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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폭격…결국 일본 굴복시킨 숨겨진 영웅

나 그 네 2011. 8. 5. 13:52

도쿄폭격…결국 일본 굴복시킨 숨겨진 영웅원폭투하일 맞아 주목

모 버그에 대한 미국 블로그의 이미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일인 8월 6일을 맞아 일본 본토 폭격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제2차세계 대전의 숨은 영웅 '모 버그'가 재조명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15킬로톤급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는 16만여 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위력이 엄청났다. 3일 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맨(Fat man)'이 투하됐다.

미국의 연이은 원자폭탄 투하에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 국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9월 2일, 일본이 항복문서에 사인하면서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은 마침내 끝이 났다.

미국은 왜 수많은 도시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까. 당시 히로시마는 일본군 제2사령부가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나가사키는 군수산업 물자를 생산하는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원자폭탄 투하에 앞서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때 미국 무명 야구 선수 출신인 한 첩보원이 10년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이 결정적인 정보가 됐다. '2차 대전의 숨은 영웅'으로 불리는 모 버그(Morris Moe Berg)다. 그가 첩보원으로서 살았던 지난한 삶은 지금도 베일에 쌓인 채 비밀로 남아있다.

시카고화이트삭스의 1928년 개막전 엔트리. 캐처로 모 버그가 새겨져있다
◇무명의 야구선수, 스파이 되다= 미국 ESPN과 보스턴글로브 등에 따르면 모 버그는 1902년 러시아 유태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서도 야구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야구 실력 보다는 비상한 두뇌로 더 주목을 받았다. 모버그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등 10여 개의 외국어에 능통했다. 대학 시절에는 야구 못지 않게 학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26~39년 화이트삭스와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레드삭스 등에서 유격수와 포수 등으로 활약했다.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28년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포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메이저리그 홈페이지(mlb.com)에서 28년 개막전에 그가 캐처로 나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0년대 그는 일본 대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일본 매력에 빠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모 버그의 캐리커처를 담은 포스터
이 사진들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침공으로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한다. 모 버그는 이 때 미국 대통령도 놀랄 정도의 정보를 제공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히틀러의 유럽 점령에만 신경쓰고 있던 터였다.

그가 제공한 정보는 사진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그는 베이브 루스와 함께 일본 올스타와 경기하기 위해 방문했었다. 경기 뒤, 혼자 일본을 떠돌듯이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정보였다. 이게 군사적으로 큰 기밀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2008년 10월 미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에 따르면 그가 찍은 '비밀 사진'들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국이 일본을 폭격할 때 어디에 폭탄을 떨어뜨려야 하는지, 그 지점을 선택하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

미군은 모버그의 사진을 바탕으로 낯선 아시아 섬 나라 일본의 지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42년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본 주요 도시를 폭격한 두리틀 공습작전 때 군수공장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그의 사진이 이용됐다. 항공모함에서 출동한 폭격기가 정확한 군수기지를 폭파하자 일본은 크게 당황했다. 이어 45년 도쿄대공습 작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그의 사진은 유용한 정보로 활용했다.

그는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메이저리그 코치를 그만두고 CIA의 전신인 OSS의 요원으로 활동했다. 히틀러의 원자폭탄 계획을 탐지하고, 관련자를 사살하고, 정보를 빼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 버그의 일생을 담은 책 표지
미국 정부는 그를 "2차 대전의 숨은 영웅"으로 인정해 공훈 메달을 수여했다. 그러나 모 버그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 제의도 수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는 미국의 스파이로 활약했지만 노년에는 활동을 접고 72년 5월 29일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은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회자된다. 일본을 굴복시킨 숨은 영웅은 그를 찾는 전세계인의 가슴에 그렇게 '큰 영웅'으로 남아 있다.

김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