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 따지기 좋아하는 영국인들에게 앵글로-아이리시 혈통은 매우 특별하다. 앵글로–아이리시 혈통에서 웰링턴, 알렉산더 같은 장군부터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예술가와 많은 탐험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섀클턴은 이 혈통을 타고난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아버지 헨리 섀클턴은 2남 8녀를 두었는데, 새클턴은 위로 누나가 하나 있는 장남이었다. 섀클턴의 아버지는 19세기 교회 장로의 모습을 한 매우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고, 어머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전형적인 아일랜드 개구쟁이로 성장한다. 섀클턴이 태어나던 해 아일랜드는 극심한 흉년에 시달렸는데, 이를 계기로 농사를 짓던 섀클턴의 아버지는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해 33세의 늦은 나이에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가족을 이끌고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간다.
섀클턴은 런던 교외에 있는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탐험가다. 그의 기록을 보면 책 읽는 장면을 묘사한 구절이 많은데, 이처럼 독서하는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섀클턴은 자라면서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지 않고 바다로 나가려 했다. 이유는 당시 학생들이 즐겨 보던 신문 <보이스 오운 페이퍼>에서 모험과 관련 있는 기사와 쥘 베른의 연재소설 ‘해저 2만 리’를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신문 활자 속에 펼쳐지는 모험과 신비한 세상, 미지의 대지는 마치 섀클턴을 위해 준비된 인생 같았다. 가정 형편상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섀클턴은 열여섯 살에 ‘휴튼타워호’를 타면서 선원이 되었다. 이 시절에 섀클턴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섀클턴은 선원으로서 거쳐야 하는 항해사 과정을 마치고 24세가 되던 1898년 4월 세상 어느 바다로든 나갈 수 있는 선장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으나, 선장이 되었다는 건 섀클턴에게 탐험 인생의 시발점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그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었다. 섀클턴은 항상 책을 가까이하면서 다른 선원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했다. 도덕성도 매우 강건했다. 그는 배를 타는 선원들이 항구에 내릴 때마다 술과 여자로 탕진하는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누나 친구인 에밀리가 나타났고, 둘은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