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왕은 모두 8명입니다.
튜터왕조
제인 그레이(9일의 제인)
<= 도셋후작 헨리그레이 + 프랜시스 브랜든 (헨리7세의 외손녀)
헨리 7세의 외증손녀로 책을 좋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야심가였던 어머니 프랜시스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헨리8세의 마지막 왕비인 캐서린파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헨리 8세가 죽은 뒤 캐서린 파와 재혼한 토머스 시모어(에드워드 6세의 외숙부로 헨리의 세번째 왕비인 제인시모어의 오빠)가 후견인이 되었고,
헨리8세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자 토마스 시모어는 왕의 누이들인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반대세력을 견제하기위해 두 공주 다음의 왕위계승서열자인 제인과의 국혼을 추진하나,
반대파는 토마스 시모어에게 에드워드 6세의 납치협의를 씌워 그를 처형하였고,
제인 그레이는 야심가였던 노섬블랜드 공작 더들리에 의해 그 아들과 결혼하였습니다.
에드워드가 죽고 난 뒤 노섬블랜드공작은 메리가 런던으로 돌아오기전 기습적으로 제인그레이를 왕위에 앉혔는데, 실상, 그녀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결국 아라곤의 캐서린이 낳은 메리공주가 런던에 입성하면서 즉위 9일만에 축출,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신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메리1세는 그녀의 존재에 위협을 느껴 결국 제인은 런던탑에서 참수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레이디 제인그레이의 처형'이라는 이름의 그림입니다.
역사학자들은 9일이라는 세계에 유례없는 짧은 재위기로 인해 그녀를 왕통에 넣지 않으나, 영국왕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메리1세 (블러디 메리) <= 헨리8세 + 스페인공주 아라곤의 캐서린
튜터왕조의 네번째 왕으로 헨리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 공주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헨리8세는 헨리7세의 차남으로, 형수였던 캐서린공주와 결혼하여 수많은 아이를 낳았으나, 메리를 제외한 모든자녀를 유산하거나 사산하여 폐경을 맞게 되었고,
이에 헨리 8세는 더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왕비의 시녀인 앤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과의 결혼이 '근친상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효를 주장하였는데,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의 반대로 좌절되자 영국 국교회를 성립, 로마교회를 영국에서 축출해버립니다. (당시 스페인왕은 캐서린의 오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캐서린의 조카였음)
이후, 메리는 사생아의 지위로 유폐되어 앤불린의 위협속에서 살아야 했으나, 앤불린또한 불륜을 이유로 처형된 뒤 헨리는 메리를 딸로 인정하였습니다.
헨리가 죽고 이복동생인 에드워도 6세가 즉위하자 또다시 카톨릭 교도인 메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 유폐된채 지냈으며,
헨리가 죽고 난뒤엔 클리블랜드 공작의 음모로 제인그레이가 왕위에 올랐으나, 구교도들에 의해 왕위를 되찾아 제인 그레이를 죽이고 즉위하였습니다.
재위시 강력한 구교정책을 실시하여 많은 신교도들을 학살하였기 때문에 '피의 메리'란 별명을 얻게 되었고,
스페인 왕 펠페 2세와 정략결혼을 하였으나, 못생긴 외모와 음침한 성격때문에 사랑받지 못했고, 아이도 없었습니다.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와 정치적으로 반목하였고,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요절하였는데
현재 묘는 웨스트민스트사원에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 헨리 8세 + 앤 볼린(천일의 앤)
캐서린왕비를 쫓아내고 왕비의 지위에 오른 앤불린의 딸입니다.
아들을 너무도 원했던 헨리8세는 궁중시녀였던 앤불린과 메리불린자매를 가까이 했고, 메리불린이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는 이미 기혼의 몸이었습니다. 결국 동생 앤이 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캐서린과 이혼하였고, 앤을 왕비로 만들었습니다.
왕비가 된 앤은 언니인 메리와 왕의 사생아인 조카를 시골로 유폐시켜렸습니다.
이듬해 엘리자베스를 낳았고, 그 이듬해 다시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사산이었습니다.
성격이 불같고 질투가 심하던 앤과 왕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결국 헨리는 앤을 간통죄로 참수하고 결혼도 무효화시켜버림으로써, 엘리자베스도 이복언니인 메리처럼 사생아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에드워드 6세와 메리1세의 치하기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보낸 여왕은 메리의 죽음이후 왕위에 올라 강력한 신교정책을 펼쳤고, 형부이던 스페인의 펠리페2세와의 정략결혼이 거론되었지만, 개종문제로 좌절되자 스페인과 반목하여 펠리페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해상을 재패하여 잉글랜드의 절대왕정을 완성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1세치하의 잉글랜드는 유럽의 패자였지만,
국내정치에있어서는 어린아이가 손수건 한장을 훔쳐도 사형시킬 정도의 강력한 정책을 펼쳐
사형이 가장 빈번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스튜어트를 처형하엿으나,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를 거둬 양육하였으며,
이후 그에게 왕위를 상속하여,튜터왕조의 마지막 여왕이 되었습니다.
언니인 메리1세와의 정치적 반목이 심했으나, 두사람의 관은 런던 웨스트민스트 사원의 서로 마주보는 방에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데,
묘실앞의 약력에도 이를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여왕 <= 기즈의 메리(헨리 7세의 외손녀) +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5세
생후 7개월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으며, 어머니 메리가 스코틀랜드의 섭정이되면서,
자신은 프랑스 궁정에서 앙리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치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여러언어에 능통했고, 지적이며 예술적 소양도 뛰어났고, 사냥과 춤에 능했으며 무려 180센티에 달하는 늘씬한 몸에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많은 인기를 누렸고, 영국왕실에서 가지는 왕위계승권에 유혹을 느낀 앙리 2세에 이해 프랑수와 2세와 결혼하여 스코틀랜드의 여왕,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18세에 과부가 되었고 이듬해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으나 여왕은 현실정치능력이 부족했고,
초기에는 뛰어난 신료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었으나,
이후 방탕하고 야심적이지만 외모가 뛰어났던 단리백작 헨리 스튜어트에 빠져 그와 결혼함으로써,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이후 단리가 메리의 충신을 자신의눈앞에서 여왕의 허락없이 잔인하게 살해하자 왕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 그마저 죽여버립니다.
프랑스의 방탕하고 안락하던 궁정생활에 익숙해져있던 여왕은 여전히 현실적인 능력이 부족하였고, 결국 귀족간의 신구교분쟁이 격화되면서 잉글랜드로 망명하였으나 환영받지 못했고,
헨리 7세의 외증손녀로서 왕위계승서열 2위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메리와의 정략결혼을 이용하여 엘리자베스 1세를 축출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그녀가 직접 쓴 엘리자베스 1세의 암살지령서가 발각되어참수당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여러차례의 정략결혼, 수많은 연애 스캔들과 무절제한 생활로 유명한여자이기도 합니다.
단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제임스 6세는 메리의 아들로서 스코틀랜드의 왕이, 동시에 엘리자베스 1세의 후계자로서 잉글랜드의 왕이 되면서 이후 잉글랜드 국왕은 스코틀랜드의 국왕을 겸임하게 되었고, 스튜어트왕조가 열렸습니다.
스튜어트왕조
메리 2세 <= 제임스 2세 + 앤
구교도인 제임스 2세의 딸이었으나, 할아버지인 찰스1세에 의해 메리와 여동생 앤은 신교도로 자랐습니다.
개신교인 고종사촌 네덜란드의 오린지공 윌리엄과 결혼하였는데, 아버지 제임스 2세가 카톨릭정책을 펼쳤고, 왕제임스의 두번째 왕비인 모데나가 아들을 낳자, 장차 카톨릭교도가 왕위에 오를것을 견제한 신교파는 메리와 윌리엄 부부에 대해 국내정세에 개입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청, 결국 이들의 개입으로 영국내에선 혁명이 일어나 제임스 2세가 축출되었고, 윌리엄과 메리가 공동왕이 되어 '권리장전'을 승인하였습니다.
영국 의회정치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메리는 남편 윌리엄3세와 함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되었으나, 33살에 요절하였습니다.
메리2세는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윌리엄 3세가 죽고 난 뒤 메리의 여동생인 앤이 왕위에 즉위하였습니다.
앤여왕 (그레이트브리튼의 앤) <= 제임스 2세 + 앤
메리2세의 여동생으로 윌리엄 3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덴마크의 게오르그 공작과 결혼하였습니다.
언니와는 달리 그다지 지적인 성격은 못되었고, 사냥과 브랜디를 좋아하여, '브랜디 낸'이란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왕위계승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연합법을 제정, '그레이트브리튼(대영제국)'의 최초의 왕이 되었고, 최초의 아일랜드 여왕이기도 합니다. 이로인해 그레이트브리튼의 앤으로 불렸습니다.
17명의 아이를 가졌으나 모두 사산하거나 요절하였고, 결국 후예는 개신교도인 제임스 1세의 외증손인 하노버의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조지1세로 즉위하면서
스튜어트왕조는 문을 닫고, 하노버왕조가 개창하였습니다.
속설에 여왕의 관이 정방형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비만으로 유명한 여왕이기도 합니다.
하노버 왕조
빅토리아 여왕 (알렉산드라 빅토리아 하노버) <= 켄트공작 애드워드 ( 조지3세의 왕자 ) + 작센-코브르크-자펠트의 빅토리아 공주
켄트공작이 요절하자 어머니 빅토리아의 연인인 아일랜드의 존로코이의 손에 양육되었습니다.
왕위계승권에서는 한참 먼 출생이었지만, 조지3세의 적통들이 모두 죽으면서 왕위계승자가 되었습니다.
왕위계승권자가 되자 어머니 캔트공작부인 빅토리아 공주와 존로코이는 빅토리아를 친가 가족들과 격리시키며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고, 결국 이들의 행동에 화가 난 빅토리아는 18세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이들을 축출합니다.
또한, 후견인이던 외숙부 레오폴드(후일 덴마크의 왕)또한 의회에 의해 견제당하면서 단독으로 영국을 통치하였으나, 독일의 하노버 왕조가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하지 않아 독일과의 동맹은 끊어졌습니다.
사촌인 작센-코부르크-코타의 엘버트 공작과 결혼하여 4남 5녀를 두었으며 결혼 21년만에 엘버트공이 죽자 죽을때까지 검은 상복을 입고 지냈습니다.
입헌군주로 실제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치진 못했지만, '해가 지지않은 대영제국'이란 이름을 얻게 된 영국의 전성기에 재위한 국왕으로 영국인들에게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굉장히 큰 여왕이죠.
자녀들이 유럽 각 왕실과 혼인하여 '유럽의 할머니'란 별명을 얻었고, 독일, 러시아, 그리스 루마니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웽, 스페인등 실제 오늘날 유럽의 왕족 대부분이 그녀의 후손들입니다.
윈저왕조
엘리자베스 2세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 <= 조지 6세 + 엘리자베스 보스 라이언
조지 6세의 장녀로 영국 여왕중 가장 평탄하게 왕위에 오른 여왕입니다.
1926년 출생했으며, 1947년 덴마크와 그리스의 왕족이며 팔촌인 필립 마운트 배튼과 결혼하였고,
조지6세세는 필립공을 에든버러공작,메리어니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이란 칭호를 내렸습니다.
1952년 즉위하였으며, 자녀로는
찰스왕세자,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스공주, 요크공작 앤드루 앨버트, 애드워드 앤소니 왕자등 3남 1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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