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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위어 "내 라이벌은 '불의 여신' 김연아

나 그 네 2011. 1. 22. 17:28

 

조니 위어 "내 라이벌은 '불의 여신' 김연아

 

 

12살 늦깎이 나이로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조니 위어. 그러나 불과 4년 뒤인 2001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세계 피겨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조니는 미국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다. 조니는 그랑프리 파이널 3위를 차지한 실력자다. 조니는 세계적인 스포츠스타다. 조니는…아름답다. 2008 SBS·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조니 위어(24)를 본 순간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 단어는 ‘아름다움’이었다.

24살의 건장한 청년에겐 실례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은반 위에서 펼쳐지는 그의 연기를 보노라면 다른 단어는 소리와 의미를 잃어버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 피겨스케이터이자 현역 가운데 피겨의 예술성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선수로 꼽히는 조니 위어를 ‘스포츠춘추’에서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성공한 피겨스케이터로서의 조니 위어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가족에 헌신적인 장남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어서 와요. 조니. 인터뷰 장소로 이동할 때 많은 이들이 우리 뒤를 따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국팬들이 정말 많더군요. 혹시 알고 있었나요.

(환하게 웃으며)물론이에요. 저를 언제나 가족처럼 대하는 한국팬들이 무척 많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 가운데 일부는 미국, 러시아, 일본까지 찾아와 저를 응원해주기도 해요. 정말 굉장한 분들이에요.

당신을 볼 때마다 한국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단 느낌을 받아요. 한국말도 꽤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능숙한 한국말로)‘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정도 밖에는 모릅니다. 한국말을 더 많이 배우고 싶어요. 진심이에요.

당신이 말한 말들의 뜻은 알고 있나요.

그럼요. ‘안녕하세요’는 Hello, ‘감사합니다’는 Thank you, ‘사랑해요’는 I love you입니다(웃음).

4회전 점프와 예술적 표현력 사이

SBS·ISU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에서 당신의 경기를 봤을 때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이었던 ‘노트르담드 파리’가 당신과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트르담드 파리’를 고를 때 감정적이고 깊이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 전개도 탄탄한 작품이었고요. 무엇보다 뮤지컬로 접한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노트르담드 파리’는 사랑하지 말았어야 하는 상대에게 매혹된 주인공의 이야기에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극의 내용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올시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런 강하면서도 비련의 캐릭터를 창조하길 바랐어요. 잘 맞아떨어진 셈이지요(웃음).

남자 싱글에서 브라이언 쥬베르(프랑스)와 함께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어요. 하지만 정작 결과는 3위였어요.

개인적으로 3위에 그쳐 실망한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모든 대회에서 완벽할 수는 없어요. 늘 우승을 추구하고 특히나 한국 팬들 앞에서 정상에 서길 원하지만 현실은 항상 제가 꿈꾸는 데로 되는 건 아닙니다. 결과에 순응하고 이번 대회 성적에 자극받아 다음 대회 때 한층 향상된 조니를 보여드리겠습니다(웃음).

당신을 가리켜 한 스케이터는 “장·단점이 확실한 선수”라고 하더군요. GP 파이널은 당신의 빛과 그림자가 잘 나타난 대회였단 평이에요.

그래요? (기자를 보며) 당신은 어떤가요?

글쎄요. 당신의 장점에 보다 많이 집중하려 하지만 제 직업은 팬이 아니라 기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객관적일 수밖에 없단 뜻이군요. (어깨를 들썩이며)그래요. 제 고질적인 약점은 4회전 점프에요. 4회전 점프는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에요. 하지만 전 몸이 마르고 골격이 약하기 때문에 자칫 크게 부상을 당할 수 있어요. 지속적인 훈련을 하기 힘든 이유지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4회전 점프를 제 프로그램에 접목시키기 어려운 이유를 이제야 설명하게 됐군요. 자신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부족한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이에요.

하지만 피겨는 기술만큼이나 예술성도 중요한 스포츠에요. 그점에서 당신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스케이터입니다.

고마워요.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원하는 목표가 뚜렷하다는 게 제 장점이에요. 프로그램의 내용을 관중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예술적 능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전 자신할 수 있어요. ‘조니는 단순히 음악에 맞춰 스케이팅을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고.

당신의 경쟁자였던 스테판 랑비엘(스위스), 제프리 버틀(캐나다)이 올시즌 은퇴를 선언했어요. 그들이 사라진 가운데 특별히 라이벌로 지목하는 선수가 있다면 누굴까요.

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빙그레 웃으며)세계의 모든 남자 선수가 제 라이벌이 아닐까 싶어요. 어느 나라마다 강자가 있거든요. 만약 제 대답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보다 정직한 답변을 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한 대답처럼 들리겠지만 ‘조니에게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조니 자신’이라는 겁니다. 저를 컨트롤하고 단련할 수 있는 건 제 자신밖에 없으니까요.   



조니 위어는 피겨의 예술적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당신의 스타일 변화를 조심스럽게 점치는 이들이 있어요. 올시즌 들어 부쩍 남성미가 증가했다는 평도 있고.

아직 다음시즌과 관련돼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요. 올시즌은 지금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입니다. 내년부터는 아무래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할 생각이에요.

음악은 어떤가요.

몇몇 후보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어요. 여러 음악 감독들과 만나 저만을 위한 곡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을 듯해요.

물론이에요. 부드럽고 우아한 저만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시즌에도 발레에 가까운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을까 싶어요.

야성의 패션 디자이너

당신은 아름다운 남자입니다. 수많은 팬들이 당신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고 있어요. 실제로 인터넷포털사이트를 보면 당신의 동영상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의 외모를.

제 외모나 행동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저는 그저 제 자신을 표현할 뿐이에요. 아름다운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분들은 팬들이지요. 많은 분들이 저를 좋게 생각한다는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금의 다소 긴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나요. (주:대회가 끝난 뒤 머리를 잘랐다)

(뒷머리를 찰랑거리며)자, 어때요. 더 빨리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웃음). 개인적으로 좀 야성적인 스타일을 좋아해요. 갈리나 즈미에프스카야 코치님도 제가 스케이트를 탈 때 휘날리는 머리가 돋보인다고 하시고요.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 올시즌 머리를 길렀어요.

당신의 패션 감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피겨 의상을 스스로 제작한다는 말도 있고. 사실인가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직접 모든 의상을 디자인합니다. 의상의 형태나 색상은 물론 장신구 크기까지 제가 결정해요. 옷감도 마찬가지고요.

놀라운데요.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요즘 들어 다른 선수들이 제게 의상 디자인을 의뢰하기 시작했어요(웃음). 개인적으로 늘 하고 싶었던 일이라,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답니다.

다른 선수가 당신에게 의상 디자인을 의뢰했다고요?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하기 전 일본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 선수로부터 의상 디자인을 의뢰받고 팩시밀리로 보내줬어요.

(지나가는 말로)현역 은퇴 뒤 코치나 안무가가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를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럴 생각이에요.

….

패션 디자인에 정말 관심이 많아요. 전 무슨 일이건 제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걸 좋아해요.

의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묻고 싶어요.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당신 역시 음악에 따라 의상을 준비하나요. 당신이라면 의상에 맞춰 음악을 선곡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개 음악에 맞춰 음악을 선택합니다.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연기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의상이 달라지게 마련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업 패션 디자이너가 되면 어떤 걸 만들고 싶으세요. 역시 피겨 의상인가요.

운동선수다 보니 스포츠 웨어에 관심이 많아요. 집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한 노트가 꽤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투 디자인을 좋아해요. 나중에 꼭 겨울 코트를 만들고 싶어요. (기자를 바라보며)겨울 스포츠인 피겨 선수답지 않나요. (고개를 끄덕이자)겨울만을 위한 특별한 옷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본인이 디자인한 옷을 직접 만들기도 하나요.

아직 재봉은 하지 못해요. 현재까진 그저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옮기는 수준이에요. 왜냐? 지금은 피겨에 집중해야할 시기거든요. 현역에서 은퇴하면 그때 전문디자인 학교에 진학해 재봉이나 패션 산업에 종사하기 위한 모든 것들을 배울 계획이에요. 지금은 그저 미래의 꿈이지만…. 나중에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만약 패션업체에서 당신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생각 같아선 꽤 인기가 좋을 듯싶은데요.

응하겠어요. 만약 제의가 온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연습과 대회 출전을 하면서도 틈틈이 디자인할 거예요.

조니 위어의 연기는 다분히 몽환적이다. 그의 손짓 하나하나는 모스 부호처럼 무언가 끊임없이 의미를 전달한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24살의 베테랑 스케이터, "모든 음계와 악기와 하나가 될 때"

올시즌 음악과 안무에 대해 묻고 싶어요. 만족스러웠나요.

대부분 만족했고 지금도 같아요. 감정을 좀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금의 프로그램에 만족해요. 물론 개선의 여지는 있어요. 완벽한 걸작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리라 기대해요.

의상선택을 본인이 한다고 했어요. 음악은 어떤가요.

음악 역시 제가 직접 골라요. 2분이 넘는 시간동안 스스로 음악을 느낄 수 없다면 제대로 된 공연은 꿈도 꿀 수 없어요. ‘딱’ 한번 제가 선곡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어요. 지금으로부터 3년, 아니 2년 전이군요. 프리스케이팅에 사용된 ‘나사렛의 아이들’이었어요. 그 곡은 저를 위해 편곡된 게 아니었어요.

그렇담 당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손가락을 펴며)2개가 있습니다. 먼저 2005-06시즌에 사용했던 ‘백조’입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이 곡은 매우 대중적이면서 유명해요. 다음은 2007-08시즌에 썼던 ‘유노나 아보스’입니다. 러시아 뮤지컬로 널리 알려진 곡이지요. 지난시즌 쇼트프로그램에 사용하면서 무척 흡족했던 기억이 나요.

피겨스케이터에게 음악은 무엇인가요.

선수만을 위해 특별히 편곡되고, 선수에게 잘 맞는 곡이 나올 때 비로소 음악에 흐르는 혼이나 감정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선수의 내면에서 감동이 우러날 때 관중들에게 완벽한 스케이팅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대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동료선수들의 프로그램에 관심이 크단 걸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저도 예외가 아니에요. 올시즌 유나(주:위어는 김연아를 그렇게 불렀다)의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곡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곡의 특징을 잘 살려내는 유나의 스타일이 좋았습니다. (눈을 크게 뜨며)그는 항상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연기를 펼쳐요. 어쩌면 그가 제 라이벌일지 모르겠군요(웃음).

다른 선수의 프로그램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날 듯도 해요.

일단 저는 제 프로그램에 만족합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꼭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백조’에 맞춰 스케이팅 한다고 모두 같은 느낌을 낼 수는 없습니다. 탱고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도 있거든요. 그와 같은 의미로 어떤 선수의 프로그램을 따라한다고 제가 그가 될 순 없는 일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신의 예술적 표현력은 대단합니다. 피겨가 단순히 ‘점프’로만 이뤄진 빙판 위의 기계체조가 아니라 ‘기예(技藝)’로 대접받는 건 아무래도 예술성이 높은 스포츠이기 때문인데요. 당신처럼 음악에 맞춰 내면 연기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요.

음악은 몸으로 느끼는 거예요. 흔히들 그런 질문을 해요. “당신처럼 음악을 내면으로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느낌을 갖는 건 누구에게 설명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감성은 타고나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공연이 시작하면 모든 음계와 곡을 연주하고 있는 악기 모두를 제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때 내면으로부터 자신을 드러내게 되지요.

당신 역시 감성을 타고난 것인가요.

반반이에요. 사실 피겨를 시작하기 전에 코러스 음악을 작곡했어요. 8살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작곡 덕분에 내면으로부터 음악성이 자랐지요. 12살 때 스케이트를 처음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당신은 늘 자신의 스타일을 ‘발레’에 비유해요. 작곡만큼이나 발레도 당신의 피겨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발레 수업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제게는 발레가 너무 엄격한 느낌이에요. 발레 대신 1주일에 2번씩 필라테스와 스포츠 마사지를 받고 있어요. 특히나 나이가 들면서 경기 외적인 부분에 더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단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경기 외적인 부분이라.

15살 때처럼 매일 뛰어다닐 수는 없어요(웃음). 완벽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가끔은 충분한 휴식도 필요합니다.

피겨만큼 나이의 제약이 심한 스포츠도 없습니다. 당신도 이젠 어엿한 베테랑 선수가 됐습니다.

제 나이가 불과 24살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웃음). 하지만 벌써부터 노장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피겨의 속성이겠지요. 하지만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 강하다고 느껴요. 뭐랄까요. 이제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고나 할까요. 누구나 어렸을 때는 천방지축이겠지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달라집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게 제 유일한 바람입니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조니 위어. 그에게 빙판은 삶의 터전이자 존재의 거처이기도 하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크리스마스 한국행, 김연아와의 약속 때문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김연아 자선 아이스쇼에 참가했습니다.

한국 방문은 늘 즐거운 일이에요. 특히나 유나와 함께 빙판 위에 서게 돼 무척 기뻤습니다. 사실 싱글 종목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선수와 함께 공연하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에요.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마다하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가 크리스마스에 일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엔 꼼짝도 하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잖아요.

(밝게 웃으며)유나가 초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가 요청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응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제가 크리스마스 공연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어도 유나 역시 흔쾌히 응했을 거예요. 우린 좋은 친구거든요. 앞으로도 서로 도울 수 있는 사이였으면 해요.

GP파이널 갈라쇼 도중 김연아를 안는 조니 위어. 둘은 매우 절친한 사이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김연아와 당신은 친한 동료이자 서로의 팬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유나가 등장한 뒤 많은 피겨전문가들이 “진정으로 스케이팅을 즐길 줄 아는 선수가 등장했다”라고 극찬을 했어요.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어요. 유나는 후배 선수들에게 모델이 되고, 스케이팅을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는 능력 또한 무척 탁월한 선수입니다. 정말 환상적이에요.

그 정도인가요.

(두 손을 모으며)유나가 공연 중 열 번을 넘어져도 전 여전히 흥분한 채로 응원의 박수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아사다 마오(일본)와도 친한 사이에요. 당신이 보기에 두 선수는 어떤가요.

스타일이 전혀 다른 선수들이에요. 아사다가 부드러움을 강조한다면 유나는 열정적이고 강한 스케이팅을 구사합니다. 부드러움과 열정 가운데 어느 걸 더 선호하느냐에 따라 팬이 나눠지지 않을까 싶어요. 잘 보세요. 두 선수가 겨룰 때면 단순히 점프나 스핀 기술에선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을 거예요.

일전 미 스포츠케이블 ‘ESPN’ 중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김연아와 아사다의 활약으로 한동안 단절됐던 세계 여자 피겨의 인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이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두 선수 모두 대단한 능력을 갖췄고 성격도 좋은 소녀들입니다. 누가 제게 어느 선수를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도 묻는다면 역시 같은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2007년의 영광을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재현한다

스포츠 선수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가장 좋았을 때를 기억해야한다”는 게 있습니다. 슬럼프에 빠졌거나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해야 하는 선수들에겐 무척 중요한 문제 같더군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맞아 당신도 가장 좋았을 때를 기억하고 그때의 영광을 재현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시즌과 대회들이 있긴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라면 역시 2007년일 거예요. GP 시리즈에서 2번이나 우승했고, GP 파이널에도 당당히 진출했습니다. 미국선수권대회에서도 라이벌 선수(주:에반 라이사첵)에게 근소한 차로 1위 자리를 내줬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최선을 다했고 제가 바라던 스케이트를 탔기 때문입니다.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어요.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때 메달을 획득한 미국선수가 유일하게 저 혼자였거든요. 당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유일한 한국인 메달리스트가 김연아 혼자였던 것처럼 말이지요(웃음). 정말 모든 것이 잘 풀렸던 멋진 시즌이었어요.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러시아, 유럽, 한국, 일본을 방문해 멋진 쇼를 선보이기도 했고요. 일정이 빡빡하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워낙 행복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차가운 빙판보다 그의 손이 닿으면 잔디가 된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한국에선 김연아의 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자 경기가 가려진 느낌이에요. 남자 선수로서 남자 싱글 경기의 매력을 일깨워줬으면 해요.

남자 싱글의 재미는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한 파워 넘치는 동작들과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멋진 선수들이 아닐까 싶어요. 저나 스테판 랑비엘(스위스)은 발레를 하는 듯 우아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선수들이에요. 제프리 버틀(캐나다)이나 일리야 쿨릭(러시아)도 비슷한 스타일이지요. 반면 예브게니 플루센코(러시아)와 토마스 베르너(체코)는 파워풀한 스케이팅이 장점인 선수들입니다. 남자 선수들의 다양한 스타일에 집중하신다면 더 많은 피겨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갈리나 코치는 어때요. 듣기로는 무척 엄한 코치던데요. 반면 당신은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잖아요. 스프나라 공주와 포크나라 왕자가 만난 것처럼 어딘지 어긋난 듯 보이기도 해요.

갈리나 코치와 2년 남짓 함께 하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그래요. 처음에는 성격 차이 때문에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분은 러시아식 지도방식을 고수했고 저는 이전까지 미국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우린 서로 극복해야할 것들이 많았어요. 언어 장벽도 있었고요. 매일 러시아어로 대화하다 집에 가서야 비로소 영어를 쓸 수 있었습니다.

갈리나 코치는 당신에게 많은 걸 기대했어요.

맞아요. 갈리나 코치는 제게 원하는 게 분명했어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제가 해내길 원했어요. 하지만 저 역시 성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충돌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갈리나 코치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의 선택이 제겐 최선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제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이겨내는 것이 제게는 소중한 경험이 됐습니다. (양손을 펼치며)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가족은 녹지 않은 가장 소중한 빙판

조니, 당신은 가족에게 무척 헌신적인 이로 잘 알려져 있어요.

현재 미국 내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 제가 가족을 도와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요. 모두들 어려운 시기거든요. 이따금 여윳돈이 생기면 동생이나 부모님을 돕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성인이에요.

그렇지요. (잠시 생각하다가)전 성인이고 직업은 피겨선수에요. 결코 평범하지 않지요. 하지만 제가 피겨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는 지금껏 많은 걸 포기해야 했어요. 이젠 제 차례에요. 그리고 그것이 제 삶의 임무입니다.

지금도 동생의 학비를 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동생을 돕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가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왜냐고요? (다부진 어조로)제가 어떤 성적을 내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결국 끝까지 남아 저를 사랑해줄 사람은 가족뿐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샤샤 코헨과는 가족 같은 사이라고 들었어요.

샤샤와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훈련도 같이 했어요. 대회마다 자주 만났고 어머니들끼리도 친분이 있지요. 매우 좋은 친구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웃음).

요즘은 어때요.

샤샤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저는 동부 해안가인 델라웨어에 있기 때문에 거리가 꽤 멉니다. 거기다 저는 현역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반면 샤샤는 요즘 연예활동에도 도전하고 있고 <스타스 온 아이스> 일원으로 투어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이메일로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답니다.



조니 위어는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이다. 그의 가족관은 미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생각이다. 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대학을 포기했던 그는 현역 은퇴 뒤 디자인학교에 진학해 그간 미뤘던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울 계획이다(사진=스포츠춘추 이휘영)

이 질문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주 많은 이들이 제게 이 질문을 꼭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이미 짐작한 듯)알겠어요. 사랑하는 이가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아니요. 현재는 사귀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요. 개인적인 결심 때문입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상대를 마음 아프게 하지요.

맞아요. 애인이건 부부 사이이건 이기적인 관계는 상대에게 좋지 못해요. 그래서 결심한 거예요. 현역에서 떠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사귀어선 안 된다고.

겨울새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쓸쓸하게 들리는데요. 현역 은퇴 뒤는 어떻게 될까요.

그때라면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고 진지하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아직 섣부르긴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데 적절한 시기는 없다고 봐요. 현역 은퇴 뒤 무엇을 하고 싶나요. 역시 패션 디자이너인가요.

(두 눈을 빛내며)네. 그것도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집도 여러 채 갖고 싶습니다. 뉴욕, 모스크바, 서울 같은 여러 도시에 두루 머물며 여행하는 삶이 제 꿈이에요.

당신이라면 그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지금까지 피겨를 통해 세계 각지를 둘러볼 수 있었어요. 제 생활방식 자체가 글로벌 환경에 잘 적응되어 있답니다(웃음).

당신에게 피겨란 어떤 존재인가요.

피겨는 제 삶입니다. 피겨 덕분에 전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고 수많은 관중 앞에서 제게 주어진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세계에서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생겼고, 열심히 노력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토리노동계올림픽에도 참가할 수도 있었고요. 이 모든 것들이 제가 꿈꾸던 삶이었습니다.

피겨가 그렇게 좋은가요.

가끔씩 피겨가 힘들거나 골치가 아플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것 또한 즐기는 수준이 됐습니다. (잔잔한 눈빛으로)지금은 피겨가 삶이자…조니 자체에요.



조니 위어 Johnny WEIR

출생지 | 미국 펜실베니아주
생년월일 | 1984년 7월 2일
| 172cm
코치 | 갈리나 즈미에프스카야, 빅터 페트렌코
안무가 | 니나 페트렌코
프로그램 | SP: “시간의 날개” FS: 노트르담드 파리
경력 | 2004-05 미국선수권대회 1위
2005-06 토리노올림픽 5위
2006-07 세계선수권대회 8위
그랑프리(GP)시리즈 러시아대회 2위
2007-08 세계선수권대회 3위
GP시리즈 중국대회 1위
GP파이널 4위
2008-09 GP시리즈 스케이트 아메리카 2위
NHK배대회 2위
2008-09 GP파이널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