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2월 9일 영국 BBC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처칠의 연설 일부다. “장비를 주면, 우리가 끝장내겠습니다”는 특히 유명한 구절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은 전쟁 물자를 구입할 돈도, 운송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무기수출법은 대금 선불과 구입자 운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처칠의 호소는 ‘무기를 그냥 달라. 뿐만 아니라 운송까지 책임져 달라’는 뜻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를 설득해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통과시키고 1941년 3월 11일에 서명했다. 미국 방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어떤 나라에도 무기를 대여할 수 있는 획기적 법안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은 310억 달러어치 무기를 공급받았다. 연설대로 ‘우리가(영국이)’ 끝장 낸 것은 아니었지만, 무기대여법 시행으로 전쟁의 ‘끝장’이 비교적 분명해진 셈이다. 이렇게 볼 때 2월 9일의 연설은 시의 적절했다. 전쟁 기간 BBC 방송연설을 통해 영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었던 처칠. 1940~41년 겨울은 영국민들 사이에서 처칠의 인기가 정점에 달한 시기다.
정점은 곧 내리막을 뜻한다. 라디오 청취자 가운데 80% 가까운 사람들이 처칠의 방송연설을 들었지만, 1941년 중반 이후 60%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까닭이 뭘까? 1941년 하반기부터 독일의 영국 본토 침공 위협이 잦아들었다. 독일이 6월부터 소련을 침공함으로써 영국이 더 이상 홀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영국민들은 집단적 포위 심리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고, 도전적 자의식도 옅어졌다. 이 점은 우리가 처칠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시사해준다. 전쟁과 위기 때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라는 것. 1945년 7월 5일 총선에서 일반의 예상과 달리 처칠의 보수당은 패했다. 유권자들은 전시 때 처칠의 리더십을 존경해마지 않았지만, 충분한 고용 기회, 보건 서비스 확충,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구호로 복지 국가를 약속하는 노동당의 선거운동 메시지, ‘우리 모두 미래와 마주하자’에 공감했다. 처칠은 노동당의 프로그램이 게슈타포적인 수단을 필요로 한다고 비판했지만, 다수 국민은 이에 공감하지 않았다. 이것은 전시 영국을 이끈 리더십이 평화 시기 영국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