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cience /화 학

방사선의 인체영향

나 그 네 2012. 7. 4. 18:03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어떻게 수습될지,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킬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은 원전 사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체에 미칠 영향이고, 나아가 '나에게(혹은 우리 가족에게) 미칠 영향'인 것이다. 그러나 막연하지만 거대한 공포심과는 달리, 구체적으로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이들은 적다. 방사성 물질은 과연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일본 후쿠시마 지역의 대피소에서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인체에 끼치는 가장 큰 영향, 방사선에 의한 세포 조직의 손상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다양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방사선에 의한 세포 조직의 손상이다. 방사선은 크게 이온화 방사선과 비이온화 방사선으로 나뉘는데, 흔히 우리가 '방사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온화 방사선'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온화 방사선이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물질을 통과할 때 이들을 이온화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알파 입자나 베타 입자, 엑스선, 감마선 등이 이온화 방사선의 대표적인 종류들이다.

 

방사성 물질에서 발생하는 이온화 방사선(방사선으로 통칭)에 노출되면, 이에 의해 생체 조직 구성 성분들이 이온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생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이나 세포막, DNA 등이 직접 이온화되기도 하지만, 더욱 많이 발생하고 더 심한 손상을 입히는 것은 물의 이온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물은 신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이 존재하는 분자이며, 물의 이온화는 강력한 산화 효과를 지닌 과산화물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포 수준의 방사선 손상은 4단계를 거쳐 일어난다. 먼저 1단계는 물리적 단계로 방사선 에너지에 의해 물이 이온화되는 것이며, 2단계는 물리화학적인 단계로 이온화된 물이 다른 물 분자와 반응해 과산화물을 생성하는 단계이다. 여기서 넘어가면 3단계인 화학적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에서는 앞서 생긴 과산화물이 세포의 단백질이나 효소, DNA 등에 작용해 이들을 산화시키거나 활성을 잃게 만든다. 앞서 일어나는 세 단계는 대개는 초 단위로 일어나는 짧은 변화이지만, 마지막인 4단계는 장기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이다. 각각의 세포가 손상의 정도에 따라 대응하는 과정으로 손상 정도가 가볍다면 스스로 복구가 가능하지만, 일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세포 분열의 지연 혹은 중단이나 세포 사멸이 나타나기도 하고, 생식세포의 경우 염색체 손상으로 인해 다음 세대로까지 이상 증세가 이어지기도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태어난 기형 송아지. 비단 동물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심각한 기형증상이 많이 나타났다.

 

이처럼 방사선은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분자들, 특히 물과 유기물을 이온화시켜 손상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감수성은 모든 세포에서 동일하지는 않다. 방사선 물질 연구 초기인 1906년에 나온 베르고니-트리본드(Bergonié-Tribondeau)의 연구에서 이미 방사선에 의한 세포 손상은 세포의 신생 능력이 클수록, 형태적ㆍ기능적 분화의 정도가 낮을수록 세포들은 방사선에 대한 감수성이 크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활발히 분열하고 분화가 덜 진행된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는 골수 조직이나 생식세포가 방사선에 의한 감수성이 높아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사선 피폭 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혈액 내 혈구 수의 감소이며, 이는 피폭에 대한 손상 정도를 측정하는 1차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방사선 피폭 후 대상자의 혈액 속 림프구 수가 큐빅 밀리미터 당 500개 이하로 관찰되는 경우, 대부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성 방사성 증후군(acute radiation syndrome)


그렇다면 방사선에 피폭되면 세포 수준의 변화가 전신적으로 어떻게 감지되는가? 방사선에 의한 직접적 피해의 대표적인 결과가 급성 방사선 증후군(acute radiation syndrome)이다. 급성 방사선 증후군이란 전신 혹은 광범위한 신체 부위가 대량의 방사선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전신 증상으로, 신경혈관계, 조혈계, 위장관계, 피부 등에 손상이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에 직접 노출되었을 경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혈액과 관련된 조혈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방사선에 의한 민감도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선량이 50rad 만 넘어도 혈액 속 림프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조혈계의 이상은 그 당시뿐 아니라 일단 피폭되고 난 뒤에도 지속되어 피폭 30일 후에 최저치에 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150rad 이하의 방사선에 노출된 경우에는 30일 후에 골수가 스스로 재생되어 회복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보다 높은 양에 노출된 경우에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800rad 이상에 노출된 경우에는 극심한 림프구 및 백혈구, 혈소판 부족으로 피폭 한 달 후에 대부분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노출된 방사선량이 500rad가 넘어가면 조혈계뿐 아니라 위장관계도 손상된다. 위장관의 점막이 파괴되며 궤양, 괴사, 복막염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2,000rad 이상의 방사선이라면 단기간에 노출되더라도 신경혈관계에 이상이 생겨 저혈압성 쇼크, 무산소성 경련, 중증의 신경계 변화를 일으켜 혼수상태 및 사망에 이르게 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방사선 피폭 환자를 무균실에서 치료하고 있는 모습.

 

보통 급성 방사선 증후군에 걸리게 되면 전구기, 잠복기, 질병 발현기, 회복 혹은 사망의 4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구기에는 오심, 구토, 무력감, 식욕 부진과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이런 증상이 1시간에서 3일 정도 지속되었다가 일시적으로 증상이 없는 잠복기가 나타난다. 잠복기는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3주 정도까지 이어지므로 얼핏 증상이 사라졌거나 자연 치유되었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시기 동안 림프구와 혈소판, 위장 점막의 세포들은 계속해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질병 발현기가 나타나는데, 이때의 질병 발현 가능성은 노출된 방사선량에 비례한다. 이 때의 증상의 경중에 따라 사망하거나 회복이 되는데, 문제는 이 시기에 회복이 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행히도 파괴되었던 골수가 다시 자라나고(골수의 경우, 90%가 파괴되어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재생이 가능하다고 한다), 적절한 치료로 인해 궤양이 생겼던 위장 점막도 치유되면 회복이 가능하다.

 


방사선 조사에 의해 나타나는 장기적인 이상 증세


하지만, 방사선에 의해 손상된 모든 세포들이 모두 복구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나 방사선 조사(照射)는 유전자의 발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의 이상 및 손상은 장기적 혹은 영구적 이상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에 방사선을 조사하면 초기에는 DNA 손상을 복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이 늘어나 방사선으로 인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데 힘을 기울이지만, 조사 시간이 늘어나거나 조사량이 많아지면 세포는 DNA의 복구를 멈추고 아포토시스(apoptosis)라 불리는 세포 사멸에 관련된 유전자들의 발현을 증가시킨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작은 손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이를 복구하는 기능을 활성화시키지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쓸모있는 물질들을 세포막 성분으로 둘러싸인 주머니에 넣어 주변 세포에 나눠주고 스스로는 작게 쪼그라들어 사멸하는 아포토시스 프로그램을 가동시킨다.

 

방사선을 받게 되면 세포는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가동되는데, 이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게 되면 세포는 사멸 대신 불멸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는데, 이것이 곧 암세포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피폭 이후 급성 방사선 증후군에서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암(특히 갑상선, 생식기, 유방, 골수, 림프선 등에 암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 역시 세포의 방사선에 대한 민감성 때문으로 추정된다)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신경세포의 지속적인 손상으로 시력이나 청력의 저하, 신경학적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방사선이 세포에 남기는 가장 큰 흉터는 생식세포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체세포에 일어난 변화는 해당 세대에 국한되지만, 생식세포에 나타나는 변화는 후대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식세포 역시 세포분열이 활발한 곳이기에 방사선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에 의해 DNA 수준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부위의 유전자가 손상된 그대로 복제되거나, 혹은 손상된 염색체가 세포 분열 시 고루 나뉘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그대로 유전적 손상을 지닌 생식세포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유전적으로 손상된 생식세포는 기형을 지닌 자손을 태어나게 만들어 불행을 대물림하게 된다.

 

 

방사선 피폭 방호 대책의 3대 기본 요소는 거리, 시간, 차폐

방사선 노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로고 <출처: IAEA>


이처럼 방사선은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 수준에서 장기적이고 영구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방사선 피폭은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다. 방사선 피폭의 방호 대책의 3대 기본 요소는 ‘거리, 시간, 차폐’이다. 즉, 방사선의 영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노출 시간에 비례하며, 물질 투과시 강도가 줄어들므로 적절한 방벽 뒤에 있으면 피폭량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즉, 방사선이 누출되면 일단 멀리 떨어지고, 직접 노출 시간을 줄이고, 가능하면 방사선 투과율이 낮은 물질로 몸을 가리거나 숨기는 것이 좋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일단 일본의 동북부에 위치한 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거리나 노출 시간, 차폐의 조건은 충분하다. 그러니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 자체가 바다 건너 우리나라까지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은 이러한 외부 피폭뿐 아니라, 종종 내부 피폭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부 피폭이란 공기 중에 흩어진 방사성 물질을 흡입 혹은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음식을 섭취하였을 경우, 혹은 상처 입은 피부 조직으로 방사성 물질이 유입된 경우, 이들이 신체 내부에 머무르며 지속적으로 방사선을 발생해 내부 조직에 지속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신체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내부 피폭


일단 호흡기나 소화기, 상처 등을 통해 인체 내부로 들어온 방사성 물질은 유입 경로, 양,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 크기, 특성, 생체 조직의 감수성, 대사 활동 등에 따라 신체 내 곳곳에 머물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일례로 호흡기를 통해 대기 중 방사성 물질을 흡입했을 경우, 해당 물질의 크기가 10㎛ 이상이면 기도에 침착하지만, 크기가 1㎛ 이하면 폐 속 깊숙이 들어가 폐포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또한 방사성 물질이 불용성인 경우 기도나 폐포에만 머물러 피해를 입힌다. 만약 오염된 음식을 통해 섭취되었다면 위장관을 통과하며 내부 점막에 손상을 입힐 수 있고, 수용성인 경우 혈액으로 흡수되어 전신으로 퍼지므로 사실상 신체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내부 피폭이다. 과거 체르노빌의 사태를 보면, 원전이 폭발하면서 대기 중으로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 라돈과 제논 가스, 그리고 다양한 방사성 물질들이 대거 유출되었고 이는 러시아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서도 차폐막을 넘어 일부 방사성 물질들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접 국가들은 분자 수준의 방사성 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이 내부로 흡수되어 내부 피폭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해당 물질의 배출에 도움을 주는 약제를 이용해 이를 외부로 배출시키거나, 혹은 이들이 신체에 침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방사능 유출과 관련해 인기가 치솟는 아이오딘화칼륨(요오드화칼륨)의 경우가 이런 내부 피폭, 특히나 방사성 아이오딘(요오드)에 의한 갑상선의 내부 피폭을 막는 작용을 한다. 아이오딘화칼륨 등 안정화 아이오딘을 미리 복용하면, 이들이 미리 갑상선에 자리를 잡아 이후 방사성 아이오딘이 체내에 유입되더라도 기존에 자리 잡은 아이오딘들이 방사성 아이오딘을 경쟁적으로 차단시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갑상선에 대한 방사성 아이오딘 침착률이 떨어지게 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 피폭을 우려하는 사람들 사이에 아이오딘화칼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안정화 아이오딘은 방사성 아이오딘이 인체 내 침투하기 전에 미리 섭취하거나 노출된 뒤 적어도 1~4시간 이내에 섭취해야만 갑상선을 보호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미리부터 먹어두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화 아이오딘은 다양한 방사성 물질 중 방사성 아이오딘에만 효과가 있으며, 그나마도 아이오딘화칼륨 자체가 발진, 발열 및 관절통, 이하선염, 출혈성 피부 손상, 구역, 구토 등의 위장증상, 고나트륨혈증, 울혈성심부전, 부종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투여해야 한다.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TOPIC / corbis, gettyimages / 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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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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