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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라 간디- 인도최초의 여성총리

나 그 네 2009. 1. 19. 13:00

인디라 간디


인도의 첫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딸로 아버지에 이어 총리의 자리에 오른 인디라 간디. 1966년부터 77년까지, 1980년부터 84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깊이 있는 안목을 갖게 된 것은 1930년부터 3년간 옥중에 있는 아버지가 혼자 있는 딸을 위해 써 보낸 196통의 역사 편지로부터 말미암는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의 가난과 뒷골목의 혼란, 아시안 게임 개최, 초호화 호텔 건설, 방글라데시 독립 지지, 시크교도 탄압 등으로 누군가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로 누군가에는 파괴자 칼리 여신으로 인도를 통치했다. 인디라 간디 시절을 다룬 <동양 기행>이라는 책을 보면 인도는 녹슨 쇠의 냄새, 코를 찌르는 향신료, 잘 익은 파파야의 감미로운 냄새, 제단의 향연, 남자들의 머리에서 풍기는 겨자기름, 썩은 강, 대마초 연기, 대낮의 태양이 담긴 냄새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도 그 거리가 조금은 견디기 쉬운 것은 바로 비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일찍이 인도 건국의 아버지,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도 저서인 <세계사 편력>을 통해 인도의 사계절은 겨울, 봄, 여름, 우기(rainy season)라고 인디라 간디에게 알려주었다. 인디라 간디를 떠올릴 때 옥중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옥중의 할아버지, 외롭고 쓸쓸한 어린 시절, 옥중 아버지의 교육과 함께 무엇보다 비 내리는 인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 최초의 여성총리로 뽑히기 훨씬 전부터 인도와 운명과 삶을 같이 했다. 그녀의 아버지 네루는 북인도 카슈미르 지역에 뿌리를 둔 부유한 브라만 계급의 자손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뒀던 영국에 기울어져 있던 전형적인 식민지 엘리트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루는 ‘잘리안왈라 사건’을 보면서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하는 독립 운동에 참여했다. ‘잘리안왈라 사건’이란 1919년 봄, 인도의 잘리안왈라 공원에서 비폭력 시위대를 향해 영국군이 무차별 학살을 한 사건이다. 영국군의 갑작스러운 총격에 산책 나온 주민들은 우물로 뛰어들었고 인파에 휩쓸려 압사한 사람까지 4천여 명이나 희생됐다. 이 비극에 조금이라도 좋았던 점이 있다면 향후 인도를 이끌어 나갈 네루를 민족주의적으로 각성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간디를 ‘억압받는 계층과 자신을 동일시한 위인’이라며 존경하고 따랐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 노선은 달랐다. 간디는 점진적이고 평화적 투쟁을 추구했고, 네루는 혁명적 사회 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인도 독립을 함께 이끌었다.

 

 

네루는 1916년에는 마음이 어미 사자처럼 강한 카밀라와 결혼해 1917년 무남독녀 외동딸 인디라를 낳는다. 어린 시절 인디라의 별명은 작은 인도. 열두 살 때부터 이미 몽키 브리게이드라는 청소년 조직을 만들어 독립 운동에 참여한 정치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낸 당차고 야무진 여자애였다.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의 첫 장은 ‘열 세 번째 생일을 맞은 인디라에게’ 라고 되어 있다. 네루는 내가 ‘나이니 형무소’에 갇혀 있으니 너에게 무슨 선물을 해 줄 수 있겠느냐? 고 묻고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네가 처음 잔 다르크를 읽고 얼마나 매혹되었니? 그녀처럼 활약하고자 하는 너의 간절한 소망을 채 억누르지 못한 것을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 그들은 날마다 빵과 버터, 자식들 뒷바라지, 먹고 살 걱정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큰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확신을 갖기 시작하면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며 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 큰 전환기가 찾아온다. 우리가 인도의 투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도의 명예를 깊이 간직해야 한다.”

 

참으로 대단한 생일 카드이다. 이 다음에도 우리가 인디라의 어린 시절을 짐작할 수 있는 네루의 편지가 있다. “오늘은 설날 아침, 아침이 되고서야 네 어머니가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즐거운 새해 선물이었다. 물론 이런 사태는 벌써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네 어머니가 진실로 행복해하며 만족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너가 혼자 남았으니 오죽 쓸쓸하겠느냐? 2주에 한번 어머니를 만날 수 있고 2주에 한번 나를 만날 수 있으니 너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전령이 되어주겠지. 너는 아난드바완에, 네 어머니는 말라카 형무소에, 그리고 나는 여기 나이니 형무소에 있다. 우리들은 가끔 견딜 수 없이 서로를 그리워한다. 우리 세 사람이 다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될 날을 생각하자!” 이 또한 참으로 대단한 연하장이다.

 

 

 


그녀는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공부했지만 스물한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대항한 인도 독립 운동에 나선다. 1947년 인도가 마침내 독립하고 네루가 첫 총리가 되었을 때 그가 한 연설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이제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세계는 잠이 들지만 인도는 자유와 함께 깨어납니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빈곤과 무지, 불평등을 종식시켜 모든 이의 눈에서 눈물을 지우는 것입니다.” 독립을 하루 앞둔 1947년 8월 14일 밤의 일이다.

 

인디라 간디는 당시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먼 훗날 자신의 두 아들의 운명도 어미의 운명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결코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정치적 후계자였던 아들 산자이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총리가 된 또 다른 아들 라지브 간디는 타밀 지역 유세 도중 타밀 타이거란 단체 조직원이 꽃다발 속에 넣어둔 폭탄이 터져 폭사한다. 모든 이의 눈에서 눈물을 지우는 것은 네루 가문의 피도 함께 요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네루는 17년간 재임하며 보통 선거제를 도입하는 등 민주주의 정착에 기여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인도식 ‘혼합경제’는 국민을 빈곤과 무지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의 노력이 ‘배고픈 민주주의’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네루를 향한 인도인들의 지지는 1964년 그가 사망한 뒤에도 계속됐다. 딸 인디라 간디가 제 3대 총리에 오르는 발판이 됐다. 재임 중의 인디라 간디는 어땠을까? 그녀는 준사회주의 정책를 썼고 방글라데시 독립을 지지하면서 파키스탄과 갈등을 빚었다. 아시안 게임을 열었고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으면서 아그니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실험을 했다. 그 당시 인도 서민들의 삶은 <동양 기행>에 묘사된 바로 그 모습이었다. 오베로이 그랜드 호텔과 극장, 고급품을 취급하는 상점과 식당이 줄 지은 화려한 네루 스트리트에 거지들이 기어 다니고 악취가 들끓는.

 

 

 

1984년 10월 31일 아침 9시경 인디라 간디는 총리 관저에서 나오다가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 3명에게 집중 사격을 받게 된다. 시크교도들의 독립 운동을 누르기 위해 그들의 성전인 황금 사원에 무장 난입해 4백 명의 목숨을 뺏은 푸른별 작전의 결과로 그녀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녀는 며느리 소냐의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몇 시간 후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이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시민 폭동을 부른다. 인도 시민들은 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긴 칼을 갖고 있는 시크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기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그 황금 사원 옆엔 65년 전 네루를 독립투사의 길로 이끈 잘리안왈라 공원이 있다.

 

아버지 네루가 <세계사 편력>에서 가장 찬양한 인도의 위대한 정치인은 아소카 대왕이었다. “아소카 대왕은 칼링가 정복에 대해 회한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나라의 정복이 학살과 죽음, 포로와 납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네루가 아소카를 언급한 날의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모든 종파는 어떤 이유로든 존중 받을 만하다. 인간은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자기가 속한 종파의 영예까지 높이고 다른 종파에도 공헌한다.” 살생을 두려워하고 종파 간에 서로 사랑하기를 권한 아소카의 정신은 네루 가문의 선홍빛 피를 보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인디라 간디의 며느리 소냐는 2004년 자신이 당수로 있던 국민회의당이 제1당이 되자 시어머니를 살해한 시크교도 출신의 싱 총리를 임명해 종교 간의 오랜 원한을 해소하려는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BBC방송이 설문 조사한 '위대한 여성 10인' 중에서 지난 쳔 년간 가장 위대한 여성 1위로 뽑힌 인디라 간디. 그럼에도 그녀는 무덤 속에서 아직도 가슴을 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 나온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를 떠올리며. 신께 바치는 노래라는 뜻의 ‘기탄잘리’는 인도의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인도 국민에게 외치는 내용으로 이 것만이 여전히 갈갈이 찢겨져 있는 인도를 봉합해주고 가문의 피를 멈추게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진리의 맑은 물결이 썩은 관습의 거친 사막으로 사라지지 않고
거기서는 정신이 그대의 인도를 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큰 사랑과 행동으로 열매를 맺고
원컨대 그런 자유 천국의 아버지시여, 내 나라가 깨어나게 하소서. 내 나라가 깨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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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일빛)
감옥에 갇힌 아버지 네루가 불안정한 교육 환경에 놓인 딸을 위해 다정하게 쓴 역사편지. 정보나 단순교양, 학업 성적을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올바르게 세상을 보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 감옥에 있을 때(어딘가 갇혀있을 때) 오히려 하늘의 별빛을 더 잘 볼 수 있고 바다와 수평선과 지평선을 더 잘 상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현명하고 눈이 깊은 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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