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cience /화 학

삼중수소

나 그 네 2012. 3. 1. 09:12

삼중수소

보석류가 아니면서도 금보다 비싼 물질이 있다. 그것도 과거에는 쓰레기로 취급받았던 물질이다. 그 물질은 1g에 2,700만 원을 호가하니 1g에 약 4만 원(2009년 2월 기준)인 순금에 비하면 약 700배나 비싼 셈이다. ‘위험한’ 쓰레기로 취급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몸값이 치솟은 주인공은 바로 삼중수소(三重水素)다.

 

 

삼중수소의 환골탈태(換骨奪胎)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보통 수소보다 무거운 수소를 말한다. T나 3H로 표기한다. 보통 수소원자는 양성자와 전자 하나씩으로 구성돼 있는데, 삼중수소원자는 여기에 중성자가 2개 더 붙어있다. 전자의 무게는 무시할 만큼 작으므로 이름처럼 ‘3배 무거운 수소’이다.


무거울 뿐 아니라 삼중수소는 보통 수소에는 없는 방사능을 가지고 있다. 삼중수소는 보통 헬륨(양성자 2개+중성자 2개)보다 중성자가 하나 적은 헬륨3(양성자 2개+중성자 1개)으로 바뀌면서 18.6keV의 에너지를 낸다. 에너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종이나 물을 뚫지 못하고 사람의 피부도 통과할 수 없다. 다른 방사능 물질에 비해 삼중수소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얘기다. 


3배 무거운 수소, 삼중수소.

 

 

산업계에서 맹활약하는 삼중수소

삼중수소가 만들어지는 곳은 중수로형 원전. 삼중수소는 이곳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의 일종이었다. 다른 방사성폐기물은 조심스레 처리돼 땅속 깊숙이 묻히지만 삼중수소는 귀하신 몸이다. 여러 산업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삼중수소는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체의 핵심 연료로 쓰인다. 삼중수소가 방출하는 베타선은 형광물질을 자극해 빛이 나게 한다.

 

삼중수소를 이용한 자발광체. <출처: (CC)Teravolt at Wikipedia.org>


마치 형광등이 전기로 자외선을 만들고, 자외선이 형광물질을 자극해 빛을 내는 원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수명이 13년 정도로 형광등보다 5~6배는 더 길다.

 

또 전기 없이 작동하기 때문에 갑자기 정전이 되면 큰 사고의 위험이 있는 공항에서 활주로 유도등으로 쓴다.  공항에서 쓰는 검색대에도 삼중수소가 쓰인다. 최근 공항에서는 샴푸, 치약, 음료수 등의 액체 물질을 갖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다. 테러리스트들이 액체폭탄을 이들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체폭탄은 공항의 폭탄탐지기가 한번 스캐닝하면 대부분 잡아낼 수 있지만 액체폭탄은 폭탄감지기가 없다. 때문에 액체 물질은 일일이 가방을 검사해 비행기 반입 자체를 막는다.

 

하지만 중성자 검색대를 이용하면 이런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중성자 검색대는 물체의 형태만 검사하는 X선 검색대와 달리 물체의 성분까지 분석할 수 있다. 중성자를 수 초 동안 쏘아 그 반응에 따라 화학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만약 물체의 화학적 특성이 나이트로글리세린, 메틸 나이트레이트같이 폭탄과 유사한 물질이라면 경고음을 울린다. 중성자 검색대에서 중성자를 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삼중수소다. 아직 오발견율이 높고, 검색 대상자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지만 곧 이런 문제들이 보완된 제품이 출시될 것이다.

 

 

미래의 에너지, 핵융합로

앞으로 삼중수소가 활약할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핵융합로다.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원리로 과학자들이 내놓은 미래 에너지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핵융합로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중수소(중성자 1개+양성자 1개)와 삼중수소. 이 둘을 초고온으로 가열하면 서로 충돌해 헬륨(중성자 2개+양성자 2개) 하나와 중성자 하나를 만들어 낸다. 이 때 질량이 줄어드는데, 이 질량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에 의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바뀐다.


그러나 이론을 실제로 바꾸기까지 해결해야 할 많은 난관이 있다. 핵융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1억℃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상태를 1분 이상 유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는 초전도체를 사용해 목표 가동 시간을 300초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KSTAT에 이어 한국과 유럽연합,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가 공동으로 만들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완성되면 목표 가동 시간은 500초 가까이 늘어날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실현화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50년 내에 핵융합로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어쨌든 핵융합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삼중수소의 주가도 덩달아 뛰고 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모형. <출처: (CC)Fabien1309 at Wikipedia.org>

 

 

세계 두 번째로 산업용 삼중수소

생산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는 2007년 7월부터 산업용 삼중수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월성원전은 앞으로 해마다 700g 정도의 산업용 삼중수소를 만들 계획이다. 중수로형 원전에는 삼중수소제거설비(TRF)라는 것이 있다. TRF는 원전을 가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중수에서 삼중수소를 분리해 따라 저장한다. 원전 주변 지역으로 삼중수소가 배출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이렇게 TRF에 모인 삼중수로를 분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TRF에 있는 삼중수소가 타이타늄에 결합돼 있기 때문에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온도를 700℃로 높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삼중수소가 새 나와 방사능 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월성원전 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과거 핵폐기물로 치부됐던 삼중수소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질로 탈바꿈했다. 안전하게 삼중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인류의 희망인 핵융합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정훈
KAIST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을 전공했다. 현재 동아사이언스의 기자이자, 과학쇼핑몰인 시앙스몰(scimall.co.kr)의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과학상품 잡지인 [시앙스가이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출처 김정훈, [과학도시락], 은행나무, 2009.

발행일  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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