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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나 그 네 2011. 7. 22. 12:38

 

문화일보여행

 

지리산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어 지리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금대산(847m)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 곳에서 정작 운해 속에 잠긴 지리산 능선보다 더 마음을 뺏긴 곳은 뒤돌아서 내려다본 마천면과 유림면 일대의 풍경이었다. 운해가 척척 내걸린 산자락 사이로 한신계곡과 칠선계곡에서 흘러온 지리산의 맑고 시린 물이 엄천강을 이뤄 흘러가고 있다.

경남 함양. 오래도록 궁벽했던 땅입니다. 남덕유산의 거친 산자락이 턱밑을 막아서거나 지리산의 유장한 능선이 뒤통수를 치는 심산유곡의 마을을 거느리고 있으니 왜 안 그랬겠습니까. 함양에서는 그곳이 얼마나 궁벽한 곳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일화와 자주 맞닥뜨립니다.

유림면 옥산마을 삼거리쯤에서 만난 이야기 한 토막. 한때 삼거리 부근에는 인근 산간오지 주민들이 장을 보러 오던 ‘옥내장’이 섰다는데, 이곳에 ‘한 아낙이 콩 다섯 쪽을 팔러 나왔더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돕니다. 아무리 어려운 살림이었대도 아무렴 ‘콩 다섯 쪽’을 팔겠다고 장터에 좌판을 폈을 리야 있겠습니까. 아마 다른 마을 사람들이 이곳 산간마을의 누추함을 얕잡아 이르던 이야기였겠지요. 그래봐야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도 형편은 다 ‘거기서 거기’였지 싶습니다. ‘한치마을 처녀가 수동면 세평마을로 시집가니 출세했다고 하더라’는 우스개는 함양 사람이라면 웬만해서 다 아는 이야기랍니다. 한치마을이나 세평마을이나 둘 다 찢어지게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그나마 세평마을 주민의 형편이 ‘새끼 손톱만큼’ 낫다 해서 이런 이야기가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함양은 물론, 그때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우선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가 함양 땅에서 ‘열 십(十)자’로 만납니다. 고속도로가 놓이면서 교통은 편해졌고 지리산 자락의 계곡을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한결 잦아졌습니다. 그럼에도 함양은 아직도 읍의 인구가 2만여명에 불과하고, 중심가래야 변변한 영화관 하나 없습니다. 남덕유산이나 지리산을 끼고 있는 면 단위로 가자면 마을은 아직도 깊습니다. 마천면의 삼정산 아래 군자마을이며 오도재 아래 구양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산비탈을 아슬아슬하게 깎아내 만든 천수답 다락논에 생계를 걸고 있고, 비탈진 땅에 논은 언감생심이고 습지라 밭농사조차 제대로 안 되는 땅을 부치며 고단하게 사는 산골마을도 남아 있습니다. 마천면에서 유림면 쪽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 변에는 너구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슬렁거리고, 달 없는 밤이면 산짐승이 마을로 내려와 닭을 물고 가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다락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가 콧김을 뿜으며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에 물렸다는 것 정도는 그다지 이야깃거리도 안 됩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불볕 무더위가 시작됐습니다. 도회지의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하루하루 따가운 볕에 달궈지면서 가마솥처럼 끓고 있습니다. 이런 한여름에 함양 땅으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함양은 우리 땅에서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함양 땅의 궁벽함이란 과거에는 거친 자연환경과 따라잡지 못하는 변화의 속도를 말해주는 것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궁벽함은 곧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의 소박한 정을 말해주는 징표 같은 것입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여름에 함양을 찾는다면 긴 장마로 물을 한껏 머금고 있는 지리산의 가장 유순한 길을 택해 들어 폭포 아래 수정 같은 맑은 물에 탁족을 할 수도 있고, 궁벽했으되 지조를 잃지 않았던 선비를 기려 지은 물가의 정자에 올라 손부채 하나로 더위를 쫓을 수 있습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해마다 이즈음이면 함양에서는 밀려드는 운무로 촉촉하게 젖는 깊은 산중에서 길러낸 산삼 몇 뿌리로 기력을 보신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답니다.

 

한신계곡의 가내소폭포 아래 계곡. 긴 장마로 물을 가득 품고 있는 지리산에는 이즈음 계곡마다 차고 맑은 물이 넘치듯 흘러내리고 있다. 바닥이 환히 비치는 한신계곡의 물은 손을 담그면 채 1분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차고, 계곡의 숲그늘 아래도 서늘한 냉기가 감돈다.


# 여름 ‘지리산의 백미’라 불러도 마땅하다

남덕유의 깊은 산자락도 품고 있긴 하지만, 경남 함양이라면 누가 뭐래도 ‘지리산’이다. 지리산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휴가를 내서 종주를 하려는 등산객들이 몰려든다. 산을 즐겨 찾는 이들에게 ‘지리산 종주’란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로망과 다름없다. 지리산 종주라면 열에 아홉은 전남 구례의 성삼재를 출발해 경남 산청의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기 마련이다. 성삼재까지 차가 올라가니 긴 종주 산행에서 노고단까지 고도를 높이는 노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철이라면, 그것도 올해처럼 오랜 장마가 계속된 직후라면, 함양 땅의 지리산을 놓칠 수 없는 일이다.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드는 가장 대표적인 길목이 바로 마천면의 백무동. 백무동 들머리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여름 지리산의 백미’라 부르는 데 한치도 모자람이 없다. 한신계곡을 따라가는 길은 어찌 보면 ‘지리산을 오르는 길’이 아니다. 한신계곡을 따라가면 종주코스인 세석평전까지 가닿긴 하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가겠다면 백무동의 두 갈래 길에서 한신계곡 쪽이 아닌 참샘을 지나 장터목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게 마련이다. 그 편이 천왕봉까지 닿는 시간을 2시간 이상 줄여주기 때문이다. 한시가 바쁜 등산객들이 굳이 멀리 돌아가는 한신계곡 쪽 길을 택할 리 없다.

그러니 한신계곡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계곡을 따라가는 ‘산행의 과정’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등산로라 할 수 있다. 이 길에서는 ‘지리산’이란 이름의 무게는 잊어도 좋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다고 겁을 먹을 필요도 없다. 세석평전으로 이어지는 막판의 악명 높은 오르막길만 제외한다면 한신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더없이 순하다. 굳이 능선 정상에 올라서겠다는 생각만 버린다면 가내소폭포나 오층폭포까지 아이들과 손을 잡고 가볍게 슬리퍼를 끌고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다. 평소에 산행에 자신이 없다 해도, 등산을 해본 경험이 없다 해도, 가벼운 차림으로 쉬엄쉬엄 올라가면서 맑고 차가운 계곡길을 걷다가 적당한 지점쯤에서 내려오면 된다.

# 폭포가 만들어내는 바람 아래 더위를 씻다

함양의 마천 땅에 들어 사방을 둘러보면 죄다 다랑논들이다. 첩첩이 겹쳐진 지리 연봉들이 마을을 호위하고 있는데 가파른 산자락마다 천수답이 마치 폭 좁은 계단처럼 펼쳐져 있다. 계단을 이룬 논에는 제법 자란 벼들이 파랗게 일어서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마을 주민들이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면서 짓는 소박한 농사다. 마천면에서 다랑논의 계단을 딛듯 임천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곧 한신계곡으로 이어지는 들머리인 백무동이다.

백무동을 출발해 한신계곡이 시작되는 첫나들이 폭포까지는 대략 20분 남짓. 콰르르르 천둥 같은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을 저만치 발아래 두고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숲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순하기 짝이 없다. 거친 곳도, 급한 오르막도 없으니 어지간해서는 숨이 찰 일도 없다.

 

함양의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정자로 꼽히는 거연정. 너럭바위들이 모여 만든 섬에 앉아있는 정자의 모습만으로도 풍류가 넘친다.
한신계곡의 진면목은 첫나들이 폭포부터 펼쳐진다. 여기서부터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 굽이치는 서늘한 계곡을 바짝 끼고 오르는 길이다. 계곡의 이쪽저쪽을 출렁다리로 건너며 산길을 오르다보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폭포와 함께 소(沼)와 담(潭)이 펼쳐진다. 올해는 장마도 길고 비가 많았기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물이 풍성하다. 암반을 따라 척척 내걸린 폭포들은 더 힘차고, 그 아래 푸르게 고인 물은 더 깊다.

한신계곡에서 가장 웅장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바로 가내소폭포다. 어찌나 폭포의 물줄기가 힘차던지 ‘쏟아진다’는 표현보다는 ‘뿜어낸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다. 폭포의 상단이 물길을 바짝 조이면서 폭포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포물선을 그려낸다. 폭포를 마주보고 서면 폭포의 물이 대기를 밀어내며 만들어내는 바람과 안개처럼 비산(飛散)하는 물방울이 차갑게 피부에 닿아 오슬오슬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다. 폭포가 쏟아낸 물은 어찌나 차가운지 손을 담그고 1분 이상 견디기도 힘들다. 백무동에서 가내소폭포까지는 편도 2.7㎞. 1시간 남짓이 걸린다. 가족들과 여유있게 쉬엄쉬엄 걷는다 해도 1시간30분을 넘기지는 않는다. 내친 김에 오층폭포와 한신폭포까지 돌아봐도 좋겠지만 가내소폭포쯤에서 발길을 되돌린다 해도 아쉬울 건 없다. 여기까지만 해도 계곡마다 이름 없는 폭포로 가득한 데다 어차피 이쪽 계곡은 ‘목적지’로 오르는 등산로가 아니라, 오가는 도정(道程)을 즐기는 데 더 맞춤하기 때문이다.

# 정자에 올라 부채 하나로 더위를 씻다…화림동 계곡

가마솥처럼 삶아대는 삼복의 무더위는 심산유곡의 짙은 숲과 맑은 물로 씻을 수도 있지만, 남덕유산과 지리산에 안겨 있는 함양에서라면 ‘여유로움’으로도 더위를 능히 물리칠 수 있을 법하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길인 금천이 휘감아 도는 서상면 일대의 화림동 계곡. 이곳에는 풍류 넘치는 정자들이 물가 곳곳에 서있다. 곳곳에 담과 소를 이루며 흘러내??물가에 너럭바위와 정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윽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소쇄원을 비롯한 전남 담양의 정자가 남도 정자의 풍류를 보여준다면, 이곳 함양의 화림동은 ‘영남 정자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특히나 장마 뒤끝이라 이즈음 금천은 물이 수정처럼 맑고, 정자 곁에 가지를 뒤틀고 선 노송의 가지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도 시원하다.

화림동 계곡에서 규모로 보나, 자태로 보나 첫손으로 꼽히던 정자가 바로 농월정이었다. 그러나 농월정은 지난 2003년 추석 무렵 누군가의 방화로 불에 타 사라지고 없다. 문중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다툼으로 복원도 기약이 없다. 하지만 정자가 서있던 자리의 풍류만은 여전하다. 농월정은 이름 그대로 풀면 ‘달(月)을 희롱(弄)하는 정자’일 터. 마침 정자 앞으로는 월연(月淵)이라 이름 붙은, 달이 수면에 비친다는 작은 소(沼)가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옛 선비들이 농월정에 오르면 물소리를 듣고 휘영청 뜬 달과 월연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술잔에 뜬 달을 마시는 풍류를 즐길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자의 내력을 보자면 ‘농월’이란 이름을 풍류만 해석할 수는 없다. 정자를 지은 이가 정묘호란 때 이른바 ‘삼전도의 치욕’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함양에 은거했던 선비였다는 것을 미뤄보면, 정자 이름에 등장하는 ‘달’이란 한갓 향락이나 정취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두운 현실을 환하게 밝히는 ‘선비의 정신’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 화려한 단청의 동호정, 빼어난 정취의 거연정

농월정에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황산마을에 동호정이 있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왕을 업고 의주에서 신의주에서 피란했다는 신하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정자는 화려하다. 온통 단청으로 치장된 정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들보를 가로지르는 중도리에 여의주와 물고기를 문 청룡과 황룡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 대들보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그려져 있고, 주위에는 꽃무늬를 비롯해 화려한 문양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동호정에서는 정자의 화려한 단청을 감상한 뒤에 정자 앞의 ‘차일암’이라 이름 붙은 너럭바위로 건너가 금천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하는 것이 제격이겠다.

동호정에서 다시 2㎞쯤을 오르면 금천변에 거연정과 군자정, 영귀정 등이 흩어져 있다. 정자의 아름다움을 놓고 보자면 상류 쪽의 거연정이 단연 최고다. 금천의 여러 바위들이 한데 모여 섬을 이룬 곳에다 세운 정자는 그곳으로 드는 아치형의 다리와 어우러지면서 빼어난 경관을 만들어 낸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풍류가 느껴질 정도다. 정자에 내걸린 ‘거연정기’를 보면 옛 선비들도 거연정을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로 쳤음을 알 수 있다.

거연정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군자정은 화림동의 정자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다. 군자정이 세워진 곳은 유영대로 불리던 곳인데 생전에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정여창이 처가에 들렀을 때 자주 들렀다고 전해진다. 정자가 있던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낸 정자의 기둥과 난간이 세월에 삭아 있다. 영귀정은 군자정 건너편의 바위절벽에 세워져 있다. ‘영귀(詠歸)’란 이름은 논어의 일화에서 따왔으리라. 공자가 하루는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포부를 물었다. 다들 정치적 소망을 말했는데, 그 중 증자의 아버지인 증점만이 ‘늦은 봄 옷을 갈아 입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이에 공자는 ‘나도 증점과 같다’고 했다. 번잡스러운 세상사 다 뒤로하고, 그저 소박한 삶을 바라는 이름으로 이런 이름을 걸어둔 것이리라. 함양 땅에서의 여름날 며칠 휴가도 이렇게 보낼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함양에서는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산나물의 맛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 자락의 어디에나 산채를 내는 식당들이 즐비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천면 추성리 칠선계곡 초입의 ‘칠선산장식당’(055-962-5630)을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수북하게 차려내는 열두 가지가 넘는 산나물도 좋고, 나물을 무쳐내는 손맛도 나무랄 데 없다. ‘연잎정식??내는 함양읍 교산리의 ‘옥연가’(055-963-0107)도 이름났다. 연잎으로 싼 찹쌀밥을 내고 연근 등을 재료로 한 각종 음식들을 차려내는 곳이다.

한신계곡을 목적지로 삼았다면 인근의 숙소 중에서 콘도형 숙소인 한일리조트(055-964-0097)를 추천할 만하다. 시설이 깔끔한 데다 계곡을 바로 옆에 끼고 있어 물놀이를 하기에도 좋다. 미리 예약을 하면 식당에서 식사도 차려낸다. 함양의 명소로 꼽히는 일두 정여창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 언덕 위에 자리잡은 한옥펜션 스타일의 ‘정일품농원’(1577-8958)도 추천할 만하다. 새로 지은 한옥을 숙소로 내주는데 숙박료는 4인 기준 13만원선. 비수기 주중에는 30%를 깎아준다. 그러나 휴가철 성수기는 이미 예약이 마감됐다.

함양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8년 동안 심고 길렀으니, 지금쯤 300만 뿌리는 될 거요.”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경남 함양군 서상면 깃대봉 아래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산자락 23만여㎡(7만여평)에는 산삼이 자라고 있다. 함양군 산양산삼 영농법인이 산삼을 재배하는 곳이다. 영농법인 대표 김경회(59)씨는 지난 2003년 이쪽 산자락에 터를 잡은 후 8년 전부터 산삼을 심어왔다. 그때부터 해마다 심은 산삼이 300만 뿌리가 된다고 했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자면 머리가 다 어질어질해질 정도다. 심은 지 8년이 된 것부터 이제 갓 심은 것까지 산삼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대충 산양산삼 1뿌리를 1만원씩만 잡는다 해도 자그마치 ‘300억원’어치다.

“그게 다 살아남는다면 그렇게 되겠지만, 그리 되지 않거든요. 산에 놓아두듯 기르는 것이라 8년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10% 안쪽이지요.”

이중삼중으로 통제하는 산양산삼 재배지역으로 들어서자 김씨는 이곳저곳에서 산삼을 뽑아올려 보여줬다. 이제 실뿌리를 내기 시작한 것부터 8년을 자라 제법 어린아이 새끼손가락만하게 큰 것까지 다양했다. 산삼을 한두 뿌리씩 뽑아내자, 주위가 온통 진동할 정도로 향이 짙었다.

“함양은 산이 깊은 데다 부엽토가 많아 산삼재배의 최적지입니다. 남덕유산이며 지리산이 어디 보통 산인가요. 그 산그늘의 청정한 기운 속에서 자라니 약효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함양에는 탁월한 입지조건 탓에 산양산삼의 재배가 성하다. 함양에서만 450여 가구가 산삼을 키우고 있다. 전국에서 소비되는 산양산삼의 팔할을 이들이 대고 있다. 김씨는 “함양에 온다면 산양산삼 한 뿌리쯤은 맛보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며 삼 한 뿌리를 캐서 인심 좋게 건넸다. 입안에는 향긋한 삼향이 진하게 퍼졌다. 그는 “오는 29일부터 8월2일까지 함양의 상림공원과 필봉산 일원에서 산삼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산삼주 빚기 체험도 있고, 산삼을 넣은 떡도 만들어 맛볼 수 있단다. 믿을 수 있는 산양산삼을 사올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산지의 산삼값은 5년근은 5만원, 7년근은 8만~10만원, 10년근 이상은 30만원을 호가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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