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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메트릭스

나 그 네 2014. 11. 18. 12:22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는 야구에 통계학적 기법을 적극 도입해 색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희생번트가 사실은 기대득점을 낮춘다든지, 감독역량으로 1년에 바꿀 수 있는 경기 결과가 5경기 안팎이라는 이야기 모두 세이버메트릭스 연구 결과 나온 이야기다. 이제는 보편적인 기록이 된 OPS도 원래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이제 세이버메트릭스가 구단 운영에 큰 영향을 준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새로운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이 등장하면 해당 인물을 구단에 스카우트 할 정도로 현실 도입에 열성적이다. 얼마나 이용하느냐에 차이는 있어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모두 세이버메트릭스를 구단 운영에 접목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NC와 넥센 등이 세이버메트릭스를 구단 운영에 도입해 화제를 모았었다. 두 팀 모두 역사가 짧은, 비교적 젊은 구단이다. 그랬기에 원년구단인 롯데가 구단운영에 세이버메트릭스를 도입한 것은 놀랄만한 뉴스였다.

최하진 전 사장은 2013년 롯데에 부임, 첫 해에는 크게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야구단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하다가 롯데에 왔기 때문에 업무파악에 주력했다. 그리고 2014년, 최 전 사장은 본격적으로 롯데에 세이버메트릭스를 도입하고자 한다. 관련 부서를 신설, 자료를 수집하도록 했고 이를 바탕으로 선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외국인타자 루이스 히메네스가 그 사례다. 히메네스 영입 당시 롯데는 진부한 '힘과 정교함을 갖춘 타자'와 같은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았다. 대신 '선구안이 뛰어나 볼넷과 삼진비율이 좋고, 출루율까지 갖췄다'고 설명했다. 롯데가 메이저리그 경력이 일천한 히메네스를 영입하면서 비디오도 참조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마이너리그 타격 기록들이었다. 출루율이 좋고 순수장타율이 높았던 최준석 FA 영입도 세이버메트릭스 영향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최 전 사장은 빅볼 신봉자였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를 선호했던 그는 현장에 '번트를 대지 말라'고 지시했다. 세이버메트릭스에서 희생번트야말로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특정상황에서 단 1점이라도 올릴 '득점확률'은 높여줄지 몰라도 얻을 수 있는 총 득점인 '기대득점'은 낮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전 사장의 시도는 비극으로 끝났다. 현장과 소통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지위를 이용해 압박을 가했다. 현장에서는 외야수 외국인타자 영입을 요청했지만 1루 수비만 가능한 히메네스를 데려왔고, 최 전 사장은 감독 고유권한인 작전까지 간섭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방향대로 팀을 억지로 끌고가고자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숫자를 보고 뽑은 히메네스는 분명 훌륭한 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그렇지만 정신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시즌 초중반 맹활약을 펼쳤지만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구단과 마찰을 빚었고 분위기만 흐렸다. 현장 개입은 선수단과 구단 사이에 갈등의 골만 깊어지게 했을 뿐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 전 사장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CCTV 사찰이라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선수들을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장기판의 말로 생각한 그는 조직적으로 선수단을 감시했고 결국 그 사건으로 쫓겨나듯 롯데를 떠나야 했다.

어쩌면 그는 '한국의 빌리 빈' 소리를 듣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큰 상처만 남겨놓고 떠났다.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도구를 롯데에 접목해보고자 한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실현방법은 결코 야구계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