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cience /화 학

형광 ( fluorescent )

나 그 네 2012. 3. 13. 17:45

2008년 노벨화학상은 해파리에서 녹색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 GFP)을 발견하고 이를 생물학 연구의 활용에 기여한 시모무라, 챌피, 첸, 세 교수의 차지였다. 형광은 빛으로 들뜬 분자에서 나오는 빛이다. 형광 현상은 화학과 생명과학 연구에 아주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빛으로 작동되는 미래의 분자소자 개발 연구의 핵심이다. 또한 지폐나 여권의 위조 방지에도 이용된다.

 

 

빛을 흡수하여 들뜬 분자는 어떻게 되는가?

분자가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을 흡수하게 되면 바닥 상태에 있는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로 들뜨게 된다. 흡수한 빛 에너지가,  결합에너지나 구조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보다 크다면, 일부 분자는 분해되거나(광분해) 구조 변화(광이성질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분자는 흡수된 빛 에너지를 보통  열에너지로 내어놓으면서 다시 바닥 상태로 되돌아 간다. 그러나 어떤 분자들은 빛을 내면서 바닥 상태로 되돌아 가는데, 이를 형광이라 한다. 형광은 흡수된 빛 에너지 보다 약간 적은 에너지의 빛으로 나온다. 즉, 형광의 파장은 흡수된 빛의 파장보다 약간 길다.

 

빛을 흡수한 분자에서 일어나는 분자내 및 분자간 과정. 작은 파란색 원은 들뜬 분자의 낮은 에너지 상태의 빈 자리이다.
분자의 진동 상태 때문에 형광 에너지는 흡광 에너지보다 적고, 따라서 흡수한 빛 보다 긴 파장에서 형광이 나온다.

 

 

들뜬 분자가 다른 분자에게 전자나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

들뜬 분자 A 주위에 다른 분자 B가 있을 때는, A와 B 분자의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분자간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광유발 전자 전달(Photoinduced Electron Transfer) 반응이다. 한 예는 분자 B의 전자가 들뜬 A 분자의 바닥 상태에 생긴 빈자리로 이동하는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빛에 의해 A는 전자를 받아 환원되고, B는 전자를 잃어 산화된다. 반대로 들뜬 분자 A 에서 분자 B로 전자가 이동하여, A는 산화되고 B는 환원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에너지 전달이다. A 분자의 형광 파장대와 B 분자의 흡광 파장대가 겹치는 경우, 들뜬 A 분자는 이의 에너지를 B로 전달하여 B를 들뜨게 하고, A는 바닥 상태로 돌아간다. 이때 B가 형광을 내는 분자라면, B의 형광이 A의 형광보다 장파장에서 나온다. 들뜬 분자에서 에너지를 전달 받아 들뜬 분자도 직접 빛을 흡수하여 들뜬 분자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자에게서 전자를 받을 수 있고, 또 다른 분자로 전자나 에너지를 줄 수도 있다.

 

전자 전달이나 에너지 전달이 일어나는 경우, 분자 B에 의해 A의 형광은 감소한다. 이를 소광(quenching)이라 하고, B를 소광제(quench er)라 부른다. 소광 효율은 A와 B의 화학적 특성은 물론, 이들 간의 거리에도 민감하게 변한다. 특히 에너지 전달은 몇 나노미터 (1 nm = 10-9 m) 거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 특성을 알고 있는 A와 B사이의 에너지 전달 효율로 이들 간의 거리를 알 수 있다. 거대 생물 분자의 특정 위치에 A와 B를 결합시킨 후 이들 사이의 에너지 전달 효율을 측정함으로써 결합된 위치 사이의 거리를 구하고, 분자의 공간적 구조를 연구하기도 한다.

 

 

빛 에너지 전환과 광분자 소자

광유발 전자 전달은 빛으로 물을 분해시키는 반응이나, 식물의 광합성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빛을 받는 분자와 이 분자에서 전자나 에너지를 받는 분자들을 공유결합이나 착물 형성을 통해 특정한 구조를 갖도록 조립시키면, 빛 에너지나 전자를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를 활용하여 물의 광분해에서와 같이, 빛을 써서 높은 에너지의 화학물질을 효율적으로 얻거나, 빛으로 작동되는 분자 기계를 만드는 것이 시도되고 있다.

 

 

형광은 형광 분자의 주위 환경을 나타낸다

빛을 흡수하여 들뜨는 분자에서, 들뜨는 부분에 분자내적으로 전하를 줄 수 있는 원자가 결합되어 있으면, 들뜬 상태에서 분자 내 전하이동이 일어난다. 이 분자는 바닥 상태와 들뜬 상태의 전자 분포가 다르고, 따라서 극성이 다르다. 분자가 들뜬 상태에 머무는 시간은 대략 1 나노초 (10-9 초)이다.  용액에서 분자 주위의 용매 분자가 재배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이보다 월등히 짧아, 들뜬 분자의 극성에 따라 용매의 배열이 달라진다.

 

용매의 극성에 따라, 들뜬 분자와 용매간의 상호작용 에너지가 다르므로 들뜬 상태의 에너지가 달라지고, 따라서 나오는 형광 파장이 달라지게 된다. 즉 형광 파장은 형광 분자가 놓여있는 주위의 극성을 나타낸다. 예로, 들뜬 상태가 바닥 상태보다 더욱 극성이라면, 들뜬 상태의 에너지는 비극성 용매에서 높고, 높은 에너지 즉 단파장의 형광이 나오게 된다.


실험쥐의 뇌의 사진. GFP를 이용하여 다양한 색을 내었다.

 

또 어떤 분자는 주위 극성에 따라 나오는 형광 세기가 크게 다르다. 세포막이나 단백질에 이런 형광 분자를 결합시키면, 형광 분자가 내는 형광으로 형광 분자가 있는 부분의 극성을 알 수 있다. 형광 분자의 다른 특성을 이용하면 형광 분자 주위의 점성도도 알 수 있다. 또한 단백질의 구조 변화가 이에 결합된 형광 분자의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형광으로 단백질의 구조 변화를 용이하게 추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형광 분자로 조직이나 세포를 염색시키면, 염료 분자가 결합된 부위에서 강한 형광 나온다. 많은 생명과학적 이미지 사진은 이를 형광현미경을 이용하여 얻은 것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형광 꼬리표 달기와 형광센서

형광 측정은 빛의 세기를 측정하는 것이고, 흡광은 쪼여준 빛과 흡수되지 않고 투과된 빛의 비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광은 흡광 보다 월등히 민감하게 검출된다. 보통 빛의 흡수로 검출되는 물질의 농도는 10-5 M 이상이나, 형광은 이보다 1000 배 이상 낮은 농도도 검출할 수 있다. 검출하고자 하는 분자에 형광을 내는 분자를 결합시켜 형광을 추적하면,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이를 검출할 수 있다. 이처럼 형광을 내는 분자로 꼬리표를 붙여 분석하는 방식이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분석, DNA의 염기서열 분석, 항원-항체 분석 등에 이용되고 있다. 착물 형성으로 흡수하는 파장(색)이 변하듯, 분자의 형광도 착물 형성에 따라 민감하게 변한다. 따라서 우리가 분석하고자 하는 분자나 이온과 강하게 결합하고 이에 의해 형광 특성이 크게 변하는 형광 분자는 이 분자나 이온을 검출하는 형광센서로 사용된다.

 


위조 지폐나 문서의 감식에도 형광이 이용된다

지폐나 여권 등에는 위조 여부를 감식하기 위해 비밀스런 글이나 그림이 형광 물질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형광 잉크는 가시광선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색을 띠지 않아 그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외선을 쪼이면 이를 흡수하여, 이보다 장파장인 가시광선을 내어놓아 보이게 된다.

 

지폐에는 위조 방지를 위해 형광 물질을 이용한 그림을 넣는다.
<출처: 중앙대학교 하동환 교수 연구실>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해파리의 녹색형광 단백질이 생물학 연구를 혁신하다 

여러 바다 생물체들은 녹색 형광을 낸다. 어선들이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강한 불 빛을 바다에 비추면 이들 녹색 형광이 보인다. 1960~19 70년 대에 일본인 과학자 시모무라(Osamu Shimomura)는 투명한 해파리에서 녹색형광 단백질(GFP)을 분리하였다. 1992년에는 이 단백질의 유전자가 클로닝(cloning)되고 유전자 염기 서열이 분석되었다. 1995년에 챌피(Martin Chalfie) 교수는 이 유전자를 대장균 등에서 발현시켰고, 첸 (Roger Tsien) 교수는 돌연변이체를 만들었다. 

 

변이체 GFP는 야생종에 비해 생물학 연구에 적합한 여러 바람직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후 여러 다른 변이체, 특히 다른 색의 GFP가 만들어졌다. 여러 합성 형광 물질들은 일반적으로 강한 독성을 나타내어 살아있는 세포에 사용하기가 어려웠으나, GFP는 독성이 적어 살아있는 세포 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단백질 유전자에 GFP를 생성하는 유전자를 결합시키면, 세포나 조직에서의 유전자 발현을 GFP 형광으로 추적할 수 있다. 특히 각각 다른 색의 GFP 유전자를 여러 종류의 연구 대상 세포나 조직에 붙이면, 이들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이외에도 GFP 유전자 결합을 통해 신경회로의 분석, 세포막 연구, 바이러스 감염 메커니즘 등 아주 다양한 생명과학적 연구가 수행되었다, 또한 살아있는 동물에 GFP를 도입한 형광성 동물도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 졌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시모무라, 챌피, 첸 교수

 

빛으로 들뜬 분자의 물리적 현상에 불과한 형광이, 화학 분석, 생물학 연구, 빛 에너지 전환, 분자로 조립된 미래의 광분자 소자 개발, 위조 방지 등 얼핏 보면 관련이 없는듯한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과학의 중요성은 이와 같이 한 가지 원리와 내용이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는 것이다.

 

 

 

박준우 /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템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뮤코다당류의 생화학과 생물리학>이 있고, 역서로 <젊은 과학도에 드리는 조언> 등이 있다.


발행일 
2009.09.17

'Natural science > 화 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속 성질표  (0) 2012.03.28
발광 ( luminescence )  (0) 2012.03.13
빛과 색  (0) 2012.03.13
색의 근원은?  (0) 2012.03.13
Aluminium (알루미늄) -재활용이 필요한 금속  (0) 201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