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아름다운 산하

함양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스크랩]

나 그 네 2010. 11. 15. 16:06


함양=뉴시스】노상봉 기자 = 형형색색 오색 물감이 뿌려진 이 가을, 삼천리금수강산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산하(山河)가 어디 있으랴만....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과 10호인 덕유산 품 속에 자리한 함양군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은 조용히 떠나는 나만의 가을여행지로는 최고의 품격을 지니고 있어 천년의 숲과 곧은 선비의 정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화림동(花林洞)계곡

화림동(花林洞)은 ‘아름다운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이 함양군 서하면과 안의면을 지나는데 이 일대 골짜기를 ‘화림동’ 계곡이라 부른다.

화림동을 흐르는 물을 ‘금천’이라 하는데, 흡사 용이 승천 할 것 같은 짙은 물의 색깔이 푸른 구슬과 같다고 해 ‘옥류수’라고도 한다.

쪽빛 물과 기암괴석 위에 올라앉은 정자들은 전국의 어느 정자에 뒤질세라 남성적인 호방함의 기를 맘껏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은 한국 정자문화의 대표적인 고장으로 옛 선현들은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바로 이 ‘화림동’계곡이다.

특히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등은 굽이치는 계곡과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고요히 혼자만의 시공을 느낄 수 있다.

바쁜 일상을 잠시 털고 물소리에 귀 기울이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를 옆에서 듣는 양 심신의 평정심과 자아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영남사림학파의 발상지답게 이곳은 많은 선비들이 세속과 출세를 경계하고 정자에 올라 물소리, 나무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을 닮고자 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또 ‘화림동’ 계곡에는 선비들이 걷던 옛길 6.5㎞를‘선비탐방로’로 개설해 가족과 연인이 계곡을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해 놨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시골마을을 만나게 되고 가을걷이를 하는 촌로와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지친 몸을 쉬어 가려 고개 들어보면 시원하고 품위 있는 정자가 길손을 편안함으로 반기고 그 위에 잠시 몸을 뉘어 바람의 선율을 느끼면 풍류를 즐기던 옛 선현들의 흔적을 현판에서나 오래된 툇마루에서 느낄 수 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선생도 이곳 ‘화림동’을 여행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남명시의 한 구절-

푸른 봉우리 깎아 세운 듯 물빛은 쪽빛인 듯

많이 가지고 많이 간직해도 탐욕이 아니 네

이 를 잡으면서 하필 세상사 이야기하나

산 이야기 물 이야기 또한 이야기 거리가 많나니

◇ 군자정(君子亭)-문화재자료 380호

지곡면 개평마을 출생으로 초선초기의 인물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을 기리기 위한 정자다.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에 통달했으며, 조선의 최고의 유학자를 말하는 동방 5현의 한분으로 많은 유학자들의 스승으로 추대 받았다. 선생은 유학의 논리적 핵심부분인 ‘이기론’ 을 꽃 피우셨으며, 지행일치를 강조했다.

무오사화에 궁성으로 유배되고 사후엔 부관참시를 당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후에 동방 18현으로 선정돼 유교에서 ‘사표’(師表)로 모시고 있다.

이 정자는 정여창 선생이 안음현감일 때 공무의 여가에 자주 머물며 소요를 했던 곳으로 큰 바위 위에 ‘영귀대’라는 각자가 일두 선생과 관련이 있어 후에 ‘군자정’을 세웠다.

◇ 거연정(居然亭)-도유형문화제 제433호 (사진 3)

두문동 72현 중 한사람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인 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처음 시복거(始卜居) 한 것을 기념해 그의 후손 전재학과 전민진이 1872년 추모해 건립했다.

다른 정자는 자연을 조망하는 위치에 있다면 거연정은 자연과 동화돼 자연 속에 위치한 정자로 가설한 구름다리 등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병풍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자연이 내게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세상사 모든 시름을 잊게 하는 곳”이다.

◇ 동호정(東湖亭)-문화재자료 381호


동호정은 동호(東湖) 장만리(章萬里) 선생의 뜻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0년경에 세운 정자다.

동호는 조선 선조 때의 학자며 자는 문숙(文叔), 호는 동호(東湖),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 태생이다.

선생은 조선 선조(1592) 임진왜란 시 의주로 몽진 했을 때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재촉해 피신했다 하여 그 충성을 기려 호성공신에 올랐으며, ‘영세 불망비’를 세워 추대했다.

이 정자는 장만리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며 낚시터로 심심을 달래던 곳이다.

화림동 정자는 단청이 아름답고 나무계단은 도끼로 쳐서 만들어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멋스러운 것이 자랑이다.

정자 앞 푸른 물 가운데 있는 ‘너럭바위’는 해를 가릴 정도로 큰 바위라 해 차일암(遮日巖)이라하며, 그 위 금적암(琴笛巖) 영가대(詠歌臺)라는 글씨가 각자돼 있다.

◇황암사

황암사는 조선 선조30년(1597)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곽준, 조종도 등을 모신 사액(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어 현판이나 천에 글을 쓴 것)사당이다.

황석산성은 고려 때부터 있던 것으로 당시에는 방치돼 있다가 정유년에 안의현감 곽준이 성을 정비하고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끝내 산화했던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정유년(1597넌)8월16일(음)에 왜장 가또, 구로다 등의 지휘로 3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시작된다.

2만7000 병력을 이끈 왜구는 성을 겹겹이 포위, 압박하면서 회유전술로 나오지만 성내에는 당시 안음현감인 곽준(남문)과 前함양현감인 조종도(북문), 그리고 김해부사인 백사림이 성을 지키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고자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민관, 남녀노소가 혼연일체가 돼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화력과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문이 열리자, 성은 순식간 아수라장이 됐다.

민간인과 사병들은 투항하지 않고 목숨을 던져 마지막 까지 저항 해 보지만 전세가 기울자 부녀자들은 더러운 왜적에게 죽을 수 없다며 낙화처럼 떨어져 죽으니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바위가 ‘피바위’다.

곽준현감도 장렬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 두 아들과 사위 그리고 딸이 목숨을 바치니, 충과 의가 고금에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렇듯 황암사는 ‘충’과‘의’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액’을 내려 제사를 지내다가 국운이 기운 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에는 사실조차 은폐됐다가 지방민들이 발의해 성역화 사업이 이뤄져 옛 선현들의 우국충정을 느낄 수 있는 비운의 역사가 묻혀있는 장소다.

◇ 용추(龍湫)계곡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우뢰와 같고, 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곳은 옛 부터 어리석은 사람도 이 계곡의 아름다움에 삼매경에 빠진다고 했을 만큼 천혜의 아름다운을 지닌 곳이다.

이곳은 신라시대 ‘각연조사’가 창건한 ‘장수사’에 딸린 4대 암자 중의 하나인 ‘용추암’이 있다.

6.25때 장수사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용추암’이 ‘용추사’로 승격돼 남아있다. 이무기 전설이 있는 용추폭포, ‘무학대사’가 숨어 지냈다는 ‘은신암’ 매의 모양의 매바위, 삼형제의 우애가 깃든 삼형제 바위, 자연속의 휴양소 용추자연휴양림. 신라시대 이야기가 있는 용추사 일주문등은 멋스런 풍경과 함께 역사와 전설이 공존하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인근에 기백산, 금원산, 황석산, 거망산 등이 있어 10여㎞용추계곡을 끼고 등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연암물레방아공원

용추계곡 언저리에 자리 잡은 연암물레방아공원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선생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북학 실학자의 중심인물로 개혁사상가였던 박지원선생은 1792년 안의현감으로 부임 하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물을 이용해 쌀을 찧을 수 있는 ‘물레방아’를 이곳에서 처음 실용화했다.

당시 연암은 물레방아뿐만 아니라, 벽돌로 지은 건물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공작관(孔雀館)이 있어 우리나라 최초로 벽돌을 구워 건축물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605㎡의 부지에 물레방앗간, 디딜방아, 연자방아를 재현하고, 사암정 등 주변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해, 보고 쉴 수 있는 여유 공간과 옛 정취의 풍경을 되살려 놨다.

물레방아는 목재로서 지름 10m, 폭 2m로 목재물레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 용추사(龍湫寺)-전통사찰 제86호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인 쌍계사(雙溪寺)의 말사(末寺)이다.

6.25 동란 때 소실돼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해 1959년 재건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고,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덕유산장수사 일주문(德裕山長水寺 一柱門)’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 돼 있다.

이곳 장수사에서 ‘설파’ 상언대사(雪坡 尙彦大師)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華嚴經)을 강의 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광풍루(光風樓)


1412년(태종12년) 당시 안의현감인 전우가 처음 창건해 ‘선화루’(宣化樓)라고 이름 지었다.

그뒤 1494년(성종25)년엔 정여창현감이 다시 중건해 ‘광풍루’(光風樓)라 개칭 했는데, 건물구조는 정면5간, 측면2칸, 2층이며 5량 구조 팔작지붕이고 겹처마다.

‘광풍’이란 뜻은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한 말인데 ‘황정견’이 ‘주돈’이를 존경해 쓴 부분을 인용할 글귀다.

(庭堅稱 基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정견이 일컫기를 그의 인품이 심히 고명하며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도다."라고 했다.

광풍루 가까이에는 제월당(霽월당)도 있다

◇ 허삼둘(許三乧)가옥-중요민속자료 207호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한옥으로 윤대홍이 진양 갑부 허씨문중에 장가를 들어 부인 친정의 도움으로 허삼둘과 함께 지은 집이다. 조선시대 특유의 가옥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상량묵서명에‘세재무오구월상량(歲在戊午九月上樑)’이라 쓰여 있어 무오년(戊午:1918)라는 건립 연도를 알 수 있다.

이 가옥의 특징은 당시의 시대상에서 과감히 탈피해 여성중심의 공간배치와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가 앞 툇마루를 열고 토상화(土床化)한 것이 특이하며 학술적인 자료로도 중요하다. ‘ㄱ’자의 꺾이는 모서리 부분을 안쪽으로 한번 접어 생긴 공간에 배치한 부엌은 매우 특출하다.

부엌은 거의 오방형인데 꺾인 부분에 선반과 시렁을 걸어 가사활동이 편리하도록 배려했다.

또 가옥의 이름을 남자 주인의 이름이 아닌 여자 주인인 허삼둘의 이름을 따른 것도 특이한데, 아마도 경제적 실권을 안주인인 허삼둘이 결정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도 해본다.

주요 건물로는 사랑채, 안채, 곡간, 행랑채, 바같 사랑채 등이 있다

◇ 남계서원(藍 溪書院) - 사적 499호

남계서원은 우리나라에서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으로 개암 강익선생이 1552년에 건립했다.

전형적인 서원의 배치형태를 갖춘 남계서원은 ‘일자식’으로 홍살문부터 ‘풍영루’를 지나 ‘명성당’ 강당을 중심으로 거경재 와 집의재가 양 옆으로 나란히 한다.

일두 선생이 좋아한 연꽃을 상징해‘애련헌’의 현판이 있는 동재, 매화를 상징해 ‘영매헌’ 의 현판이 있는 서재가 정원을 아름다운 한편의 시로 엮어내고 있다.

퇴계 선생이 지리산유람을 하며 일두의 학문을 칭송한 7언 절구 시는 실천유학의 학문을 구축한 일두의 정신적 지향을 인정하고, 함양의 학문적 가풍을 퇴계선생이 높이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원 앞을 흐르는 남계천에서 이름을 따서 ‘남계서원’이라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유일하게 경남에서 훼철되지 않은 서원으로 그 이력을 당당히 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명성당과 풍영루에 올라 선비의 고고한 꿈을 학처럼 품고 살았던 유생이 되어봄직한 곳이다.

◇ 상림(上林)-천연기념물 154호

상림공원은 1100년 전에 최치원선생이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애민사상이 깃든 곳이다.

당초 이름이었던 대관림(大館林)은 ‘대자연의 쉴만한 숲’‘휴식을 취할 수 있는 큰 숲’을 의미하는데 요즘 자연휴양림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의역을 하자면 자연휴양림이란 의미가 함양 상림공원에서 최초로 쓰인 셈이다. 최선생이 해마다 겪는 물난리로 시름하는 백성을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상림공원이다. 상림공원은 학술적 가치와 보존 가치가 있어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전국 20여 곳의 숲 가운데 유일한 낙엽활엽수림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호안림이며, 인공림이다. 하지만 전혀 인공림답지 않게 나무들의 배열이 아주 자연스럽다.

숲 내에는 ‘사운정’ ‘함화루’ ‘최치원신도비’ 등 다양한 문화유적도 있다. 상림은 제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보존해야 될 아름다운 숲(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될 숲)으로 선정됐으며,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누림 쉼터상도 수상한 바 있다.

◇ 오도재(悟道峙)

깨달을 悟 - 길 道, 이 길을 오르게 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 길을 영남학파 종조인 김종직선생을 비롯해 정여창선생, 유호인 선생, 서산대사, 인오대사 등 많은 시인묵객이나 수행자들이 넘나들었으며 많은 여행자들이 삶의 지혜를 얻고자 이 고불고불한 고갯길을 넘는다.

오도재 정상(773m)삼봉산과 법화산이 만나는 곳에 우뚝 솟아 있는 문이 있는데, ‘지리산제일문’ 이다.

이 관문은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성곽길이 38.7m, 높이 8m , 폭 7.7m, 문루 81㎡ 규모로 우리의 전통양식을 살리고 성곽과 문루를 고루 갖춘 아름다운 팔작지붕 형식으로 2006년 완공, 지리산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웅장한 자태를 선보이고 있으며,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배호 -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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