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아름다운 산하

추억의 晋三線

나 그 네 2010. 1. 8. 18:37

개양~사천~삼천포 '晋三線의 추억'
■폐선 '진삼선' 흔적찾기 여행
최창민 기자 cchang@gnnews.co.kr  
 죽봉 금문 노룡 죽림?,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여기에다 예하 선진 개양 사천 삼천포를 들면 지명이려니 하면서 조금 이해가 간다. 이 지명이 갖는 공통점, 그렇다. 진삼선에 존재했던 역사명이다.

 진삼선(晉三線)의 이력, 1965년 12월 진주∼삼천포간 29.1km 전통(全通), 약 20년간 운행 후 아스팔트 도로에 떠밀려 승객 급감, 1982년 폐선, 개양 사천구간은 아직 남아 있지만 공군의 항공유를 실어 나르는 역할만 하고 있다. 사천 삼천포(현 사천시)간 철로부지는 90%가 국도 3호선으로 대체됐다.

 당시 남해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각종 해산물을 내륙으로 운반하고 내륙의 고구마 옥수수 감자 등을 삼천포로 옮기는 거의 유일한 운반수단이었다.

 폐선 진삼선,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역사와 터널은 몇 개였으며, 몇 개가 남아 있는지, 남아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요즘 진주 (개양)사천 간 철로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걷다가 철로에 귀를 대고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어보고, 동전도 올려보고, 폐 역사를 구경해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사천에서 삼천포간은 3호선으로 대체돼 버려 일부 역사와 터, 흔적만 볼 수 있다.

 경전선 개양역에서 분기한 진삼선은 정촌면 방향으로 내달린다. 경전철로는 윤이 나지만 진삼선은 녹슬어 있다. 경전선을 넘어 오른쪽 산길로 넘어가면 진삼선의 첫 흔적 죽봉터널이 나온다.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영화촬영지 죽봉터널

 ‘살인에 추억이라니’어법상 틀리지만 내용은 긴장감이 돈다. 연쇄 살인범을 추적해 가는 형사의 심리적 변화, 범인과의 두뇌싸움 등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형사 송강호가 범인으로 지목했던 박해일의 DNA자료가 막판 범인 것과 서로 일치하지 않아 좌절하며 울부짖는다. 박해일은 비틀거리며 이 터널 속으로 도망친다. 이 장면이 2003년 1월 여기서 촬영됐다. 길이 486m, 여느 터널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철로가 붉게 녹슬었고 잡초가 무성하다는 것.

 영화 장면을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죽봉터널을 바라보면 스산한 느낌이 든다. 길옆에는 한국특산종 왕벚나무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최봉점 할머니(71 가명)는 철도가 없던 시절인 16살 때 시집 와 65년을 살면서 진삼선의 흥망성쇄를 직접 봤다.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삼천포로 가져 가 어물전 생선으로 팔아왔다”고 말했다.

 ▲예하역과 사천역

 녹슨 철길은 죽봉마을 입구 500년 된 느티나무 곁을 빠져나와 산뿌리와 들녘 사이 경계지역을 직선으로 내달린다.

 예하역은 목과마을 금잔디 수목원 부근에 있다. 아니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죽봉, 매동, 목과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서 기차를 탔다. 진주∼통영 간 고속도로 밑으로 정촌면 예하리 강주연못을 오른쪽에 두고 달린다.

 사천역은 사천공항 입구 맞은편에 있다. 가끔 화물열차가 항공유를 싣고 와 이곳에서 하역한다. 개양 역무원은 언제 몇 회씩 오가는지에 대해서는 군사기밀이라고 했다. 사천역사는 현재 대한통운 사무실로 쓰고 있다. 역사 오른쪽에 철길이 보이지만 사천시내로 접어들면서 곧 끊어져 국도 3호선과 연결된다. 구 사천역은 삼천포 방향 사주교 부근에 있었다.

 ▲최근 철거된 선진역, 흔적 없는 금문역과 노룡역
 선진역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겨우 찾았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최근 철거됐다고 한다. 부속 건물로 보이는 창고가 있는데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있다. 일찍 왔더라면 사진이라도 건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다.

 내비게이션에 ‘금문’을 입력하니 금문교에 데려다 준다. 와룡산줄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바다로 가기 전 금문교를 통과한다. 다리 주변에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왼쪽 산 아래에는 최근 신축한 사천 신청사가 공룡처럼 버티고 있다. 낡고 보잘 것 없는 40년 전의 역을 찾고 있는데 신 청사를 쳐다보니 갑자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가는 사람에게 노룡역을 물으니 아래위를 쳐다보고 고개를 흔든다. 그 사람은 저만치 가다가 미심쩍은 듯 힐끗 뒤돌아보고 고개를 또 한번 흔들었다. 행색이 멀쩡한데 ‘왜 그러냐’는 표정이다. 기차도 철길도 없는데 역을 찾으니 이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노룡역터는 논으로 바뀌었고 대신 반대편에 ‘노룡식당’ 간판을 건 집이 있다.

 ▲반갑다, 죽림역

 왼쪽 편에 죽림역을 찾았다. 주변에 역목이 있고 그 안에 살포시 자리 잡고 있다. 스쳐 지나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다. 겉으로 보기엔 파란 지붕에 온전한 역사형태를 갖추고 있다. 옛날 ‘죽림역’이라고 적혀 있었을 법한 처마에는 어슴프레 'Skin House'라는 글이 배어나온다.

 민가로 사용되고 있는데 주인은 사진촬영을 극구 사양했다. 삼천포에 살았다는 주인은 이곳이 죽림역이라고 했다. 사천 삼천포간 국도변에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역사다.

 ▲섬이 된 삼천포역

 진삼선의 마지막 흔적 삼천포역은 가정집과 복싱도장으로 쓰이고 있다. 승객들이 오갔을 역 앞마당은 텃밭, 철길이 있던 곳에는 개사육장이 들어서 있다. 개짓는 소리에 인기척을 느껴 나온 할머니는 같은 말을 여러 번 해도 잘 못 알아들었다. 혹시 관공서에서 나와 허물기라도 하겠다. 는 말을 할까봐 걱정하는 눈치,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삼천포역은 기차가 사라지니 모든 것이 변해 버려 도시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다. 누가 이곳이 수많은 사람과 해산물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곳이었다고 생각할까. 주변에는 빌라가 지어졌고 새 도로가 나 역을 옥죄고 있는 느낌이다. 이로 인해 역사는 자꾸 외로운 섬처럼 돼가고 있었다. 폐 차량이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침범하지 말라는 표시 같다. 아마도 곧 그 흔적마저 사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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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뚫릴 뻔 한 육십령 터널

 진삼선은 원래 김천~삼천포간 즉 김삼선, 혹은 대전∼삼천포 대삼선 일부노선이다. 1965년 12월 사천에서 삼천포까지는 완공됐으나 나머지는 계획에만 그쳤다. 나머지는 어떻게 됐을까.
 재미있는 사실하나,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직전 한국도로공사 건설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관계자는 육십령 터널을 뚫기 위해 측량을 실시했는데 이때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육십령 터널은 워낙 대규모의 공사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공사비가 소요됐는데 측량하는 과정에서 이보다 먼저 누군가가 측량을 해놓았던 흔적, 즉 ‘큰 구멍’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육십령에 터널을 뚫기 위해 이보다 먼저 측량 한 뒤 이를 표시해 놓은 것이다. 뒤에 알아본 결과 이는 일제 때 것으로 밝혀졌다.

 일제는 당시 지하자원 등 광물 수탈을 위해 대전∼삼천포간 철길을 예정했었는데 진주∼삼천포간만 먼저 개통하고 진주∼대전간 개통은 뒤로 미뤘다는 것이다. 결국 진주∼대전간은 개통하지 못했지만 흔적은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더 놀라운 것은 현대장비를 이용해 측량한 결과 이 구멍이 10cm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관계자는 이 외에도 현 대진고속도로 상에서는 일제가 철길을 놓기 위해 노반을 정리한 곳이 여러 곳 발견됐다고 말했으며 이는 지금의 진주∼대전간 고속도로 위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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