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cience /화 학

엔트로피(entropy)

나 그 네 2013. 3. 14. 13:04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이는 물이 항상 위에서 아래로 스스로 흐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물을 아래에서 위로 옮길 수는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펌프를 사용하거나 사람이 위로 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이용하여, 우리 인간은 에너지와 물질을 얻는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도 자발적 변화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것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가를 판정하는 것은 자연계의 변화를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발적인 변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변화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밖에도 온도가 영상일 때 얼음이 녹는 현상, 반대로 온도가 영하일 때 물이 어는 현상, 연료가 산소와 반응하여 타는 현상 등 자발적 변화의 예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발적으로 변할 수 있는가?’이지 ‘얼마나 빨리 변할 것인가?’는 아니다. 여기서는 변화의 속도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엔트로피, 계가 가질 수 있는 상태에 자연로그를 취한 값

자발적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개념으로 볼츠만(Ludwig Edward Boltzmann, 1844~1906)은 엔트로피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여기서 k는 볼츠만 상수이며, W는 계가 가질 수 있는 상태의 수이고, ln은 자연로그를 나타낸다. W가 1이면 lnW가 0이 되며, W가 10배가 되면 lnW는 약 2.3배가 된다. W가 큰 값이면 계는 더욱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며 무질서해져서, 어떤 순간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자발적 변화에서는 고립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자발적인 변화는 열역학 제2법칙에서 말하는 것처럼, 볼츠만이 도입한 엔트로피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고립계에서는 자발적 변화에서 엔트로피(Entropy, S)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계와 주위 사이에 일∙열∙물질의 드나듦이 없는 계를 고립계라 하며, 우주 전체는 대표적인 고립계이다.

고립계에서의 자발적인 반응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라고 했는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100명의 학생이 똑같은 동전 1,000개를 10개씩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다면, 이때 W는 1이고, lnW=0이므로 엔트로피는 0이다. 학생들은 동전을 따 먹거나 잃을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학생은 10개보다 적게, 어떤 학생은 10개보다 많은 동전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다른 개수의 동전을 갖는 방법(W)이 아주 많아지고, 따라서 엔트로피는 커진다. 그러나 다시 모든 학생이 저절로 같은 수(10개씩)의 동전을 갖게 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변화는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감소하는 변화는 자발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상온에서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대표적인
자발적인 변화이다.

앞의 예에서 동전의 개수가 변화면 어떻게 될까? 동전이 한 개도 없다면 나누는 방법은 모든 학생이 하나도 갖지 않는 방법인 한 가지뿐이며, W는 1이 된다. 동전이 1개면 누가 갖는가에 따라 100가지 방법이 있고, 2개면 10,000(100x100)가지 방법이 있다. 이처럼 동전의 수가 많아지면 W가 커지고 따라서 엔트로피도 커진다. 학생들이 동전을 나누어 가지는 것처럼, 분자나 원자들은 에너지를 나누어 갖는다. 동전의 전체 개수가 많아지면 학생들이 이를 나누어 갖는 방법의 수가 많아지듯이, 계의 에너지가 커지면 계가 가질 수 있는 상태의 수가 많아진다. 즉 계의 에너지가 증가할수록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계가 주위에서 열을 흡수하면 계의 에너지가 증가하므로 계의 엔트로피 변화는 주위에서 받은 열량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클라우시우스가 정의한 엔트로피의 열역학적 의미

계가 받은 열량과 엔트로피의 관계는 볼츠만이 통계적으로 엔트로피를 정의한 것보다 앞서 클라우시우스(Rudolf Clausius, 1822~1888)에 의해 제안되었다. 이는 증기기관처럼 순환과정으로 작동하며 열을 일로 전환하는 열기관의 효율과 관련되어 있다. 카르노(Nicolas Sadi Carnot, 1796~1832)는 열기관의 한계 효율은 보일러와 냉각기 온도에 의해 정해진다고 논증하였다.

엔트로피의 열역학적 의미를 정의한 클라우시우스


클라우시우스는 ‘외부에서 일하지 않고는 온도가 낮은 곳에서 온도가 높은 곳으로 열을 이동시킬 수 없다.’라는, 즉 ‘열은 자발적으로 온도가 높은 곳에서 온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 경험 법칙을 카르노 열기관에 적용하여 계의 상태에만 의존하는 열역학 함수인 엔트로피를 정의하였는데, 이는 ‘변화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란 뜻이다. 엔트로피의 변화량(dS)은 흡수한 열량(dQ)과 다음의 식으로 연관된다.

이식에서 등호는 가역과정에서 성립된다. 가역과정이란 변화 과정에서 미세한 변화로 변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과정이다. 즉, 평형을 유지하면서 변하는 과정이 가역과정이다. 부등호는 비가역과정인 자발적 과정에서 성립한다. 이식은 열역학 제2 법칙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물론 후에 볼츠만과 클라우시우스가 각각 정의한 엔트로피가 같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고립되지 않은 계는 자발적 과정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다

고립계에서는 에너지가 항상 보존되고(열역학 제1법칙), 자발적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열역학 제2법칙) 그러나 고립되지 않은 계에서는 주위에서 계로 또는 계에서 주위로 에너지가 이동하여 에너지가 변한다. 이때에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변화도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예로 A와 B, 두 사람이 선호도가 똑같은 5개의 식당 중 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를 들자. A와 B가 떨어져 있는 경우는 각자 5가지, 전체로는 25가지의 방법이 가능하다. 그러나 A와 B와 짝을 지어 있다면 5가지 방법만 가능하다. 따라서 짝을 지어진 경우가 짝을 짓지 않았을 때에 비해 방법의 수는 1/5이 되고, 엔트로피는 ln(1/5), 즉 1/1.6이 된다. 화학 결합 반응도 이와 마찬가지로, 분자 A와 B가 분리된 경우가 AB로 결합하여 있는 경우에 비해 엔트로피가 높다. 그러나 많은 화학 결합 반응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는 결합이 일어날 때 결합에너지를 주위로 열로 방출하고, 이에 의해 주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계와 주위를 합친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물이 얼음이 되는 경우는 이들만 보면 엔트로피가 감소한다. 그러나 이때 열을 방출하는데, 이에 의해 주위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0℃ 이하에서는 주위의 엔트로피 증가량이 물/얼음 변화의 엔트로피 감소량보다 커서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따라서 자발적이 된다. 0℃ 이상에서는 이의 반대가 되어 자발적으로는 불가능한 변화이다. 그리고 0℃에서는 이들 주위와 물/얼음의 엔트로피 변화량의 크기가 같고 부호가 반대가 되어 합이 0이 되고 평형 상태가 된다.

낮은 에너지 상태 또는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자발적 반응이 일어나

자연계의 자발적 과정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사실(즉, 우주가 더욱 무질서해진다거나 우주에서 가질 수 있는 상태의 수가 더 많아진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엔트로피 증가를 계산해서 변화가 자발적으로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주의 엔트로피 변화량은 계와 주위의 엔트로피 변화의 합이다. 따라서 주위의 엔트로피 변화량은 계에서 주위로 방출되는 열량을 온도로 나눈 값이다. 이 열량은 계의 부피가 일정한 경우는 계의 에너지 감소량이고, 압력이 일정한 경우는 계의 엔탈피 감소량이다. 따라서 계의 자발적 변화 방향은 계의 에너지(또는 엔탈피)가 감소하는 방향(이는 곧 주위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이다)과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사이의 타협으로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타협에서 받침점 역할을 하는 것이 온도이다. 에너지가 낮아지면 계는 안정해지고,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있을 수 있는 상태가 많아져 보다 자유스러워진다. 따라서 고립계에서는 개개의 자유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고립되지 않은 계에서는 안정과 자유의 타협점을 향해 자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볼 수 있다.

  1. 계와 주위

    변화가 일어나서 탐구 대상으로 삼은 것을 ‘계’라 부르며, 계를 제외한 나머지 우주 전체를 ‘주위’라고 부른다.

박준우 / 이화여대 명예교수(화학)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템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이화여대에서 화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저서로 [인간과 사회와 함께한 과학기술 발전의 발자취]가 있고, 역서로 [젊은 과학도에 드리는 조언] 등이 있다.

발행일 20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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