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바 둑

한국바둑의 발전사와 바둑 스포츠화의 과제 (2편)

나 그 네 2015. 11. 9. 17:23

'최종준의 스포츠현장탐색'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중국,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한국바둑이 큰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별다른 놀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바둑이 일반대중의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예와 도를 중시하는 '신선놀음'으로 불리면서 널리 성행했지만, 대중보급이 장기간 침체현상을 보이면서 지금 바둑은 본격적인 스포츠의 길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일곱번째 시간에 이어 한국 바둑의 발전사와 바둑 스포츠화의 과제에 대해 더욱 깊게 알아보겠습니다.


2. 바둑이 과연 스포츠인가?

Q
: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큰 그림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바둑이 과연 스포츠가 맞는 것인지요?

A
: 지금도 바둑, 체스Chess, 브리지Bridge 등은 큰 근육활동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가 아니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일부 스포츠학자는 “바둑은 스포츠의 필수요건인 규칙성, 경쟁성과 유희성은 있지만 물리적인 운동이 중심이 된 신체활동에 의해서 결과가 도출되지 않으므로 스포츠가 아니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날 바둑은 세계적으로 엄연하게 스포츠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의미의 스포츠는 근육의 작용에 의한 활발한 신체의 움직임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지만 날이 갈수록 스포츠의 개념은 소프트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의 의견과 달리하는 스포츠학자는 “현대의 스포츠는 격렬함에서 차분함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운동을 단순한 근육활동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분할적 사고방식으로 근육 이외의 다양한 인체내부의 상호작용에 의한 선택적 행동이 근육의 작용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스포츠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둑은 인체의 신경세포와 연결된 골격근이 대뇌의 활발한 활동으로 운동량을 발생시키는 정신과 신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마인드스포츠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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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스포츠화는 계속 진행 중 (사진 : 연합뉴스)



참고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현재의 올림픽 정식종목(하계 : 28, 동계 : 7 - 경기단체 기준) 이외에 35개의 기타종목을 올림픽정식종목이 되기 위해서 대기 중인 인정스포츠Recognised sports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야구/소프트볼, 수상스키, 댄스스포츠, 당구, 미식축구, 스포츠클라이밍, 기타 등이며 바둑과 같은 형태인 체스와 브리지도 이 인정종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0년의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서 우리나라가 3개의 금메달을 석권한 바가 있습니다. 바둑이 스포츠임을 실증하는 사례입니다.


3. 바둑의 본격적인 스포츠화를 위한 과제

 
Q : 다음으로 바둑의 스포츠화를 위한 과제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A
: 앞에서 바둑을 다른 스포츠종목에 비해서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만 바둑은 마인드스포츠의 성격상 본격적인 스포츠체제를 갖추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바둑과 일반스포츠의 가장 큰 차이점 몇 가지를 말씀 드리면 먼저 바둑은 선수(프로기사) 되기가 가장 어려운 스포츠입니다. 어릴 때부터 바둑에만 전념해도 선수가 될까 말까 할 정도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생’ 위주로 소수의 프로기사를 선발해 온 엘리트선수육성시스템을 어떻게 학원스포츠육성시스템과 조화시킬 것인지의 충돌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초단부터 9단까지의 단위가 있지만 그것이 곧 실력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어린 선수가 성인을 이길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 경기제도를 정립해야 하느냐는 것도 해결과제입니다. 또한 바둑시장의 규모 확대, 경기방식 특히 ‘불계승패不計勝敗’ 문제, 지도자와 선수의 역할정립, 기타 각종규칙의 개정 등도 스포츠화를 위한 숙제입니다.

지금부터 각각의 과제별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가. 선수양성제도의 개선과 바둑시장 규모의 확대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바둑선수(프로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부터 한국기원의 연구생이 되어서 바늘구멍을 뚫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역별 영재입단제도도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연구생제도입니다.)

 어떤 분야를 선택해도 훌륭한 장래를 기대할 수 있는 우수한 지적, 정신적, 육체적인 능력을 갖춘 청소년이 바둑 이외의 모든 다른 길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성공확률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프로기사 입문의 길을 넓혀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바둑도 다른 일반스포츠처럼 학원스포츠로 운영되면서 지덕체를 겸비한 선수의 저변을 확대해서 (프로)선수를 양성하는 순기능제도에 대한 바둑계의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지금과 같은 영재교육시스템에 의한 국제경쟁력의 확보가 약화될 것이 우려되지만 바둑계가 지혜를 모은다면 훌륭한 대책수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프로기사는 총 310명이며 남자기사가 255명, 여자기사가 55명입니다. 그런데 전체 기사 중에서 현재 각종 기전(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는 사실상 절반도 안 되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바둑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들이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바둑시장이 대폭 커져야 합니다. 국내시장 뿐 아니라 한중일 3국의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해서 국제시장으로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한중일 3국 리그전, 한일/한중정기교류전 등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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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바둑삼국지'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사진 : 연합뉴스)


나. 확고한 지역연고제도의 구축
 지난 9월 17일에 세종시바둑협회가 창립되면서 (사)대한바둑협회는 전국 17개 전체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가맹경기단체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스포츠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인 지역연고제도의 틀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포츠바둑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지역연고제도의 정착이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프로바둑의 정규리그인 ‘KB국민은행 바둑리그’와 2부인 ‘KB국민은행 퓨처스리그’에는 각기 9개의 팀이 소속되어 있고, 형식적으로는 각 팀이 연고지를 채택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 인근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정규리그 역시 주로 서울에서 대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바둑은 사실상 지역연고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고지 지방자치단체나 연고기업 등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현재와 같이 무늬만의 연고지가 아닌 실질적인 연고지 정착이 필요합니다.

 다. 선수등록, 이적제도 및 자유계약 제도 등의 정비

 현재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개인자격으로 정규 프로리그와 각종 국내기전 그리고 세계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다른 스포츠와 같이 리그에서 정한 규약에 따라 선발되어서 소속단체(구단과 같은 형태)와 계약을 맺고 선수신분이 유지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따라서 타 단체로 이적하거나 자유계약 선수의 자격을 취득하는 것과 같은 정형화 된 시스템 역시 스포츠바둑이 구비해야 할 매우 중요한 법률요건입니다.

 라. 경기규칙의 정비

 바둑의 스포츠화를 위한 또 다른 과제는 경기규칙 정비 문제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불계승부’가 대표적입니다. 대국 중에 대마가 몰살하거나 끝까지 두더라도 도저히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 경기도중에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불계패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스포츠경기의 원리는 결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둑의 불계제도는 개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향후에 바둑이 스포츠토토Sportstoto의 대상경기가 되었을 경우에도 고의적인 승부포기의 의혹이 제기 될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한국기원의 자료에 의하면 2000년부터 현재까지 본선 이상 공식대국인  33,864국 중에서 무려 34.7%인 11,755국이 불계로 승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높은 비율입니다.

이외에도 지도자와 선수의 역할 설정과 계가방식 등 다른 규칙들도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마. 전용경기장 신설

 현재 우리나라에는 바둑전용경기장이 없습니다. 바둑이 본격적인 프로스포츠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전용경기장 시설이 필요합니다. 바둑의 특성상 큰 시설비 부담 없이 전용경기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앞에서 설명 드린바와 같이 지역연고제를 강화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 정규리그와 개별 기전(국내외)과의 연계문제 정립

 KB국민은행 바둑리그가 외형상은 다른 프로스포츠리그(K리그, KBO리그 등)와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용은 많은 보완이 필요합니다. 먼저 소속선수가 너무 적습니다. 1부인 KB국민은행 리그와 2부인 퓨처스리그까지 합쳐도 남자기사 255명 중에 72명만 소속되고, 여자바둑리그 역시 전체 여자기사 55명 중 절반인 28명 만 참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규리그 중간에 중국리그나 다른 국내외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원칙설정 역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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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이세돌과 커제의 대국 (사진 : 연합뉴스)


앞에서 설명한 내용 이외에도 바둑이 스포츠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여전히 바둑의 스포츠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부 프로기사의 인식변화, 바둑의 외연확대, 국회 계류 중인 바둑진흥법의 입법화 문제, 기사의 권익향상과 현행 복지수당제도를 연계해서 발전적으로 개선하는 문제 등 제반 현안사항에 대해서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다소 아쉬운 것은 바둑이 스포츠화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양대 체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에 스포츠화를 완성하기 위한 가시적, 구체적인 작업이 다소 지연되고 있는 점입니다.

이상으로 한국바둑의 발전사와 스포츠바둑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한 과제를 탐색해 보았습니다. 부디 한국바둑이 멋진 국민스포츠로 그리고 세계최강의 국가대표 스포츠종목으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그리고 바둑이 가진 다양한 순기능이 스포츠코리아의 발전과 함께 국민의 화합과 건강수명의 연장을 통한 국민복지 향상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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