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지리산 이야기

입산자의 노래 - 빈집을 찾는 후배에게

나 그 네 2018. 6. 3. 14:52

입산자의 노래 - 빈집을 찾는 후배에게

 

함부로 도를 묻지 마라
온몸이 상처인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서
기에 빠지지도 말며
무릉도원 청학동을 찾아 헤매지도 마라
백태의 눈으로 천부경 삼일신고를 새기지 말고
명심하라 명산에 도인 없다 애시당초
진인은 사라지고 삼신산에는 사기꾼들만
살모사 살모사처럼 똬리를 트는 법
밤새 동의보감 본초강목 한글본을 읽으며
함부로 약초를 구하거나 처방을 내리지 마라
진정 네 업이 아니면 사기다
이제마의 사상의학 몇 줄에 기대어
툭하면 체질을 분별하거나 함부로
뜸과 부항을 뜨고 침을 놓지 마라
조금 아는 것이 사기다 정감록을
노래하지 말고 살아보지도 않고 풍수를 논하거나
도참비기를 꿈꾸지 마라 잘 모르면 사기다
기분에 따라 비운의 빨치산을 노래하고
머리로만 생태주의를 꿈꾸지 마라
살다보면 너무 많이 알아도 사기다
잘 못 고르면 지리산 녹차도 독이듯이
사기 천지 지리산에서 사기꾼을 면하려면
먼저 귀를 막아라 입을 꿰매어라
날마다 일찍 일어나 거울 속
자꾸 꺼칠해지는 너의 얼굴을 보아라
한동안 몸이 상하지 않으면 그것도 사기다
또 하루 살아남은 자신을 바라보며
마치 초상을 치르듯 천도재를 지내듯
날마다 거울 속으로 절을 하며 또 하루를 시작하라
최소한의 텃밭에 푸성귀나 가꾸며
내리 삼 년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절대로 굶어죽지 않으니
그저 산짐승처럼 지리산에 몸을 맞추어라
빈집을 구하는 아우야
전설 속의 청학동은 많이 상한 네 몸 속에 있다
<이원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