!
남자 : 그녀가 의식을 잃었어요.
남자 : 어쩌면 행복한 건지도 몰라.
남자 : 세상에. 물이로군. 우리는 죽었어! (비명)
여자 : 모두 안녕(흐느낀다). 사랑해요.
남자 : 안전벨트를 매! 안전벨트를 매라고!
남자 : 물이 비상착륙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남자 : 비상착륙을 준비해!
남자 : 불가능해! 난…… 난……
남자 : 우리 아버지시여…….
남자 : 그쪽 당신들은 어때요?
남자 : 당신은 나의 목자시며, 나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내가…… 내가 어두운 계곡에서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주의 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후 정적이 흘렀다. 캡슐은 400h/km의 속도로 바다와 충돌했다. 그로부터 6주 후 사망자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