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렵했던 ‘코트의 신사’는 조금은 넉넉한 이미지의 인상좋은 아저씨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깨끗한 매너와 화끈한 고공 공격으로 90년대 배구판 최고의 스타로 꼽혔던 하종화(42). 친정팀 현대캐피탈 사령탑으로 돌아온 그는 선수들과 함께 숙소에서 동고동락 중이다. 22일 경기도 용인 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하나된 달라진 현대의 모습으로 올 겨울 정상에 도전하겠다고 했다.◇구호는 ‘나, 우리, 현대’
지난달 현대캐피탈과 계약한 그는 6월1일 팀에 합류해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9년 만에 친정에 돌아와 팀의 청사진을 만드느라 정신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 감독은 “20일 정도 선수들과 함께 했는데 문성민·최태웅은 재활 중이고 월드리그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도 있고, 선수들은 연봉협상 기간이라 아직은 전 선수들이 함께 모이지 못해 어수선하다”고 현재 팀 상황을 설명했다.
어수선함 속에서도 친정팀을 재건해야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그는 팀이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한다고 했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은 플레이오프에서 라이벌 삼성화재에 막혀 프로배구 출범 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에도 나서지 못했다.
그동안 밖에서 지켜봤던 현대캐피탈의 모습은 어떨까. 그는 “능력 있는 선수는 많이 있지만 조직적이고 성실한 면이 조금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수비 및 조직력이 떨어지는 현대의 고질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수들 모두 절제된 생각으로 목표의식을 가지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팀의 구호를 직접 만들었다. “팀에 오니까 작전타임때 외치는 특별한 구호가 없었어요. ‘나, 우리, 현대’라고 만들었습니다. 제가 ‘나, 우리’를 외치면 선수들은 ‘현대’를 외치는 겁니다.” 선수들은 처음엔 웃으며 어색해했지만 말이 행동을 지배하게 되고 응집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감독의 설명에 곧 진지해졌다. 하 감독은 “자기 자신을 위하고, 팀을 위하고, 우리가 소속된 회사를 위하는 하나의 마음을 가질 때 몸도 진정으로 하나가 된다”고 했다.
◇기본과 함께 우승을 향해 한발 한발
하 감독은 “우리는 준우승이 목표인 팀이 아니다. 선수들에게 ‘함께 기본에서 같이 시작하자. 배구는 물론 모든 생활에 대한 기본부터 만들자’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많이 듣던 ‘기본’ 얘기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이 항상 강조하는 배구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에 대한 설명과 비슷했다. 하 감독은 “팀이 바로 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좋은 장점도 받아들일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현역 시절 호쾌한 공격을 했던 하 감독은 지도자가 돼서는 지도스타일이 달라졌다. “배구는 큰 공격도 필요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수비와 토스 등 연결하는 섬세한 부분이 중요하다. 멋있진 않고, 소홀할 수도 있는 부분지만 그 것을 잘 이끌어내야 한다.”
현대캐피탈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착실히 한발한발 내디뎌야한다. 물론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프로는 냉정하기 때문에 성적을 내야한다. 그 점에 대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한다”고 했다.
◇학교 생활은 지도자 생활 자양분
프로배구판을 떠나 고교 지도자로 지냈던 지난 9년의 시간을 물었다. 그는 2002년 현대캐피탈 코치를 끝으로 모교인 진주 동명고에서 교사와 감독으로 후진을 양성했다. 그는 “동명 중·고교 배구 감독을 하다 2006년엔 교원 자격증을 따 교사로서,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함께 하며 여러가지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고 했다. 그는 대형 운전면허를 따 직접 학교버스를 몰고 배구부 선수들을 전국 곳곳 경기장으로 태우고 다녔다. 버스 기사비를 줄인 돈으로 선수들에게 더 좋은 밥을 먹였다. 한동안 어둠 속에 있었던 동명고 배구부도 하 감독의 헌신으로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고, 현 국가대표 신형 에이스인 전광인(성균관대) 등이 배출됐다.
그는 “9년간 선수·제자들과 함께 땀흘린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추억과 기쁨으로 남아있다”면서 “지도자로서의 좋은 밑거름을 만들었으니 프로판에서도 잘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요즘 “새 용병 뽑는 것도 머리 아프고, 에이스 문성민을 어떻게 조련할지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네 아이와 부인을 진주에 두고 홀로 선수단 숙소에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하종화 감독. 하나가 된 새로운 현대를 만들겠다는 초보 감독의 솔선수범 리더십이 올 겨울 코트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기대된다.
<용인 |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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