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랫마을 대병 역평리 출향인의 글을 옮겨봅니다.
!!!!!!!!!!!!!!!!!!!!!!!!!!!!!!!!!!!!! 함께 느껴 보시지요
우리 어릴적에는 요즘 아이들처럼 공부만 한 게 아니라
집안의 자잘한 농사일을 거들어야만 했다.
그 중 중요한 일의 하나가 소먹이러 가는 것이 었다.
학교가기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이슬 맞으며 한시간반정도
소를 먹이는 일과 학교 갔다와서 오후에 소먹이러 가는 일이었다.
아이들(주로 초등생)이 학교갔다 와서 점심먹고 각자 자기집
소를 몰고 나가서 정지나무 아래 모여 있다가, 역냇물이나 큰물가에
소를 풀어놓고 약 오후 세시가 될 때까지 강에서 멱감고 놀다가
산으로 올라가 소고삐를 소의 목에 칭칭감아서 골짜기에 소를 풀어
놓고, 대장은 아이들에게 솔잎으로 제비를 뽑게하여 골바닥,상만디,
큰삐닥,작은삐닥 이렇게 각자 소를 볼 위치를 정하고 지정된 위치로
가서 놀다가, 소가 산을 넘어가면 못 넘어가도록 막아서 다시
골짜기로 소를 몰아넣었다.
물론 자기쪽 능선으로 소가 넘어가면 자기가 있는 쪽에서
는 잘 안보이므로, 건너편 능선에 배치된 아이들이 이 쪽에 대고
소넘어간다고 큰 소리로 고함쳐서 서로서로 알려 주었다.
소를 먹이면서 주로 하는 놀이가 여자애들은 소꿉놀이를 많이
했고, 남자 아이들은 차놀이나 병정놀이를 주로 많이 하면서
놀았다.
어떤때는 책이나 작은 노트같은 것을 가지고 가서 나무그늘에 앉아
공부를 하기도 했다.
소먹이는 대장은 보통 우리보다 나이가 서너살 많았는데,
자기는 소를 안보고 혼자 잠을 자거나 꼴망태를 가져와서 꼴을
베다가 나중에 집에 갈 때 지고 가기도 하였다.
역들은 아랫담 웃담 각각 따로 소를 먹이러 다녔는데,.....
웃담 아이들은 주로 동네 뒤 산쪽으로 소먹이러 가고, 아랫담
아이들은 주로 장때미산이나 큰물건너 대대쪽으로 많이 갔다.
물건너는 행정구역상 상천리에 속하지만 역들 아들이 완전 장악
하고 있어서 대대 아이들이 왜 우리 동네에 소먹이러 오느냐고
한 마디도 못했다.
삼월삼짓날에는 소먹이는 아이들이 저녁에 소를 몰고 올 때
쇠귀신이 따라온다고 하여 복숭아나무 가지로 소꼬리를 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풍속이 있었다. 칠월칠석을 전후해서는
쇠미꼬지를 지냈는데 집집마다 돈을 조금씩 거둬 수박, 참외 등
음식을 장만하고 각자의 집에서 빵이랑 감자 볶은 것 등을
가져와서 산 속의 옹달샘에서 소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고사를
지냈다. (쇠미꼬지 : 소먹이기 고사)
간혹 소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면 동네 형들이랑
어른들이 햇불을 들고 밤에 소를 찾으러 나선다.
소를 잃어버렸을 때 찾기 쉽도록 소의 목에다가 방울을 달아
놓아서 소가 움직이면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주로 소는 무덤가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소도
산속에서 무서움을 느껴 사람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본능에서
무덤가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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