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cience /화 학

이(tooth), 음식을 쪼갠다

나 그 네 2012. 3. 1. 11:27

 

활짝 웃는 사람의 이가 아주 하얀 색으로 잘 정돈되어 있다면 타인에게 좋은 첫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이로 침이 질질 흘리면서 잡아먹으려는 듯한 기분나쁜 얼굴을 하고 웃는다면 혐오감이나 공포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동물원 우리 속의 동물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육식을 하기가 곤란해지므로 식습관을 바꾸게 하는 것, 그곳이 바로 이다. 아무리 덩치큰 공룡이라 해도 채식동물이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무서울 게 없다. 그러나 육식을 하는 공룡이 쥬라기공원 영화에서 사람을 노리는 모습은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덩치가 작다 해도 육식공룡은 작은 동물은 물론 자신보다 더 큰 다른 공룡을 잡아먹기도 했다. (국립서울과학관 2층에 육식공룡이 채식공룡을 해치는 모형이 있다) 동물이 육식을 하려면 일단 이부터 튼튼하고 봐야 한다. 호랑이든, 악어든, 피라니아 물고기든 이만 튼튼하면 혹시 먹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의 몸을 언제라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무섭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통증은 다 참더라도 치통은 못 참는다”라 하여 이가 건강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있고, 궁여지책을 가리키기 위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소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서는 입으로 들어온 음식이 일단 잘게 쪼개져야 하며, 이 때 제일 먼저 이가 나서야 일이 진행된다.

 

 

 

 

젖니가 빠지고 간니가 나고 있는 어린이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 어린이와 어른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과 세상 근심을 잊게 하는 활짝 핀 웃음으로 어른을 즐겁게 하는 어린이들은 엄마젖을 열심히 빠는 시기에 아래 중앙에 이 두 개가 난 것을 시작으로 상하좌우에 모두 5개씩 20개의 이를 가진다. 이를 젖니(유치)라 한다. 젖니는 유치원을 다니는중에 빠지기 시작하고 새로운 이가 나기 시작한다. 젖니가 빠진 후 새로 나는 이를 간니(영구치)라 하며, 젖니는 초등학교 상급생이 될 때쯤 모두 빠진다. 해외토픽이나 믿거나 말거나 등에서 간니마저 모두 빠져 버린 노인에게서 새로운 이가 났다는 이야기가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로또 1등 당첨과는 비교가 안되게 희귀한 일이며, 간니는 더 이상 새로 나지 않으므로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상하와 좌우의 이는 아주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어른의 경우 앞 중앙에서 안쪽으로 앞니 2개, 송곳니 1개, 작은 어금니 2개, 큰 어금니 2-3개가 자리잡고 있으므로 곱하기 4를 하면 모두 28-32개의 이를 가지고 있다. 즉 정상적인 성인의 이의 개수는 28-32개가 된다. 큰 어금니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이는 사랑을 느끼는 청소년 시기에 맨 마지막으로 이가 나온다는 뜻에서 사랑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사랑니는 사람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부터 심한 통증을 느껴 치과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해결 가능한 경우까지 있지만 사랑니가 나지 않는 경우도 비정상이라 할 수 없다. 반드시 정상적으로 사랑니가 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정상적인 이의 개수는 28-32개가 된다.

 

 

 

 

이가 아파 고생을 해 보신 분은 건강한 이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실 것이다. 이가 튼튼한 것을 다섯 가지 복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원래 오복이란 고대중국에서 발행된 <상서(尙書)>에 오래 살고, 부유하며, 편안하고, 훌륭한 덕을 닦고, 제 명에 죽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어느 결엔가 건강한 이가 오복의 하나로 꼽히게 됐고, 수백년간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우리 몸을 이루는 한 가지 구성 요소에 불과하지만, 현대화 과정에서 대학교에 의학이라는 학문과 별도로 치의학이라는 학문이 독립된 단과대학의 역할을 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과목도 구강외과, 치주과, 보존과, 보철과, 교정과, 소아치과 등으로 세분화되어 이에 생긴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가장 깔끔하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계속 연구하는 중이다. “다른 통증은 다 참을 수 있지만 이 아픈 건 정말 못 참는다”거나 “이는 자연치료가 되지 않으니 치과에 일찍 가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잘 하는 짓이다”라는 속설이 있다. 이가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심한 경우 인상이 찌그러져서 타인들과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으니 건강한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의 구조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잇몸에 박혀 있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치아머리(crown, 치아관), 잇몸에 박힌 부분을 치아뿌리(root)라 하며, 그 경계부위를 치아목(neck, 치경)이라 한다. 치아머리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인 사기질(enamel)로 덮여 있다. 사기질의 주성분은 인산칼슘이며, 약해 지면 치아가 부서지기 쉬워진다. 따라서 아동기에는 칼슘인산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치아건강에 도움이 된다.


치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상아질(dentin)이다. 상아질은 뼈와 강도가 비슷하지만 세포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뼈와의 차이점이다. 상아질 안쪽, 즉 치아의 중간에는 치아속질공간(pulp cavity)이 위치해 있다. 치아뿌리관을 통해 치아로 들어온 혈관과 신경이 분포하는 곳이 바로 치아속질공간이다. 이가 심하게 손상되어 치아속질공간이 외부로 노출되면 피가 나거나 통증(아프기도 하지만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치아뿌리는 치아주위조직(periodontal ligament)에 의해 뼈에 고정되어 있다. 치아뿌리의 상아질은 시멘트질(cementum)에 의해 표면이 덮여 있다. 시멘트질은 상아질을 보호하고, 치아주위조직의 부착기능을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시멘트질의 구조는 뼈와 비슷하지만 뼈보다는 연한 편이고, 손상되면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양치질에 3.3.3 법칙이 있다는 것은 유치원생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 하루에 세 번씩, 식사 후 3분 이내에 3분간 이를 닦음으로써 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왜 닦아야 할까? 이를 닦으면 진짜로 이가 건강해지는지 과학적 증거를 대라면 대답하기가 힘들어진다.

 

“과학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면 “보편타당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를 닦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간에 모든 인자를 똑같이 해 놓고 관찰 또는 실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를 닦는 것이 이를 더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목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목욕을 잘 하는 경우보다 피부병이 잘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음식을 섭취한 후 양치질을 하지 않은 상태로 이에 고추가루를 달고 다닌다면 사회생활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고, 입 안의 기분상태도 상쾌하지 못하므로 이닦기가 습관화한 분들은 이를 안 닦고 버티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식사 후에 이 사이에 찌끄러기가 남아 있으면 입에 존재하는 세균과 만나 치태(plaque)를 형성하게 된다. 치태는 부드럽고 비석회화성 세포침착물로서 치아 표면에 형성되는 막을 가리킨다. 치태는 치아우식증(흔히 충치라 함)과 치주질환을 야기시키는 중요한 인자로 작용한다. 치태는 곧 치석으로 발전한다. 치석이 형성되는 기전은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고 있으나 치석이 치과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평소에 양치질을 잘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스케일링을 실시하여 이를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치과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험프리 데이비(Sir Humphry Davy, 1778-1829)


 

현대인과 원시인중 누구의 이가 튼튼할까? 원시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치과지식이 없어서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테니 전반적으로 보면 현대인의 이가 더 튼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병유무를 이용하여 이의 튼튼함을 판정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체가 감당할 수 있는 힘으로 판정하자면 현대인의 이는 원시인보다 훨씬 약하다. 즉 이는 진화된 것이 아니라 퇴보하였다.


이가 약해진 가장 큰 이유는 식생활 습관의 변화 때문이다. 굽거나 요리한 고기를 먹는 것은 생고기를 먹는 것보다 씹는데 힘이 덜 든다. 그러므로 이에 힘을 줄 필요가 줄어 든다. 수천년 수만년에 걸친 인간의 식생활 변화는 가능하면 이에 힘을 덜 주는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는 바게트 빵도 질기다고 치즈 케이크를 먹을 정도가 되었으니 “씹지 않아도 살살 녹는다”는 이야기는 “음식이 맛있다”는 의미와 함께 “내 이는 계속 퇴화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현대인의 이가 약해지면서 얼굴 생김새도 달라져 턱 부위는 날이 갈수록 작아져가고 있다. 이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러므로 오징어 다리를 씹어서라도 이를 튼튼히 유지하는 것이 만약을 대비하기에 좋을 것이다. 웬만하면 삼키지 말고 씹어서 넘기는 것이 이를 튼튼히 유지하기에도 좋고, 위에도 부담이 적게 가니 길게 보기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수술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행위다. 수술은 응급상황에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이 의학에서 수술이 보편화한 것은 항균화학요법마취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을 통해 인체내부가 외부환경과 만나게 되면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사람 몸속으로 침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항균화학요법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수술결과가 좋을 수가 없었다. 또한 마취제가 없으면 수술시 발생하는 통증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수술에 따른 환자들의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이나 컸다.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원시적인 마취제를 제외하면 아산화질소, 에테르, 클로로포름 등이 발견되어 수술시 마취제 사용이 보편화한 것은 약 200년 전의 일이었다. 18세기가 끝나기 직전 데이비(Sir Humphry Davy, 1778-1829)가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발치(拔齒, 이 뽑기)를 처음 시도하여 논문을 발표했으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미국의 치과의사 웰즈(Horace Wells, 1815-1848)는 1844년에 아산화질소를 이용하여 발치를 했으나 당시만 해도 적정용량을 모른 채 사용을 했으므로 성공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연구와 노력에 의해 아산화질소는 물론 에테르, 클로로포름 등의 마취효과가 발견되면서 수술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마취제를 이용한 발치가 마취제 발전의 시금석이 된 것은 큰 수술보다 이를 뽑는 수술이 위험도가 낮았으므로 시도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뽑는 수술은 이차감염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낮다.

 

 

 

 

예병일
예병일 /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저서로는 <내 몸 안의 과학><의학사의 숨은 이야기><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등이 있다.<내 몸 안의 과학>은 교과부에서 2008년 상반기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었다.

발행일  200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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