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은 예부터 ‘절식’과 ‘시식’을 했습니다. 24 절기와 명절에 맞춰 먹는 음식이 바로 절식(節食)입니다. 입춘(立春)에 궁중에선 수라상에 오신반(五辛盤)을 올리고, 민가에선 세생채(細生菜)를 즐겨 먹었습니다. 시식(時食)은 제철 음식을 가리킵니다. 조상이 즐긴 절식과 시식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오곡밥, 밤·호두 등 견과류, 다양한 채소가 밥상에 오르는 대보름 절식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강식이다. 육당 최남선은 “제철에 나는 재료를 그 때에 맞게 조리해 먹는 음식을 절식이라 이르니 흔히 명일(明日)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각미(覺味)했다”고 표현했다. 계절에 순응하는 절식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떡국
●대보름(음력 1월 15일) 절식이 유난히 많은 날이다. 이 날의 주식은 약식과 오곡밥, 반찬은 묵은 나물, 즉 상원채(上元菜)다. 찹쌀·차수수·팥·차조·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이웃과 나눠 먹는 것도 대보름의 미풍양속이다. 오곡밥과 동의어인 백가반(百家飯)은 ‘백 집이 나눠 먹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오곡밥이 서민의 절식이라면 상류층에선 약식(藥食), 즉 약밥을 지어 먹었다. 찹쌀에 대추·밤·잣·참기름·꿀·진장을 버무려 쪄낸 찰밥이다. 약밥이라고 불린 것은 옛 사람들이 약처럼 여겼던 꿀을 넣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삼짇날(음력 3월 3일) 이 무렵엔 들판에 나가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겼기 때문에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그 수가 크게 줄었지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다. 꽃샘추위가 아직 남았지만 이즈음엔 산야에 냉이·달래·씀바귀 등 봄나물이 새싹을 틔우고 개나리·진달래 등 봄의 전령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삼짇날 절식으론 진달래화전·진달래화채·탕평채·수면 등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은 이날 왕실의 정원인 비원에서 진달래(두견화)를 따 화전을 지졌다. 먼저 가묘에 바치고 모든 사람이 즐겨 먹었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제사·성묘를 하는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다.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 등의 음식을 차려 성묘를 하고 제사를 지낸다. 한식은 대개 청명(淸明)일과 겹치거나 그 다음날이다.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오십보백보란 의미)란 속담이 나온 까닭이다. 이날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것은 오래된 풍습이다. 그래서 한식(寒食)이다. 찬 음식을 먹는 연유는 중국 춘추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晋)나라의 충신 개자추가 간신으로 몰려 그의 어머니와 함께 면산에 숨어 살았다. 후에 누명이 벗겨져 조정에서 그를 다시 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를 하산하게 하려고 산에 불을 놓았는데 그만 불에 타 죽었다. 이 충신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더운 밥을 삼가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한식의 절기 음식은 쑥떡·쑥탕(쑥국) 등 쑥을 재료로 한 음식이다.
양(陽)이 성(盛)한 날이다. 대표 음료는 제호탕, 절기 음식은 수리취떡(차륜병)·도행병·도미면·준치만두·앵두편·앵두화채 등이다. ‘제왕의 음료’라고 불리는 제호탕은 뛰어난 맛·약성을 지녔다. 한방에선 땀을 많이 흘려수릿날·천중절·중오(重午)절·단양(端陽)이라고도 불린다. 이날은 기력이 쇠진해진 사람에게 권한다. 마시면 금세 갈증이 풀리고 가슴 속이 시원해지며 입안에서 향기가 오래 간다. 서민은 단옷날 앵두화채를 즐겨 마셨다. ‘썩어도 준치’(낡거나 헐어도 가치 있는 것을 가리킨다)란 속담 때문에 널리 알려진 준치로 국·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붕어찜·도미찜 등 생선 요리도 단오의 절식이다.
소두(梳頭)·수두(水頭)라고도 한다. 소두란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우리 조상은 이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았다. 또 유두면(流頭麵)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유두면은 유둣날 만들어 먹는 밀가루 국수다. 이날 유두면을 들면 여름 내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유두는 물을 중시하는 명절이다. 물은 부정(不淨)을 씻는 것을 의미한다. 유둣날 탁족(濯足) 놀이를 즐겼는데 단순히 발을 씻는 것이 아니라 심신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초복·중복·말복을 통틀어 삼복이라 한다. 삼복은 양기가 성한 날이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엔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기술돼 있다. 우리 선조는 삼복을 더위에 지쳐 허해진 몸을 보하는 날로 여겼다. 복날 보양을 위한 음식 재료로 널리 쓰인 것은 개고기·닭고기·민어·팥 등이다. 개장국(보신탕)·계삼탕(삼계탕)·육개장·민어탕·팥죽· 임자수탕(깻국탕)·호박 지짐·호박밀전병 등이 대표적인 복달임 음식이다.
견우·직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더 유명한 날이다. 이날 저녁엔 하늘을 보면서 동쪽의 견우성과 서쪽의 직녀성이 까치와 까마귀가 놓은 은하수(오작교)에서 만나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상상해도 좋다. 이맘때 늦더위를 우리 조상은 복숭아화채·수박화채를 즐기면서 이겨냈다. 과일 화채는 땀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고 비타민·미네랄을 보충하는 데 그만이다. 밀전병·밀국수 등도 칠석의 절식이다. 음력 7월은 농가에서도 쌀·보리가 거의 동날 시기여서 대신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써서 음식을 장만했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곱게 채썬 호박을 넣고 기름에 지진 것이 밀전병이다.
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일본인들은 신정과 더불어 백중을 2대 명절로 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요즘 거의 잊힌 명절이다. 이날 채소·과일·술·밥 등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어버이의 혼을 불렀다. 그래서 망혼일(亡魂日)이다. 머슴날이라고도 불린다. 농사일로 수고한 사람들을 모아 술과 음식을 대접했기 때문이다.
‘더도 덜도 말라’는 한가위에는 추수한 햇곡식으로 지은 햅쌀밥을 지어 들었다. 이날의 절기 음식으론 송편·토란국·토란단자·버섯전골·배수정과 등이 있다. 대표 음식은 역시 송편이다. 흰 떡 속에 솔잎에서 발산되는 소나무의 정기를 침투시킨 떡으로 추석에 송편을 먹으면 솔의 정기를 받아 소나무처럼 건강해진다고 여겼다. 추석 때 먹는 송편을 오려송편이라 했다. 오려는 올벼(햅쌀)를 뜻한다. 이날은 집집마다 송편 빚기에 정성을 다했다. 처녀들이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임신부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여겨서다. 인절미도 추석 전후에 즐겨 먹은 떡이다. ‘차진 찰떡을 늘려 끊은 맛있는 떡’이라는 데서 인절미(引切米)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오곡이 풍성한 한가위에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추석다례라는 제사를 지냈다. 제사상엔 정성껏 빚은 신곡주와 삼색 햇과일·송편·밤·토란국 등이 제물로 올랐다.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을 넣고 끓인 토란국의 별칭은 토란탕·토란곰국이다. 쇠고기·도라지·표고·달걀을 익혀서 꼬치에 꿴 화양적과 닭찜도 추석의 절식이다.
●동지(冬至, 대설과 소한 사이에 든 22번째 절기)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음기가 극성하나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날이기도 하다.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밖에 할 일이 없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부른다. 옛 사람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날로 여겼다. 이날 이후 낮이 다시 길어져서다. 당연히 해의 ‘생환’을 반겼고, 축제를 벌였다. 축제엔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새알 모양의 떡(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쑤어 먹었다. 민간에선 동지를 작은 설 또는 아세(亞歲)라 했다. 팥죽에 자기 나이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은 것은 그래서다. 팥죽의 주재료는 붉은 해팥과 찹쌀가루(새알심)다. 냉면·비웃구이(청어구이)·동치미·수정과·타락죽(우유죽)· 전약·식혜·골동면(비빔밥·비빔국수) 등도 동지에 즐긴 음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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