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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가 기대할만한 재능을 보유한 것 같다!

나 그 네 2011. 9. 3. 12:04

남태희가 기대할만한 재능을 보유한 것 같다!

 

 

 

 

이청용의 대체 자원으로 뽑혔지만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인 남태희

[사진 출처 - 네이버]

 

“감독님이 우리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건 딱 두 개, 바로 터치와 무브먼트에요. 바로 그것이 아스날 축구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이제는 고향 팀 바르샤의 유니폼을 입고 그렇게나 목말라 하던 우승컵을 연이어 치켜들고 있지만, 당장 엊그제만 하더라도 아스날의 상징이었던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약 2년 전 스페인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지도 철학에 대해 위와 같이 피력했다. 자신에게 오는 볼의 속도가 강하든 약하든, 매끄럽든 투박하든 안전하고 완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력. 그리고 볼이 없을 때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동료들로부터 다시 볼을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지능. 이것은 아스날 훈련장에서 벵거 감독이 추구하는 훈련의 철학임과 동시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날고 긴다 하는 유망주들 가운데 ‘아스날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있는 녀석’을 그 자신이 손수 선별해내는 엄격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런 기준을 통과한 재목들로만 이뤄진 팀이었기에 벵거 체제 하에서의 아스날은 여타 잉글랜드 클럽들과는 다른 그리고 과거 잉글랜드 클럽축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려한 패스워크와 창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스타일을 구축했던 것이다. 이제 한국축구도 벵거 감독이 요구하는 저 기준에 부합하는 선수(박주영)를 보유하게 됐다. 그런데 이미 그 선수 이전에 벵거 감독이 그 재능과 성장세에 관심을 표명했다던 어린 한국선수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어제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1차전 레바논과의 홈경기에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던 남태희가 그 주인공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레바논전에서 보여준 그의 볼 터치 하나만으로도 벵거가 관심을 표명할만 하다고 나는 느꼈다. 

 

 

약관의 나이에 어제까지 겨우 A매치 4경기를 치른 게 전부이지만 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유망주의 단순 경험 쌓게 해주기’ 차원에서 남태희를 꾸준히 소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청용과 손흥민이라는 버거운 경쟁자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부상 낙마라는 행운에 편승한 바 크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청용, 손흥민과는 달리 소속팀에서 아직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지도 못한 어린 선수를 친선경기도 아닌 가장 중요한 실전 월드컵 예선전에 선발로 기용하기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의 레바논전을 통해 나는 조광래 감독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한 결정을 내린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큰 그림에서 벵거 감독과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 원하는 인재상이 비슷하다 볼 때 남태희의 재능은 조감독이 모험을 할 만 했다.

 

 

첫 째, 보는 이들에게 볼 터치가 상당히 깔끔하다는 인상을 줬다. 사실 이 날 고양 종합운동장 피치 상태는 경기 며칠 전부터 군데군데 패이거나 붕 뜬 잔디로 인해 양 팀 선수들 모두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치기 충분했다. 실제 한국 선수들 가운데 터치가 깔끔하다고 소문난 구자철, 지동원도 비록 며칠 적응훈련을 했다지만 전반 초중반까진 자신에게 통통 튀며 굴러오는 볼을 잡아놓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남태희는 초반부터 자신에게 오는 볼을 군더더기 없이 소유했다. 내 볼을 만드는 바로 그 1차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으니 드리블 돌파 혹은 훼이크를 통한 상대 수비수의 교란이 물 흐르듯 이뤄졌고 전체적으로 우리 팀 플레이의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둘 째, 지능적인 무브먼트 역량은 최전방에서 박주영, 지동원과 쉴 새 없는 포지션 체인지를 통한 기회 창출 및 상대 수비진의 혼란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은 꼭지점 위치에 있던 지동원과의 체인지로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원톱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정상적인 컨디션일 경우 어제 남태희가 봤던 그 포지션에서 붙박이 주전인 이청용이 가장 어려워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청용은 포지션 체인지를 해도 이 쪽 측면에서 저 쪽 측면으로 가는 것에 만족하려 하고 또, 실제 소속팀 볼튼에서도 그런 역할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바운더리 안에서 상대 수비진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크로스나 스루패스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조광래 감독은 이청용에게 맨유의 루이스 나니처럼 자신의 활동 영역을 측면에 한정시키지 말고 안으로 꺾어 들어오길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조감독의 이런 요구에 실질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유형의 선수는 손흥민이다. 함부르크에서 믈라덴 페트리치와 함께 최전방에 서지만 주로 측면을 담당하면서 동료와의 연계 혹은 개인 드리블 돌파를 통해 쉴 새 없이 중앙으로 꺾어 들어오며 박스 근처에선 망설임 없이 슛을 때려대는 게 손흥민 아니던가. 그런데 그 손흥민의 대타로 긴급 수혈된 선수치고는 중앙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데 어색함이 없었다. 그리고 지동원의 첫 골로 연결된 간접 어시스트성 플레이에서도 봤듯 남태희는 지동원이 왼쪽으로 빠져나간 자리에서 공간이 생기고 찬스가 나자 빠르게 침투, 지체 없이 슛을 날리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이미 자신의 첫 A매치였던 지난 2월 터키와의 원정경기에서도 이런 과감한 슈팅 시도가 축구팬들의 호감을 샀던 기억이 있다. 분명 조감독이 흡족하게 느끼기 충분한 장면이었다.

 

 

셋 째, 일정 수준 이상의 발재간이 있어보였다. 상대 수비수와의 일대 일 경합 혹은 일대 이의 상황에 놓였어도 일차적으로 볼 터치가 좋은데다 간결한 훼이크 동작까지 곁들여 움직이면서 볼을 소유할 줄 알았다. 더구나 플레잉 타임 내내 자신의 기술적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보였다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는데, 바로 이것은 이청용이 가진 장점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어제의 레바논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고 정신적인 무장도 수준 이하였기에 그런 팀을 상대로 펄펄 날았다 해서 남태희를 당장 이청용의 공백을 메울 확실한 대체자로 확정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이 선수의 향후 행보는 조심스레 기대를 걸 만 하기 충분하다. 어쩌면 남태희에게도 사흘 간격으로 이어지는 이번 레바논, 쿠웨이트전은 대표팀은 물론 소속팀에서도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분명 레바논전에서 우려와는 달리 좋은 모습을 보인 만큼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도 조감독은 그에게 한 자리를 부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보통 자신을 데려온 감독이 팀을 떠나면 급격히 소속팀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경우가 잦은 유럽의 한국선수들인데, 남태희는 자신을 발랑시엔으로 데려온 감독이 나가고 새로운 감독이 영입되었음에도 그 감독에게 똑같이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A대표팀에서 좋은 평가를 연이어 받으면 받을수록 소속팀에서 점차 자신의 입지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어제의 6-0 대승은 대표팀의 분위기 반전이나 박주영의 경기 감각 회복, 지동원의 자신감 회복의 의미도 있지만 일단 남태희란 또 하나의 어린 재능이 축구팬들의 눈에 띄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