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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Emile zola)

나 그 네 2009. 1. 13. 18:15

 

에밀 졸라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이 가득한 밤 말이지요.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에밀 졸라가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여명)>지에 발표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의 일부다. 졸라는 이 격문을 통해 독일 간첩누명을 쓰고 투옥됐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격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졸라는 이틀 전인 1월 11일, 분노에 찬 심정으로 격문 ‘나는 고발한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드레퓌스 사건 에서 진짜 간첩임이 뒤늦게 드러난 에스테라지 소령이 무죄 석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레퓌스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며, 물증까지 내놓았던 피카르 중령까지 이날  투옥됐다. 프랑스 군부는 드레퓌스가 무죄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실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해, 이렇게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격분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순식간에 썼다.

 

처음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로로르>지의 편집장 클레망소가 ‘나는 고발한다!’로 바꿀 것을 권했다. 1면에 ‘나는 고발한다!’를 실은 <로로르>는 몇 시간 만에 30만부가 팔려나갔다. 이후 아나톨 프랑스, 에밀 뒤르켐, 마르셀 프루스트, 클로드 모네 등 예술가 과학자 교수들이 드레퓌스 사건 재심 청원서에 서명했다. 드레퓌스 재심 운동은 다시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란 격문을 발표하기 전에도, 후에도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 관련 글들을 처음에는 당대 최고 신문이었던 <르 피가로>를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신문의 보수적인 독자들은 구독 해지 운동을 펼치며 신문사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신문사 편집진은 에밀 졸라의 글을 실을 수 없다고 했다. 졸라는 더 이상 신문에 글을 싣지 않고 팸플릿으로 제작하여 판매를 시작했다.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 등이 그가 직접 제작해서 판매한 팸플릿용 글이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내 글을 싣겠노라고 용기 있게 나서는 신문 매체가 전무한데다가 나 역시 절대적 자유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일련의 팸플릿을 제작해서 캠페인을 어어 나갈 계획을 세웠다.”

 

졸라는 당대 최고 인기 작가이자 대문호로 칭송 받았지만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한 뒤 엄청난 고난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 글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퍼져있던 프랑스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대중들의 심리를 반영한 듯 프랑스 의회는 서둘러 졸라를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1898년 7월 베르사유 중죄재판소는 졸라에게 징역 1년에 벌금 3천 프랑을 선고했다. 그리고 선고 당일 졸라는 영국 런던으로 망명을 떠났다. 선고 며칠 후 프랑스 정부는 그의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 자격도 박탈했다. 이후 1899년 6월 졸라는 영국에서 돌아왔으나, 불과 3년 뒤인 1902년 9월 30일 가스 중독 사고로 사망했다. 드레퓌스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진실’을 쓰기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채였다. 드레퓌스는 졸라가 사망한지 4년이 더 지난 1906년 7월 13일 복권됐다.

 

 

 

졸라와 드레퓌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마치 한국의 8,90년대를 보는 듯하다. 비단 1991년에 있었던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뿐 아니라, 수많은 간첩조작사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의문사 사건들을 보면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곧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건너가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드레퓌스 사건이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2년에 걸쳐 진행된 것인 반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평가 받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에 일어나 2006년 ‘유서대필 아니다’라고 결정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프랑스 사회는 12년에 걸친 드레퓌스 사건을 겪으면서, 봉건 보수 세력과 공화 진보 세력의 쟁투를 지켜봤다. 유대인이란 ‘다른 존재’에 대한 인정,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한국 사회에 대입하면 한국사회도 8,90년대를 겪으면서 전근대사회에서 현대민주사회로의 이행과정을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좌우격돌을 겪으면서도 다른 생각, 다른 이데올로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왔다. 그런 점에서 드레퓌스 사건은 한 국가가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통과의례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졸라는 1840년 4월 2일 이탈리아인 아버지 프란체스코 졸라와 프랑스인 어머니 에밀리 오베르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졸라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포병대에서 근무했다가 프랑스로 옮겨와 살았다. 아버지는 유능한 토목기사였는데,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서 운하건설을 맡게 되자 졸라의 가족은 1842년 그곳으로 이사했다. 졸라는 그곳에서 18살까지 살다가 1858년 파리로 옮겨와 생루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라는 1859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실패했는데, 곧 시인이 되기 위해 습작을 시작했다. 졸라는 3년 후에 출판사 직원이 되는데, 이 해에 첫 단편집인 <나농에게 주는 이야기>도 펴내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더불어 같은 해에 졸라는 프랑스 시민으로 귀화한다. 다시 3년후 출판사를 그만 둔 졸라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의 길로 나선다.
졸라 문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루공마카르> 총서는 1871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했다. 모두 20권이 출간된 <루공마카르> 총서 중에서 <목로주점>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졸라는 유명 작가로 자리잡는다. 이어 출간된 <나나> <제르미날> 등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졸라는 당대 최고 인기 작가가 된다.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주자로 평가 받는다. 샤토브리앙, 위고,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등과 함께 19세기 프랑스 소설 시대를 연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이른바 ‘소설의 시대’라 불리는 19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우리가 ‘로망(roman)’ 이라고 부르는 장편소설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에 소개된 졸라의 장편소설은 연작으로 읽을 수 있다. 대표작 <목로주점>(살림)을 중심으로 <나나>(홍신문화사), <제르미날>(친구미디어)를 연결해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제르미날>은 절판상태. 헌책방이나 도서관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
세 작품의 정점에 있는 <목로주점>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술과 섹스에 찌든 파리 빈민가 하층민의 생활을 그리며 산업자본주의의 이면에서 고통 받는 루공 집안의 가계도를 펼쳐 보인다.

목로주점나나제르미날

 

<목로주점>은 제르베즈가 여주인공이다. 후속작 <나나>의 주인공 나나는 제르베즈의 딸이다. <제르미날>의 주인공 에티엔도 제르베즈의 자식. 제르베즈와 나나 에티엔은 세 소설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파리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인간군상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밖에 ‘루공마카르’ 총서 열 번째 소설인 <살림>(창작과비평), 총서의 열 여섯 번째 소설인 <꿈>(을유문화사)도 출간되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저작 중에서 한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은 1982년 한길사에서 펴낸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이다. 이 책은 1994년 같은 출판사에서 ‘역사적 전개과정과 집단발작’이란 부제가 붙어 재 출간된 바 있다. 지금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는 고발한다: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로 제목을 바꿔 1998년 재 출간된 것이다. 무엇보다 자료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은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쓴 글을 모은 <나는 고발한다>(책세상)다. 이 책은 졸라가 1901년 2월에 출간한 저작 <멈추지 않는 진실>을 번역한 것이다. 원작에서 두 편이 빠졌지만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서 졸라가 발표했던 글의 정수를 읽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 밖에 드레퓌스 사건의 이면과 다양한 사진, 여러 가지 뒷일까지 모아서 자료적 가치와 드라마적 재미를 함께 주는 책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자인)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도 현재 시중 서점에서는 절판 상태다. 1937년 미국 워너브라더스사에서 만든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도 관련자료로 참고할 만하다. 영화는 1938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각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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