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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이 생각보다 별로인 이유

나 그 네 2010. 6. 16. 18:03

남아공 월드컵이 생각보다 별로인 이유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기대에 부푼 축구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을 앞두고 거금을 들여 42인치 텔레비전까지 장만하면서 행복한 한 달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텔레비전으로 월드컵이 아닌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번 월드컵, 정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재미없는 경기로 일관하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이 생각보다 별로인 이유를 꼽아봤다.


자블라니를 프로배구 V리그 공인구로! ⓒ연합뉴스

1. 자블라니

이 축구공을 가장한 배구공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제조사에서는 “공격수들을 위한 공”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반발력이 대단해 공격수들에게 무척 유리할 것이라면서 수비수들과 골키퍼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자블라니는 결국 역효과를 낳았다. 이 탱탱볼은 오히려 득점수를 줄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자블라니를 사용해 본 한 현역 축구선수는 “답답한 경기에 화가 나지만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 저 공은 너무 가벼워서 잘 감기지도 않고 볼 컨트롤도 잘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블라니가 낳은 역효과가 너무 많아 따로 밑에 설명을 하려한다. 이거 자블라니 하나로 논문 쓸 기세다.

2. 골이 없다

축구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골이다. 우리는 90분 동안 몇 번 오지도 않는 이 순간을 위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경기 도중 엄마가 말을 걸면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골이 사라졌다. 이번 대회에서는 16일 0시 현재 13경기에서 20골이 터져 경기당 평균 1.53골에 그치고 있다. 한 경기에서 세 골 이상 터진 경기는 독일이 호주를 4-0으로 이긴 단 한 경기뿐이었다. 한 경기에서 두 골 이상 기록한 팀도 한국과 독일, 네덜란드뿐이다. 우리는 90분 내내 쓸 데 없는 몸싸움과 무수한 코너킥, 스로인만을 지켜볼 뿐이다.

나는 0-0 경기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빠른 공수 전환과 골키퍼들의 눈부신 선방이 계속되는 경기는 0-0이어도 무척 즐겁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0-0 경기가 얼마나 소득이 없는 경기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0-0으로 비긴 우루과이와 프랑스의 경기는 최악이었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이 경기를 추천한다. 차라리 동네 초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공차는 어린이들을 지켜보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3. 프리킥 골이 없다

무려 13경기가 열렸지만 놀랍게도 단 하나의 직접 프리킥 득점도 없다. 심지어는 페널티 에어리어 앞 직접 프리킥이 골문으로 향한 것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프리키커가 온갖 폼을 다 잡고 골문을 잡아먹을 듯 달려가 찬 공은 여지 없이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특히 회전을 걸어 차는 슈팅은 터무니없이 골문을 빗나가고 있다. 또한 이번 월드컵에서는 통렬한 중거리 슈팅이 골로 연결된 적도 없다. 자블라니는 골문을 빗겨나거나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는 골키퍼에게 친절한 공이다. 후련하게 골망에 꽂히는 프리킥과 중거리슛을 보고 싶다면 당장 텔레비전을 끄고 피파 온라인에 접속하는 게 나을 것이다.

4. 뻥축구

자블라니가 이렇게 형편없으니 대부분의 팀들은 결국 ‘뻥축구’로 일관하고 있다. 경기 시작 후 한 동안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결국 후반 중반 들어 대부분의 팀들이 전술 축구를 포기하고 뻥뻥 전방을 향해 내지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1-0으로 앞서고 있는 팀은 모두 내려와 수비를 한다. 13경기 중에 무려 네 경기가 1-0 승부였다. 한 골을 목격했다면 화장실에 다녀오고 컴퓨터를 하면서 쉬엄쉬엄 경기를 봐도 크게 후회할 일이 없다.


여기가 설악산 대청봉이다. 여기서 나하고 공 한 번 찰 사람 있나. 월드컵이 이 높이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5. 고지대

이번 월드컵은 고지대에서 주로 열려 체력적으로 극심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고지대는 공기의 밀도가 떨어지고 덩달아 산소량도 줄어들게 돼 평지와 달리 조금만 뛰어도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고지대에서 90분을 뛰는 것은 평지에서 130분 이상 뛰는 것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남아공 월드컵은 놀랍게도 9개 지역 10개 경기장 중 5개 지역 6개 경기장이 1,000m 이상 지역이다. 특히 사커시티 스타디움과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이 위치한 요하네스버그는 무려 1,753m에 이르는 고지대에서 위치해 있다. 설악산 대청봉(1,707m)에서 공차는 셈이다.

현재까지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치러진 8경기 중 터진 12골 가운데 후반 35분 이후 터진 골은 불과 세 골뿐이다. 이중 네덜란드 카윗이 덴마크전 후반 39분 뽑아낸 팀의 두 번째 골(2-0승)을 제외한다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극적인 골은 로프터스 퍼스펠트 스타디움(1,214m)에서 열린 세르비아-가나전의 가나 기안(후반 38분)과 로얄 바포켕 스타디움(1,500m)에서 열린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뉴질랜드 레이드(후반 45분)의 득점이 전부다.

후반 막판 패배의 수렁에서 벗어나거나 승리를 확정짓는 골이 터져야 극적인 효과가 일어나지만 고지대에서는 선수들이 지쳐서 뛰질 못한다. 선수들이 후반 종료 시간이 되면 시간을 끌고 주심이 휘슬을 불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음부터는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래터 회장이 직접 산꼭대기에서 뛰어보고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러다 사람 잡겠다.

6. 독점중계

독점중계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아직도 방송사들은 서로의 잘못을 탓하며 상대를 헐뜯기 바쁘다. 잘잘못을 떠나 도무지 월드컵 분위기가 예전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여기에 이번에는 중계진의 자질 논란까지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물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부부젤라’ 소리를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축구팬이 얼마나 있을까. 밤마다 괴롭다. ⓒ연합뉴스

7. 부부젤라

이번 월드컵은 ‘부부젤라’라는 전통 피리가 아… 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아아아뿌우우우아아아아앙뿌우우우아아아아앙… 이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8. 개인적으로도…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축구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그래도 한국전 만큼은 거리에 나가 놀면서 보고 싶었다. 지난 그리스전도 라디오 인터뷰와 칼럼을 위해 집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몸이 근질근질해 후딱 일을 마무리하고 홍대로 나섰다. 하지만 이미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은 서로 즉석에서 커플이 돼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 많은 홍대 거리에서 맨 정신에 솔로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