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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체육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하여(2)

나 그 네 2015. 11. 9. 17:27
개혁과 체육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하여(2)
바둑 개혁의 주체는 누구, 대상은 누구?
2009-04-15 오전 10:17:07 입력 / 2009-04-28 오후 4:39:08 수정

이광구 바둑기고가가 '개혁과 체육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하여'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최근 바둑계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기사는 1, 2, 3편으로 나뉘어 14일, 15일, 28일에 소개된다.
[1편 바로가기]

또 하나. 바둑은 산업이 없다. 최근 기전 운영방식을 놓고 바둑과 골프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다. 골프는 산업이 있고, 바둑은 없다는 것. 골프를 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나. 클럽만 해도 수십, 수백만 원이고, 게다가 종종 바꾸어야 한다. 골프 복장은? 골프장에 나가려면?

바둑은 10만 원 들여 바둑판 한 조를 사놓으면 거의 평생을 간다. 기원은 하루 5천 원에서 만 원이면 하루 종일이다. 인터넷? 한 달에 만 원이다. 그것도 무료회원이 유료회원보다 훨씬 많다. 산업이 없으니 기업이 없고, 기업이 없으니 스폰서가 없다. 바둑에 소비재가 있어야 말이지.

바둑으로 돈을 만들고 싶다면, 중요한 건 바둑에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그건 것들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건 바둑에 체육이라는 옷을 입히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체육의 옷을 입고 대한체육회 산하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대한체육회는 아마추어 정신을 살리는 단체이고, 아마추어 정신은 돈이 아니니까. 바둑으로 돈을 버는 길이 없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얘기는 뒤로 미룬다.

바둑의 체육화와 맞물린 바둑계 개혁 과제의 다른 하나는 프로제도에 관한 사안이다. 입단, 연구생, 기전개방, 상금제 같은 것들이다. 나이 든 프로기사들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 그들이 무사안일하게 기득권만을 주장하고 있어 발전이 안 된다고 한다. 나이 든 프로기사들로선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프로기사로 살아왔는데, 나이 먹었으니 물러나 달라는 것 아닌가. 그걸 순순히 수락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자존심과 생활이 걸린 문제,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사안을 기득권 주장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둑계를 지켜온 것도 공로 아닌가.

떠나라는 건 아니고, 입단자 수를 늘이고, 대국료를 없애는 대신 상금제로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이 든 프로기사들이 받아가는 대국료가 얼마나 될까. 예선 대국료는 10만 ~ 20만 원 수준이다. 나이든 프로기사들은 대개는 1차 예선에서 떨어진다. 기전이 10개면 1년에 10판은 둘 수 있다. 그러면 연수 200만 원이다.

현재 프로기사 230여 명 가운데 쉰 살 이상의 프로기사는 60명쯤 된다. 그 중에는 아예 기전에 출전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조훈현 9단처럼 성적을 유지하는 기사도 있다. 그들을 빼면 50명쯤 된다. 1차 예선에서 떨어지는, 나이든 기사들이 가져가는 돈은 일 년에 몇 천만 원, 많아도 1억은 안 된다. 1년에 1억이 절감되면 프로기전이 활성화하는 것인지.

나이 든 프로기사들은 힘이 없다. 아니,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몇몇일 뿐이다. 나이 든 프로기사 숫자가 지금은 전체 기사 수에 비하면 5분의1 정도나 될까. 한국기원 행정에 관한 사안을 놓고 표결을 한다면 나이 든 쪽이 결코 이길 수 없다. 한국기원 이사 중에는 프로기사도 있다. 그들은 몇몇 영향력 있는 나이 든 기사와 젊은 기사들이다. 영향력 있는 몇몇 나이 든 기사들은 한국기원 혹은 바둑계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 가운데, 영향력 없고 나이 든 기사들은 차라리 소외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 제102회 연구생 입단대회.

입단자 수를 늘이는 것, 좋은데, 그들은 입단하면 뭘로 생활을 하나? 프로니까 알아서 하는 것? 그렇다면 나이든 기사들도 알아서 할 것이니 굳이 면박을 줄 건 없지 않은가. 50명을 빼려는 것보다는 돌아가는 돈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우선 아닌가. 바둑과 골프는 기본 파이가 다르다. 돌아가는 돈의 규모가 다르다.

상금제로 한다고 치자. 발전을 위한 발상의 열정과 동기의 순수함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런데 32강이든, 64강이든 거기까지만 상금을 준다고 하자. 어차피 받아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지금도 벌써 나이 서른이 넘으면 승부는 포기하는 경향이다. 서른이 아니라 스물다섯만 넘어도 만만치 않아진다.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안 되니까.

어린 연구생들이 대거 입단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 스물다섯이 한계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우려되는 것, 프로기사의 조로화다. 나이 겨우 스물다섯이 넘으면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직업, 그런 직업을 누가 지망할 것인지. 장래성 있는 어린 청소년들이 그런 직업을 동경할 것인가.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라면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보통인데 말이다.

상금제의 발상과 취지에도 일리는 있다고 보이나, 다만 그게 혹시 바둑계 황폐화하는 일이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경쟁 제일주의, 승리 지상주의, 그게 오늘 우리를 좌절시키고 우리의 심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 아닌가.

또 현재 한국기원 연구생은 만 18세까지 입단을 못하면 연구생에서 나가야 한다. 그것도 문제다. 나오는 순간 막막해지는 것. 할 일이 없는 거다. 대개 중고등학교는 다니나마나하면서 바둑에만 전념했던 청소년들이니 바둑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군 입대가 기다리고 있다. 제대하면 무얼 할 것인가.

한국기원 연구생 청소년들을 보면 하나같이 수재들이다. 그 아까운 청년들, 바둑 아닌 다른 무엇을 해도 뛰어난 성취를 보일 그 인제들이 문득 갈 길 몰라 방황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깝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바둑계는 이걸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입단을 많이 시키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스물다섯이 넘으면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그러다가 오늘날 곱지 시선을 받는 나이 든 기사처럼, 그렇데 되는 것을 그냥 방치할 것인지.

급한 마음에 떠오르는 것. 차라리 입단 제한 연령을 더 낮출 것을 생각해 봄 직하다. 15세 정도로 낮추는 것이다. 그때는 바둑의 길에서 나와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까.

앞서 말했듯 나는 바둑의 체육화라는 것에는 동감하지 않는다. ‘개혁’이라는 것은 ‘지금보다 좀 나아지자’는 뜻에서 찬성이지만 개혁의 방법으로 체육화하자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차피 기차는 떠나 버렸으니, 바둑이 체육화에 성공해 결실을 거두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이제라도 바둑의 체육화를 이끌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정책을 연구-심의-결정하는 관계자들이 바둑의 체육화에 공감하지 않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준가맹 단체에 승인되도록 애쓴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 임직원들.

결국은 바둑의 정체성으로 돌아간다. 바둑은 무엇인가? 바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바둑의 체육화에 앞서 바둑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는 시간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천 년 내려온 것을, 그것에 다른 옷을 입히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고민해야 되는 것 아닌가.

바둑을 배울 때, 바둑은 도(道)나 예술이나 철학, 그런 것들과 공유하는 속성이 있다고 배웠고, 바둑 글을 쓰면서부터는 그렇게 써왔다. 바둑을 배울 때 일본 바둑, 일본 바둑책을 볼 수밖에 없었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둑은 도다, 바둑은 예술이다, 그렇게만 딱 부러지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그건 어려운 문제니까. 예전에는 바둑은 그저 잡기의 하나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바둑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바둑을 잡기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예전에 오히려 잡기로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바둑을 잡기라고 하는 것에는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잡기가 뭐 꼭 나쁜 건가? 옛날엔 그림도 음악도 춤도 다 잡기였는데. 사람이 일만 하고 공부만 하고 살 수 있나. 잡기도 즐기며 사는 것 아닌가.

나는 다만 바둑엔, 바둑을 도나 예술이나 철학이나 그런 걸로 부를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바둑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런 방향의 글을 써왔을 뿐이다. 생각이 바뀌면 전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지를 않는다.

바둑의 체육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바둑이 잡기라는 것에는 반발하지 않으면서 바둑이 체육이라고 하는 것에는 왜 그렇게 민감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누군가 ‘나는 바둑이 체육도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한다면 반발하고 말고 할 게 없다.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니까. 내가 반대하는 것은 공적 논의의 마당에서 바둑을 체육의 하나로 규정하고 그걸 여론화해 그쪽으로 몰고 가는 일이다."

지금도 바둑을 가르치는 분들은 바둑은 도, 예술과 통한다, 바둑에는 철학이 있다, 바둑은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바둑을 체육의 하나라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둑이 체육보다 잘났다는 게 아니다. 규모에서, 또 사회 기여도에서는 바둑보다는 체육이 월등한 것 아닌가. 그리고 체육에는 도가 없나? 김연아는 예술인이 아닌가? 체육도 도고 예술이다. 그러나 체육을 바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체육은 체육이고 바둑은 바둑이다.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는 한 나라의 한 분야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대한체육회와 호선이었는데, 이제 대한바둑협회가 산하단체가 되었으니 호선이 아니다. 속 좁은 소리겠지만, 그것도 자존심이 좀 상하는 일이다. 정부 지원? 대한체육회를 통해서 받는 길밖에 없나? 바둑 독자적으로 받는 길은 없나?

작지만 내 집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세를 살망정 크고 좋은 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성향과 환경에 따른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문화의 꽃은 작은 내 집에 피어난다. 다른 것과 달라야 하므로.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하므로.

체육은 빠르고, 바둑은 느리다. 체육은 빠른 것을 지향하고 바둑은 느리게 흘러간다. 언제였던가. 바둑TV를 켜는 순간 반색을 한 적이 있었다. 화면 한 귀퉁이에 ‘생각의 힘’이란 글귀가 보였다. ‘생각의 힘’은 바둑TV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바둑은 ‘생각의 힘’이란 거다. 살아오면서 보아온 무수한 표어, 슬로건 중에 그것처럼 마음에 와 닿는 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생각은 시간이다. 시간을 들어가지 않은 생각은 없다. 시간은 인격이다. 시간에 의해 조련되지 않은 인격은 없다. 사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바둑은 느린 것이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바둑TV는 그런 표어 아래 속기를 좋아한다. 모순이다. 문제는 역시 정체성이다.

이제는 두 가지의 길로 동시에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둑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나아가 바둑의 덕목을 잘 드러내는 길과 시대의 변화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를 살펴 같이 조금씩 새로워지는 길.

전자가 본령이고 우선이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두 가지 길의 비중은 똑같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후자가 전자보다 크게 되지는 말아야 한다.

속기도 좋지만, 3시간짜리, 5시간짜리 바둑도 필요하고 이틀걸이 바둑도 있으면 좋다. 속기를 편애하지 말자. 속기가 많아진 데에는 방송 편의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을 텐데, 바둑이 생각의 힘이라면 바둑의 본 모습이 속기는 아닐 터인데, 그렇다면 바둑의 본질을 방송 편의에 맞출 수는 없는 일이다.
방송 편의를 위해 바둑의 본 모습을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바둑의 본 모습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송의 방법을 연구할 일이다.

젊은 강자들을 위한 상금제 기전이 많아지는 것은 좋지만, 중견-중년을 위한 기전도 있는 게 좋다. 중견 기사들과 여성기사들이 펼치는 지지옥션배, 재미도 있고 인기도 높다. 얼마 전에 시작된 SKY바둑배 시니어연승전, 조훈현 9단을 주장으로 하는 국수팀과 서봉수 9단을 주장으로 하는 명인팀이 벌이는 청백전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가. 가요베스트10도 있고, 7080도 있고, 가요무대도 있는 것 아닌가. 상금의 크기가 기전의 흥미 유발의 절대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재미는 상금 아닌 것에도 있다.

중년은 중년의 모습도 보고 싶어 한다. 저 프로기사 나하고 나이가 비슷하지. 우리 어릴 때 천재 소리를 듣던 사람인데, 나도 팬이었는데, 요즘은 성적이 좀 그러네. 그래도 오늘 보니 열심히 잘 두네.

추억도 재미다. 젊었을 때는 우리도 청운의 꿈을 키웠었는데, 이제 꿈은 시들어가고 평범히 늙어 가고 있네. 적막감이다. 적막감을 나누는 것도 재미다. 세상은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중년에겐 꿈은 없을지언정 구매력이 있다.

TYGEM / 이광구 바둑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