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렌(Fullerene , C60)의 분자 모형
지구촌 축제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현재 진행 중이다. 월드컵 공인 축구공은 여전히 변함없이 둥글지만 공의 디자인과 재료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 20개의 가죽 조각으로 만든 다면체(polyhedron) 축구공은, 현재 월드컵의 공인 축구공은 아니지만,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는 전통적인 축구공이다. 그런데 맨눈으로 볼 수도 없고, 더구나 공 놀이도 할 수는 없지만 축구공을 꼭 빼 닮은 플러렌이라는 분자가 있다. 그것은 탄소 원자로만 구성된 분자로, 과학자(화학자, 물리학자, 재료과학자)들의 축구공이다. 이번에는 플러렌에 대해 알아보자.
플러렌(C60)의 발견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 20개의 다면체는 꼭지점이 모두 60개이다. 그런 다면체의 꼭지점 60개가 모두 탄소 원자로 치환된 것처럼 보이는 분자가 발견되었다. 그 분자가 바로 과학자들의 축구공인 플러렌(C60)이다. 플러렌은 1985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그것을 발견한 세 명의 과학자, 로버트 컬(Robert Curl), 하롤드 크로토(Harold Kroto), 리차드 스몰리(Richard Smalley)는 1996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실제 축구공의 크기보다 약 3억분의 1 밖에 안 되지만 축구공을 꼭 빼어 닮았다. 이 분자는 벅민스터 플러렌(Buckminster fullerene)이라는 별명도 있다. 왜냐하면 미국 건축가 벅민스터 플러(Buckminster Fuller)가 1967년 몬트리올 세계 박람회장에 세운 건물 모양과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플러렌의 형성과 탄소 동소체
최초의 플러렌은 레이저를 사용해서 탄소(흑연)를 증기상태로 만들 때 형성되었다.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서 형성된 기체 상태의 탄소들이 온도가 낮아지면서 덩어리(클러스터)를 형성한 것이다. 탄소 원자 60개로 구성된 플러렌은 물론 C70, C76, C84 등과 같은 탄소 동소체(allotrope)들이 발견되었다. 동소체는 동일한 원자로 구성된 순 물질이지만 특성과 모양이 다른 물질 군(group)을 말한다. 비록 동일한 원자로 구성되었어도 원자들의 결합 방식 또는 원자의 개수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특성의 분자 혹은 물질들이 생성된다. 또 다른 탄소의 동소체인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이미 18세기 말에 알려졌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모두 탄소 원자로만 구성된 물질이다. 원자의 결합방식에서 차이가 나서 두 물질은 전혀 다른 특성을 띠고 있다. 열역학적으로는 흑연이 다이아몬드보다 안정하기 때문에 영겁의 세월이 지나면 다이아몬드 역시 흑연으로 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그 변화속도는 워낙 느리기 때문에 결혼 예물로 받은 다이아몬드가 흑연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한편 플러렌을 발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탄소 원자들이 한 방향으로 길게 결합되어 마치 원통 기둥 모양을 한 탄소 동소체도 발견되었다. 이것을 탄소 나노튜브라 한다. 그것의 모양은 조상들이 삼복 더위에 사용했다는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의 모양과 매우 흡사하다.
약 10년 전에는 원자 한 개의 두께를 가진 6각형 구조의 얇은 막으로 이루어진 2차원 탄소 동소체가 발견되었으며, 그것을 그래핀(graphene)이라 한다. 그래핀은 3차원 구조의 흑연 구조에서 2차원 평면 층을 별도로 분리해 놓은 구조이다. 그것은 매우 가볍지만 강철보다 단단하며, 또한 열전도도와 전기전도도가 뛰어나서 현재 많은 응용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 재료와 융합되어 수 많은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많은 연구자들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핀은 흑연의 얇은 막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탄소 원자의 두께로 이루어진 흑연 한 층이 갖는 독특한 물리화학적 특성과 그것의 응용 연구에 많은 연구자들이 몰두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래핀의 발견과 연구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Andre Geim)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은 그래핀이 플라스틱처럼 세상을 또 한번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물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플러렌의 탄소결합 및 응용
플러렌 내의 탄소 원자간의 결합은 다이아몬드 혹은 흑연에서 탄소원자들 사이의 결합과 또 다르다. 플러렌의 각 탄소 원자는 또 다른 3개의 탄소원자와 결합되어 있다. 각종 실험을 통해서 플러렌에는 두 종류의 탄소 결합이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다. 정오각형과 정육각형이 맞닿아 형성되는 결합과 육각형과 육각형이 맞닿아 형성되는 결합이 다른 것이다. 그 결합의 세기와 길이도 다르다. 플러렌의 영어 이름으로부터 플러렌의 이중결합 특성(영어 이름이 대개 -ene 로 끝난다)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다. 반면에 다이아몬드의 각 탄소 원자들은 4개의 다른 탄소 원자들과 3차원 공간에서 모두 균일한 결합을 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단단함 역시 이런 독특한 결합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흑연의 탄소 원자들은 2차원의 6각형 모양으로 탄소 원자들이 결합된 망상구조를 하고, 그런 망상구조의 평면 층들 간에는 약한 탄소-탄소 결합을 이루면서 3차원 공간을 채우고 있다. 평면 층간의 결합은 약한 힘만 주어도 끊어질 정도로 매우 약하다. 종이 위에 연필로 쉽게 글씨를 쓸 수 있는 것도 이런 결합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핀 못지 않게 플러렌 탄소 동소체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화학 반응을 통해서 수많은 유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플러렌의 표면을 변화시키거나, 풀러렌 안쪽의 비어있는 공간에 다른 분자를 집어 넣어 물리화학적 특성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형된 화합물들은 고온 초전도체, 윤활제, 촉매등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심지어 에이즈(AIDS) 치료 약으로 플러렌 화합물을 이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그것의 핵심은 플러렌 유도체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재생시키는 효소와 결합을 해서 그 효소의 본래의 기능을 빼앗아 버리는 데 있다. 그렇지만 플러렌이 약으로 사용되기 까지는 생체 적합성, 운반성, 부작용, 독성 효과 등 수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될 것이다.
플러렌이 알려진 후에는 과학자들은 촛불의 그을음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냈다. 등유를 태워서 어둠을 밝혔던 때에는 방을 도배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벽지가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플러렌을 비롯한 다양한 탄소 동소체들이 벽지에 붙어 있어서 검게 변했을 것이다. 만약에 일찌감치 그런 종류의 검댕을 연구했더라면 새로운 탄소 동소체(플러렌, 그래핀) 발견에 대한 업적이 우리 과학자가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하여튼 궁금한 대상 물질 혹은 자연현상이 있다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첫걸음인 것은 틀림없다.
- 글
- 여인형 동국대 화학과 교수
-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일반인을 위한 저서로 [퀴리부인은 무슨비누를 썼을까?](2007), [공기로 빵을 만든다고요?](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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