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편집 단계에 들어설 무렵 퍼스트내셔널 영화사와 다툼이 있었다. 당시 채플린은 배우 밀드레드 해리스와 이혼절차를 밟고 있었다. 영화사는 밀드레드를 이용해 <키드>를 이혼 위자료조로 압류할 생각이었다. 채플린은 영화사의 눈을 피해 솔트레이크시티로 가서 편집 작업을 했다. 40만 피트(120킬로미터)가 넘는 필름은 자그마치 500롤이나 되었다. 채플린 일행은 솔트레이크 호텔에 방을 잡고 침실 하나에 필름을 늘어놓았다. 선반, 찬장, 서랍 속까지 호텔방 전체가 필름으로 뒤덮였다. 편집시설 하나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편집작업을 마치고, 수건에 투사해서 영화를 보았다. 채플린의 눈에서는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장장 15개월 간의 기나긴 작업이었다.
“자, 이런 건 어때요? 뜨내기는 유리창 수리공이고, 어린아이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유리창을 깨는 거예요. 그러면 뜨내기는 얼른 달려와서 유리창을 수리해주고는 하죠. 아이와 부랑자가 같이 살면서 겪는 온갖 모험!” 배우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채플린은 아역 스타 재키 쿠건을 발굴한다. 슬픈 듯하면서도 맹랑한 눈빛의 소년은 어눌한 듯하면서도 영리한 부랑자와 어울려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는 마술사가 된다. 어머니를 잃은 고아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부랑자의 눈물겨운 사랑과 낙천적인 삶, 그것은 찰리 채플린의 신산했던 어린 시절과 성공을 향한 집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1921년 1월 21일 드디어 찰리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 <키드>가 뉴욕에서 개봉되었다. 채플린은 뉴욕에 가지 않았다. 자신이 감독한 첫 영화가 개봉될 때 그 감독의 심정은 어떨까?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되어 부풀어오른 그의 마음은 아예 무게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난산한 영화 <키드>의 개봉을 채플린은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영화는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비평가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미 채플린은 영화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키드>로 그는 본격적인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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