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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망주 사냥에 나선 일본
한편에선 한국야구가 조만간 고사할 것이라며 걱정한다. 다른 한편에서 꿈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오늘도 야구소년들은 꿈을 줍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프로야구가 93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넘었다. 1996년 이후 최단기간 돌파다. 사상 첫 650만 관중 돌파를 목표로 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원대한 계획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야구는 반대다. 고교야구팀은 갈수록 줄고, 유망주들의 국외유출은 증가하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계는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한국 고교야구는 조만간 국외야구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국외유출이 반드시 우려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되레 유망주의 국외진출을 감정적 편견이 아닌 객관적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스포츠춘추>가 국내 아마추어 야구 유망주들의 국외진출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3편의 시리즈를 준비했다.
시리즈는 유망주의 국외진출 현황 및 미국에 이어 한국 유망주 스카우트전(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는 일본야구를 집중 조명한 1편 <한국 유망주 사냥에 나선 일본>과 중학교 때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떠난 뒤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한 투수 김무영의 이야기를 다룬 2편 <후쿠오카의 매, 김무영> 그리고 ‘유망주 유출 주범’과 ‘특급 에이전트’ 사이에서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한국인 유일의 미 메이저리그 공식 에이전트 이치훈의 인터뷰인 3편 <한국의 스캇 보라스? 그저 에이전트일뿐>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다시 부는 국외진출 바람
“요즘엔 흥이 나질 않아요. 예년만 해도 유망주 고르는 맛에 힘들 줄도 모르고 일했는데….”
4월29일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목동구장을 찾았을 때 모 구단 스카우트가 본부석 중앙을 바라보며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엔 미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이 자릴 잡고 있었다. 한 손엔 스피드건, 다른 한 손엔 볼펜을 쥔 그들은 흡사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측정하는 교통경찰처럼 보였다.
“고속도로에서 150km를 밟았더니 당장 벌금 딱지를 뗍디다. 여긴 시속 150km를 던지면 그 순간 미국행 항공권이 쥐어져요. 애들이 팔이 빠지라 150을 던지려는 이유가 다 거기에 있어요. 그러다 정말 팔이 빠질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걸 막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아마추어 야구 현실이 그렇습니다.”
목동구장을 찾는 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1994년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LA 다저스와 계약한 박찬호(뉴욕 양키스) 이후 지난해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한 문찬종까지 국외진출에 성공한 유망주는 총 47명이다. 그 가운데 박찬호는 오랫동안 신화에 도취됐던 한국야구를 흔들어 깨운 이였다.
그의 미국 진출 이전까지 국내 야구인들에게 메이저리그는 ‘올림푸스 신전(神殿)’과 같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리그였던 것이다. 메이저리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올림푸스 신전에 사는 ‘야구의 신(神)’들이었다. 그러나 박찬호의 진출로 신화는 깨졌다.
1999년은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국외진출이 붐을 이룬 해였다. 김병현, 송승준(롯데), 최희섭(KIA), 오철희, 권윤민(KIA 스카우트), 서정민 등 6명이 한꺼번에 MLB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한 동의대 정성기를 끝으로 유망주의 미국행은 ‘뚝’ 끊겼다. 박찬호, 김병현을 제외하고 빅리그에서 출세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눈에 띄지 않은 까닭이었다. 게다가 국내 구단의 계약금 배팅이 높아진 것도 국외 진출 자제의 한 이유였다.
2006년 신일고 남윤희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하며 4년간 숨죽어 있던 MLB 진출 불씨를 살려 놓긴 했지만, 계약금 6만 5천 달러의 마이너 계약이라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전면드래프트가 최초로 시행된 2009년, ‘제2의 국외진출 붐’이 일었다. 무려 13명의 고교생 유망주가 MLB에 진출한 것이다. 아마추어 야구계는 올 시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1994~2009년 국내 유망주의 국외 진출 현황> |
MLB 스카우트와 에이전트의 공세 속에 갈수록 유망주 스카우트가 어려워지는 현실이 모 스카우트의 목을 쥐여오는 것일까. 대화 도중 그는 와이셔츠의 윗단추를 푸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국내구단 스카우트들의 공적으로 꼽히는 모 에이전트가 그의 앞을 지나쳤는데. 그때였다.
모 스카우트가 격정적인 목소리로 울분을 터트렸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씨도 안 먹힐 소리에요.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는 또 무슨…저 사람들 다 고엽제에요. 프로야구의 텃밭인 아마야구를 고사시키는 고엽제란 말입니다!”
일본 스카우트가 몰려오고 있다.
베테랑 스카우트인 그가 발끈한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MLB 스카우트들이 본부석 중앙을 차지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에이전트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는 그래도 보이지 않는 신사협정이란 게 있었어요. 하지만, 2009년부터 한 구단에서 유망주들을 싹쓸이하길 시작하면서 (신사협정이) 깨졌습니다. 에이전트들 역시 학부모들한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며 아이들을 빼가려고 혈안이 돼 있어요.”
실제로 지난해 컵스는 5명의 유망주를 싹쓸이했다. 올해도 덕수고 에이스 김진영과 계약하며 8개 구단 스카우트의 원성을 샀다. 야구계 일부에서 “한국 고교야구가 컵스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됐다”며 자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컵스의 성공에 자극받아선지 목동구장을 찾는 MLB 스카우트도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대통령배 대회에는 10명 이상의 MLB 스카우트가 본부석에서 진을 쳤다. 놀라운 건 고교 유망주를 노리는 이가 미국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4월 2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군산상고-광주일고 전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일본프로야구(NPB) 모 팀의 스카우트였다. 그는 “볼일 있는 김에 (목동구장까지) 들렀다”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우연히 들른 사람치곤 손에 든 스피드건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까지 일본 프로구단은 한국 아마추어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었다.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조성민이 거의 유일한 일본 진출 유망주였다. 한국 유망주의 일본 진출이 적었던 건 한·일 선수협정 탓이 컸다.
KBO와 NPB 사이에 맺은 한·일 선수협정 7조엔 ‘프로구단의 아마추어 선수 계약에 관하여 한국과 일본구단은 양국의 규약과 규정을 존중한다’고 명시돼 있다. 간명하게 말해 KBO가 허락하지 않는 한 일본은 한국 아마추어 유망주를 데려갈 수 없다는 뜻이다. 역으로 일본 고교유망주도 NPB가 허락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뛰지 못한다.
사실상 양국 아마추어 선수의 이동을 막은 것이다. 조성민 이후 유망주들이 일본 대신 미국을 선택한 것도 한·일과는 달리 한·미 선수협정에는 아마추어 선수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2000년 초반부터 중남미 야구 유망주를 데려와 육성하기 시작했다. 한국야구가 발전하며 이제는 한국 유망주에게 시선을 집중하려 준비 중이다. 일본야구계에선 "고교야구 수준은 일본보다 되레 한국이 낫다"는 평이 우세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그렇다면 일본 모 구단의 스카우트는 어째서 목동구장을 들른 것일까. 야구계에선 “편법 스카우트를 하고자”란 말이 돌고 있다. 여기서 편법 스카우트는 일본 야구 유학을 말한다. 그러니까 고교 저학년 가운데 괜찮은 선수를 중퇴시킨 뒤 일본 고교에 전학시키고 졸업 후 사회인야구나 독립리그에서 뛰게 하거나 바로 일본 프로팀과 계약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중·고교생 가운데 국내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야구 유학을 떠난 선수에 한해서는 한·일 선수협정이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일종의 편법인 셈. 그러나 모 구단 스카우트는 "야구유학생도 한·일 선수협정 대상자이므로 '편법 스카우트'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일본 야구유학의 그림자
먼저 아마추어 유망주 가운데 국내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않았더라도, 일본 야구 유학을 떠나고서 졸업 후 일본구단과 계약할 시에는 반드시 KBO의 신분조회를 거쳐야 한다. 왜냐? NPB 입장에서 한국 아마추어 유망주도 외국인인데다 어떤 선수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분조회 시 KBO가 문제 삼으면 스카우트 자체가 불가능함을 뜻한다.
그러나 협정에는 많은 허점이 있다. 대표적인 게 NPB의 외국인 선수 규정이다. KBO가 철저히 국적에 따라 내·외국인 선수를 나누는 데 반해 NPB는 국적이 외국이라 할지라도, 일정기간 일본 아마추어 야구에서 뛰면 내국인 선수로 인정한다. 실제로 NPB 규약에는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맹된 고교에서 3년간 수학한 경우나 일본대학야구연맹에 가입한 대학에서 4년 이상 재학한 외국인에 한해선 국적에 상관없이 내국인 선수와 똑같이 대우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들은 일본 내국인 선수와 똑같은 대우를 인정받는 만큼 KBO의 신분조회를 생략하고 바로 일본 프로구단으로부터 지명받을 수 있다. 이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려는 일부 야구유학생들의 편법을 KBO가 제도적으로 막을 장치가 사라짐을 뜻한다.
국내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점점 고갈되는 아마추어 야구판에서도 '제2의 김광현' '제2의 안치홍'을 잡기위해 뛰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편법과는 거리가 멀지만, NPB의 외국인 선수 규정에 따라 KBO의 신분조회를 거치지 않고 일본 선수와 똑같은 신분으로 일본 프로구단에 입단한 선수가 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는 김무영(25)이다.
김무영은 부산 대신초등과 대신중을 거쳐 지난 2000년 야구 장학생으로 일본 시모노세키 하야토모고에 입학했다. 그 뒤 후쿠오카 경제대를 졸업하고 2008년부터 후쿠오카의 독립리그 레드와블러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1년도 채 안 돼 2008년 10월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드래프트 회의에서 별도의 신분조회 없이 소프트뱅크에 6순위로 지명됐다. 김무영이 일본에서 고교와 대학을 7년 동안 다녀 NPB의 내국인 선수 대우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BO는 4~5년 전부터 일본 편법 야구 유학을 감지했다. 그즈음 모 구단이 1차 지명 탈락 선수를 일본으로 야구 유학 보내려고 준비 중이란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 구단이 유학비 전액을 내면서까지 선수를 일본으로 보내려고 했던 이유는 간명하다. 다음 해 신인지명에서 이 선수를 1차 지명으로 뽑기 위해서였다.
당시 KBO는 이러한 편법을 막으려고 규약을 개정했다. 고교 중퇴 뒤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떠났다 다시 귀국한 선수는 연고지 구단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하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대신 2차 지명에서 전면드래프트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도록 했다.
일본 야구 유학을 '선수 빼돌리기'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던 모 구단은 KBO의 규약개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일본 야구 유학은 국내 구단의 1차 지명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지, 일본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 야구 유학이 다소 복잡하고 시간이 걸려도 한·일 선수협정을 거슬리지 않으면서 한국인 유망주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재나 제도 개혁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국외 진출을 막으려고 지난해 4월 말 한층 강화된 제재안을 발표했다.
한국 프로구단 선수로 등록한 적이 없이 외국 프로구단에서 뛰었던 선수는 외국 구단과 계약 종료 이후 국내 구단과 선수로 2년간 입단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기존 조항에 지도자로서도 7년간 입단 계약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사실상 국내 U턴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부 야구전문가는 “제재가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보단 전면드래프트제를 전처럼 1차 지명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모 구단 스카우트의 말을 들어보자.
“1차 지명 당시에는 지역 내 유망주에 글러브나 용돈을 쥐여주는 식으로 일찌감치 관리가 들어갔다. 덕분에 MLB 스카우트가 선수를 낚아채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전면드래프트제 시행 이후 사전 관리가 사라지며 MLB 스카우트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과거 1차 지명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유망주 국외유출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한편에선 강력한 제재나 제도 개혁에 앞서 8개 구단이 스카우트 부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해 200억 원이 넘는 구단 운영비 가운데 스카우트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사이다. 2010년 신인들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 7억 원을 스카우트비로 썼다. 지난해 대어급 신인이 없던 까닭도 있지만, 많은 야구인은 전면드래프트 시행 이후 선수들의 계약금이 대폭 낮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MLB와 NPB의 스카우트비가 전체 운영비에서 10%임을 고려할 때 낮은 수치다.
참고로 지난해 메이저리그 평균 운영비는 1억 달러(한화 약 1천127억 원)였으며 아마추어 드래프트와 스카우트 관련 운영비로 구단마다 2천만 달러(한화 약 225억 원)를 썼다. 물론 MLB와 KBO 리그는 시장 규모가 다르다. 그러나 많은 야구전문가는 “신인 계약금이 어느 정도는 돼야 MLB와 싸워도 싸울 것이 아니냐”며 “다른 데서 운영비를 줄이는 한이 있어도 스카우트비는 운영비 대비 7~10%는 올려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서일까. 취재 끝에 한 현직 스카우트는 이렇게 강조했다.
“배팅 없는 드래프트는 무의미해요.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하려면 그만큼 투자를 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프로야구도 한창 인기를 몰고 있잖아요. 하지만, 신인 계약금 규모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에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구단은 제품개발비 없이 신상품으로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건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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