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aily/조선왕조, 왕릉

조선의 열두 사화(士禍).

나 그 네 2013. 5. 1. 17:45

년도 사화 옥사 환국
1453 계유정란(癸酉(靖難), 단종1년 조선 세조의 왕위찬탈사건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난이다
1456 병자사화(丙子士禍), 세조2년 조선(朝鮮) 세조(世祖) 원(1455)년에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等)이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실패(失敗)하여 일어난 사화(士禍)
1498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4년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勳舊派)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사초(史草)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사화(史禍)로 조선시대 4대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이다
1504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10년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사화. 
1506 병인사화(丙仁士禍), 연산군12년 1506년(연산군 12년)에 일어난 무오, 갑자사화의 연장된 사화로서,  그 때 화를 입지않고 빠진사람들에게 죄를 가하기 위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1519 기묘사화(己卯士禍), 중종14년 조광조의 혁신정치에 반발한 훈구파들에 의해 발생한 사화
1521 신사무옥(辛巳誣獄), 신사무옥 중종16년 1521년(중종 16)에 일어난 안처겸(安處謙) 등의 옥사.(1519년(중종 14)에 일어났던 기묘사화의 여파로 일어난 사건이다.)
1545 을사사화(乙巳士禍),  명종1년 1545년(명종 즉위년) 조선 왕실의 외척인 대윤(大尹)·소윤(小尹)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림(士林)의 화옥(禍獄)으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이다
1547 정미사화(丁未士禍),  벽서의 옥 명종2년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여파로 1547년(명종 2)에 일어난 사화이며 윤원형 일파가 대윤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건이다.
1549 유사화(己酉士禍), 기유옥사 명종4년 1549년 (명종 4년)에 이홍남(李洪男), 이홍윤(李洪胤) 형제의 난언(亂言)을 상주(上奏)하여 이흥남이 모욕죄(侮辱罪)로 몰려 그의 아우 이홍윤 등이 능지처참(陵遲處斬)되는 한편 이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이 화를 입은 사건이다. 
1589 기축옥사 선조22년 조선 선조 때의 옥사로 1589년 10월의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으로부터 시작되어 정여립과 함께 3년여 간 그와 연루된 많은 동인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1613 계축사화(癸丑士禍) 계축옥사 광해군5년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 및 서인,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獄事). 계축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계축옥사라 함.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원인이 되었음
1680 경신환국 숙종6년 1680년(숙종 6) 남인(南人) 일파가 정치적으로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사건.
1689 기사사화(己巳士禍), 기사환국 숙종15년 1680년(숙종 6)의 경신출척(庚申黜陟)으로 실세하였던 남인(南人)이 1689년 원자정호(元子定號) 문제로 숙종의 환심을 사서 서인(西人)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
1694 갑술환국 숙종20년 폐비민씨(廢妃閔氏) 복위운동을 반대하던 남인(南人)이 화를 입어 실권(失權)함.
1721 신임사화(辛壬士禍)(신축-임인) 신축환국 경종1~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사사와 연관되었고 따라서 경종의 등극을 암암리에 반대하고 이복동생 연잉군의 세제책봉을 주장한 노론세력이 목호료의 고변에 연루되에 대거 숙청됨.
신임사화(辛壬士禍)는 조선 경종 때인 1721년(경종 1년, 신축년)부터 1722년(임인년)까지 일어났던 정치적 분쟁으로,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 문제를 에워싸고 일어난 노론과 소론의 싸움으로, 신임옥사(辛壬獄事)라고도 한다.
1722 임인옥사 ~경종2
1725 을사환국 영조2년 영조 즉위 직후 소론정권에서 노론정권으로의 정권교체 영조는 자신을 지지한 노론을 통하여 강력한 왕권을 구상하였음
1727 정미환국 영조4년 노론정권에서 소론정권으로 급격한 정권교체 온건탕평파를 키워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영조의 의도
1755 을해옥사 영조31년 나주벽서사건 등 소론명문가를 일망타진한 사건
1755년(영조 31) 소론(少論) 일파가 노론을 제거할 목적으로 일으킨 역모 사건.
조선(朝鮮) 단종(端宗) 원(1453)년으로부터 경종(景宗) 2(1722)년까지에 일어난 열두 사화(士禍).
계유정란(癸酉(靖難),
병자사화(丙子士禍),
무오사화(戊午士禍),
갑자사화(甲子士禍),
기묘사화(己卯士禍),
신사무옥(辛巳誣獄),
을사사화(乙巳士禍), 
정미사화(丁未士禍), 
기유사화(己酉士禍),
계축사화(癸丑士禍)
기사사화(己巳士禍),
신임사화(辛壬士禍) 신축-임인
예송 - 예론에 관한 논쟁.
환국 - 정치국면이 뒤바뀜.
1차 예송논쟁
1659 (효종 승하)
효종승하후 인조계비(효종의 계모) 자의대비의 복장논쟁.
서인은 1년설, 남인은 3년설을 주장하여 서인의 기년설이 채택되어 서인이 정국을 주도함.
2차 예송논쟁
1674 (효종비 인선왕후 장씨 승하)
역시 이때도 자의대비의 복장으로 인한 논쟁.
서인은 대공설(9개월), 남인은 기년설(1년설)을 주장하여 현종이 남인의 의견을 채택하여 남인이 우세해짐.
경신환국
1680 (숙종 7년)
숙종의 집권초기 거대해진 남인의 방자함이 하늘을 찌름.
대표적인 사건이 허적의 유악남용사건. 숙종의 허락도 없이 빌려감.
분노한 숙종 남인을 대거 파직하고 정국을 서인으로 채움.
기사환국
1689 (숙종 16년)
15년만에 득남한 장희빈소생 왕자의 원자정호를 반대하는 서인.
서인은 인현왕후 쪽이어서 당연히 반대하지만 숙종은 분노하여 다시 남인들로 조정을 물갈이함.
인현왕후 폐비됨.
송시열의 치죄정도를 두고 남인은 청남과 탁남파로 갈림.
갑술환국
1694 (숙종 21년)
중전 장씨 일파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두고 보다못한 숙종.
폐비된 인현왕후를 다시 중전에 앉힘. 이에 따라 정국은 다시 서인이 운영하게 됨.
7년뒤 1701년 희빈 장씨의 사사여부를 두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림.
신축환국
1721 (경종 2년)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사사와 연관되었고 따라서 경종의 등극을 암암리에 반대하고

이복동생 연잉군의 세제책봉을 주장한 노론세력이 목호료의 고변에 연루되에 대거 숙청됨.

정미환국
1727 (영조 3년)
노론계통이었던 영조는 즉위하여 1725년에 신축환국과 임인옥사의 주모자인 소론인사들을 숙청시킴.
그러나 영조의 즉위에 소론계 인사 일부도 연관되어 영조는 1727년 소론계 인사도 어느 정도 기용함.
이후 탕평책으로 초당파적 인사제도를 실시. 
신축옥사

조선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은 아들이 없고 몸이 허약하였다. 이에 노론의 주도로 경종에게 왕세제 책봉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관철되어 1721년(경종 1년) 왕제(王弟) 연잉군(영조)이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더 나아가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은 경종의 병을 이유로 왕세제의 대리청정까지 주장했다.

경종은 이를 승인하였지만, 소론파의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煇) 등이 부당성을 상소하여 대리청정은 취소 되었다.

소론은 이 문제를 노론의 경종에 대한 불충으로 몰아 노론을 탄핵하였다.

이후 벌어진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사건(告變事件)으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의 4대신인 이이명·김창집·이건명·조태채 등이 차례로 사형을 당했다.

이후 이 사건은 영조의 탕평책 추진 과정에서 계속 논란이 된다.

[편집] 임인옥사

그 후 소론의 김일경·목호룡 등이 1722년(경종 2년) 음력 3월 임금을 죽이려는 역적이 있다고 고해 바쳤다.

임금은 즉시 정국(庭鞠)을 열고 목호룡이 역적이라고 지적한 정인중(鄭麟重)·김용택(金龍澤)·이천기(李天紀)·백망(白望)·

심상길(沈尙吉)·이희지(李喜之)·김성행(金省行) 등 60여 명을 잡아들였다.

백망은 심문을 당하면서 이것은 세력을 잃은 소론이 왕세제 연잉군을 모함하려고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심문을 담당하고 있던 소론은 이를 묵살했다.

이리하여 이천기·이희지·심상길·정인중·김용택·백망·장세상(張世相)·홍의인(洪義人) 등이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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