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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원산지 임창시를 찾아서

나 그 네 2013. 1. 9. 18:21

보이차의 원산지 <br />
임창시를 찾아서

보이차 최대 재배면적과 최다 생산량을 자랑하는 임창시

전편에서 언급한 보이시(普洱市)에 이어 보이차의 원산지를 찾아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운남성 서남부에 위치한 임창시(市)이다. 임창시의 봉경현(鳳慶縣)은 약 3200년 된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재배형 차나무인 ‘금수차조’를 비롯하여 야생대차수가 자라고 있는 곳으로, 보이차 원산지로서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임창은 중국에서도 외딴 곳에 속하여, 운남성의 성도(城都) 곤명(昆明)에서 출발할 경우 버스로 최소 13시간이 걸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360년전 [서하객유기(徐霞客游记)]의 서하객(徐霞客: 중국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이 찬양하고 중국의 현대 차 권위자 오각농(吳覺農)이 ‘세계 인류의 대차원’이라고 칭송했던 임창을 가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과감히 임창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임창시는 운남이 자랑하는 각종 차나무 우량품종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보이차 종자의 유전자 은행’으로 불린다. 그 중 쌍강현에 위치한 맹고산은 광활한 원시밀림을 형성하고 있고, 깊은 골짜기에 원시 고차수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사진은 원시밀림이 시작되는 맹고차산 입구이다.

쌍강현 맹고진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울창한 숲과 시원한 협곡은 나를 대자연의 품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당겼다. 도착하여 책에서만 보고 이야기로만 듣던 보이차의 원산지 야생 고차수림이 눈앞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자, 차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한 차의 향기에 취하는 것 같았다. 맹고 융씨차창(猛庫戎氏茶廠)은 공장 직원 250여 명이 년간 맹고에서 딴 생엽 4000톤으로 보이차 1000톤을 생산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배려로 임창차구(臨滄茶區)를 둘러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를 안내한 관계자에게서 임창시의 차 산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운남의 대차수(大茶樹)들은 대다수가 관목형이 아닌 교목형(喬木型) 대엽종 차나무이다. 이것을 다시 야생형과 재배형으로 분류하는데, 현재 임창시에서 재배하는 야생형과 재배형 고차수의 전체 차 면적은 85만 묘에 달하고, 계단식 논밭 형태의 소수차와 대지차 다원을 합하면 130만묘(畝, 1묘=200평)에 이르게 된다. 운남성 차엽 총 면적 523만묘 가운데 25%가 임창에 있고, 차의 총 생산량은 자그만치 3만톤에 이른다. 따라서 임창은 차 재배면적이 제일 큰 지역이면서 생산량 또한 제일이라고 한다. 또한 운남이 자랑하는 각종 차나무 우량 품종 대부분을 임창시가 보유하고 있어서, 임창을 가리켜 ‘보이차 종자 유전자 은행’이라고 하였다. 그중 임창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찻잎의 품종은 봉경대엽종 차나무와 맹고대엽종 차나무라고 한다. 이 고차수들은 모두 보이차를 만드는 국가 표준의 교목형 대엽종 차나무들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을 마지막으로, 맹고차창 책임자를 소개시켜 주면서 우리를 맹고차산으로 안내하도록 하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생고차수 군락지

임창시는 운남성의 원시적 형태를 가진 고차수림의 50%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그만큼 고차수의 분포 면적이 넓은 지역으로, 지난 30년간 이곳에서 야생 고차수가 계속적으로 발견되면서 차나무 발원지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중 쌍강현에 위치한 맹고의 산들은 광활한 원시밀림을 형성하고 있고 그 가운데 방마대설산(邦罵大雪山)이 있다. 이곳은 종횡으로 산이 등을 맞대고 연결되어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골짜기를 따라 원시형 고차수들이 해발 2200~2750m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 골짜기들을 ‘세계야생 고차곡(世界野生古茶谷)’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요즘에 와서다. 세계야생고차곡의 고차수가 분포한 방마대설산은 원시 밀림지대로, 전 세계의 차산 중에서 해발이 가장 높고 차나무의 분포면적과 밀도도 모두 최대이다. 차나무의 보존도 가장 완전하며, 차나무의 내성도 또한 강한 세계 제일 야생고차수 군락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집중 분포한 야생고차수 면적은 240만평(1.2만묘) 이상이고 각 나무 사이는 평균적으로 5~10m씩 떨어져 있다. 이곳에는 나무 한주의 높이가 15m 이상의 야생고차수가 많다. 3m 이하 고차수는 이 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보이차 업계에서는 이 고차곡의 고차수들을 ‘운남대엽차의 정통’이라고 평한다. 설산에서 천연으로 자생해온 야생형 야생차에 속하고 진화 형태상 가장 원시적이다. 그래서 임창은 야생고차수의 원산지라고 불린다.

'세계고차곡 1호', 대설산 야생대차수

세계 최대 규모의 야행고차수 군락지 임창시에서 발견된 대설산 야생대차수. 해발 2,700m의 깊은 원시림 안에서 발견된 이 나무에는 '세계고차곡 1호'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 곳에서 2007년 야생 대차수(大茶樹) 하나가 발견 되었다. 설산 자락에 사는 한 주민이 방마대설산에서 약초를 캐던 중 해발 2,700m 깊은 원시삼림 안에서 야생대차나무를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나무에 익숙한 원주민들도 이 야생대하수는 너무 거대해서 이 나무의 나이를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아직 이 야생대차수의 정확한 나이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약 2700~3000년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나무는 밑둥 둘레가 4m에 달하고 몸통 둘레는 3.5m, 나무 높이는 20m 정도다. 이 나무는 방마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대설산 1호 야생대차수’로서 ‘세계고차곡 1호’라는 팻말이 차나무 앞에 세워져 있다. 이 고차수는 3세차조였던 ‘천가채 야생1호 차나무’의 몸통 둘레 2.82m보다 더 굵고 해발도 훨씬 높다. 만약 이 설산의 야생고차수가 식물전문가에 의해 수령이 2700년이 훨씬 넘는다고 발표된다면 보이차 원산지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방마설산 주변은 야생고차수들이 마치 구름처럼 깔려있고, 그 밑으로는 야생차뿐만 아니라 재배형 고차수와 대지차들이 함께 자라나며 녹색의 왕국을 이룬다.

하늘 아래 울타리 없는 보이차의 제1 창고

이 고차곡에 대한 이름은 임창 시급위원회에서 2007년에 출판한 [중국임창차문화(中国临沧茶文化)]라는 책에 기재되어 있다. 방마설산의 ‘고차곡’은 맹고진의 북부 남맹하 상류 양안에 위치한다. 남맹하에는 동반산과 서반산이 있는데 동반산의 최고해발은 2700m, 서반산의 최고해발은 3233m 이다. 서반산엔 유명한 빙도(冰岛)를 비롯한 패가(坝卡), 동과(董过) 대호채(大户赛), 공농촌(公弄村), 병산(丙山) 방개(邦改) 등 7개 마을이 있고 동반산(东半山)에는 양자촌(梁子村), 패나(坝糯), 나초(那蕉), 나새(那赛) 등 5개의 마을이 있다. 맹고 지역은 이처럼 야생차나무와 재배고차수, 소수차, 대지차들이 끝없는 그린벨트를 이룬다. 하늘 아래 울타리 없는 창고와 같아 차 애호가들은 이곳을 하늘 아래의 창고, ‘천하의 보이제일창(天下普洱第一倉)’이라고 찬양한다. 운남성은 북동쪽으로 사천성과 경계를 이룬다. 옛 사천인들은 운남을 일러 ‘사천의 뒤뜰’이라고 했다. 과연 사천인들이 맹고 대설산에 와보았다면 천하보이제일창을 사천의 뒷마당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맹고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에 의해 훼손을 받지 않아 가장 원시적인 환경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 야생고차수들이 계속 식생을 넓혀가고 인공재배되면서, 이들을 길들이고 재배한 역사가 수천년 이상이라고 한다.

임창시의 금수차조 그 역사적 가치는?

일본의 농학박사이자 차엽전문가 오우모리 마사시(大森正司)와 중국농업과원 차엽연구소 임지(林智) 박사는 이 차나무 수령을 3200~3500년 사이로 측정했다. 이 나무는 명백한 인공재배한 고차수라고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재배형 차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공재배형 고차수. 오래된 세월만큼 그 몸퉁 둘레와 높이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처럼 야생대차수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 임창시에서는 언제부터 차나무를 직접 재배하고 이용하였을까? 운남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 전 상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이미 차가 상주시기 나라의 공물로 바쳐지고 음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공물을 바친 고대 소수민족은 복인(濮人)이다. 복인이 모여 살던 곳인 봉경현(鳳慶縣), 소만진(小灣鎮), 금수촌(錦秀村), 향죽청(香竹箐)에서 모든 차의 어머니(茶王之母), 차조모(茶祖母), 혹은 금수차조(錦秀茶祖)라 불리우는 대차수 하나가 발견됐다. 이 차나무는 야생형이 아닌 재배형으로, 그 나이를 약 3200~35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밝혀진 재배형 차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차나무이다. 그 세월을 이야기하듯 몸통의 둘레는 약 5.82m로, 세 명의 어른이 서로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아지고, 높이는 10.2m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오른 차나무 끝 가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이다. 즉, 세계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3200세 인공재배형 고차수(栽培型古茶樹)이며 나이가 많고 몸통이 굵은 재배형 대차수이다. 이러한 차나무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임창은 인공 대엽차 재배의 가장 중요한 발원지이자, ‘세계 차종의 첫번째 원생지’라고 할 수 있다. 금수차조의 발견으로 인해 3200년 전 이곳 사람들이 이미 차를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재배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원시형 차나무의 역사까지 추산한다면 임창의 금수차조가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 이 밖에도 인공재배형 고차수 주변에는 재배고차수 14000주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자라고 있다. 봉경현은 국가에서 지정한 우량종인 봉경대엽차종이 생산되는 곳이다. 봉경대엽종의 고차수로 보이차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들 잎은 홍차의 원료로도 쓰인다. 현재 봉경현에서는 중국 홍차 총 생산량의 20%가 생산된다. 그래서 임창을 운남홍차의 고향 ‘전홍지향(滇红之乡)’이라고도 부른다. 봉경대엽종의 어린잎인 새싹 단아(單芽)만을 따서 제조한 최상급 홍차 ‘전홍’은 새싹 전체가 황금빛이어서 ‘금아차(金芽茶)’라고 한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특히 즐겨마신다고 알려져 있다.

2006년 3,200년 된 고차수의 찻잎을 따서 만든 차왕병(왼쪽)과 그 속지(오른쪽).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보이차인만큼 그 가치와 가격이 특별하다고 알려져 있다.

2006년 봉경차창에서 이 고차수를 따서 만들어진 보이차는 한 편당 약 500g으로 30여 편 가량 만들어졌고, 그 이름을 ‘차왕병’이라고 했다. 차왕병은 역사를 가진 보이차이다. 필자도 차를 사랑하는 한명의 애호가로서 차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소장한다는 의미로 차왕병 한 편을 구매하였다. 그리고 2007년에 만들어진 병차는 한 편당 499g으로 12편이 만들어 졌는데 그이름을 ‘금수차조’라 하였다. 그 중 한편의 차가 중국 홍콩 바로 옆의 도시 심천 박람회에 출품됐다. 그런데 이 차의 가치를 알아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구매를 원하여 부득이하게 경매를 통해 판매를 진행하게 되었다. 초기경매가는 당시 25만위안이었는데, 심천의 어느 차 가게 사장이 최종 가격 40만위안에 낙찰을 받았다. 생차 한 편에 그때의 환율로 5000만원이라니 과연 ‘차왕의 어머니’에 대한 평가가 대단하다. 그는 자신의 가게 안에 금수차조를 화려하게 장식하여 걸어놓았다고 한다. 2007년 채엽 이후 금수차조는 중국 정부가 지정한 귀중한 보호수가 되면서 한 잎의 차도 딸 수가 없게 되었다. 봉경대엽종 싹으로 홍차를 만드는 전홍집단에서는 2011년 우리 돈 약 18억원을 들여 3200세의 금수차조를 보호하는데 힘을 더하고 있다.

찻잎을 채취하는 그림이 새겨진 임창시의 암벽화

임창시의 소수민족들이 유구한 역사와 함께 이루어온 차문화는 3200세 금수차조의 역사와 시대를 함께 한다. 이같은 사실은 와족(佤族)이 3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이미 천연염료를 이용하여 절벽으로 된 수직의 암벽 위에 그들의 생활상을 그려 놓은 벽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암벽화는 해발 1000~2000m 사이에 그려졌는데, 거기에는 차엽을 따는 풍경의 암벽화와 수렵생활, 방목(放牧), 마을풍경, 전쟁, 그들의 춤과 기예 등이 그려져 있다. 첫 번째 벽화에는 가족 단위로 채집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두 번째 벽화에는 두 사람이 키가 큰 야생 고차수 위에 올라 찻잎을 채취하고, 한 사람은 나무 밑에서 따서 떨어뜨린 찻잎을 줍고 있다. 세 번째 벽화에는 아이가 차나무에 올라가 찻잎은 따는 모습과, 그 아이를 차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로 인해 3000년 전 와족의 찻잎 채취 모습과 차나무의 형태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직도 와족들은 밧줄을 연결하거나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차를 따는 습관이 남아있다. 와족에게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차를 마셨다면, 당신은 영혼을 볼 것이다.” 이 말은 차나무가 곧 영혼이고 조상이라는 뜻이며, 차를 마시면 영혼을 정화하여 정신을 깨어있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매년 그해에 가장 잘 만들어진 임창의 고수차로 암벽화에 제사를 지낸다.

임창시 소수민족의 차 생활

임창의 풍부한 차나무 자원은 그들의 실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어 독자적인 차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이 즐겨 음용하는 차는 죽통차(竹筒茶)와 소차(烧茶), 뢰차(擂茶) 등이 있다. 최초로 차나무를 이용한 복인의 후예인 와족은 신석기시대부터 높고 깊은 산중에 살아서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들이 대대로 모여사는 마을, 창원현(滄源縣)은 차나무뿐만 아니라 대나무도 풍성한 지역이다. 그래서 와족들은 주변의 가장 흔한 대나무로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 의자 등 생필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누각(竹楼)을 만들어 그 안에서 휴식하며 죽통 안에 차를 넣고 끓여 만든 죽통차를 마신다. 죽통차를 끓일 때 설탕을 넣은 차는 기혈을 보충하는 작용과 함께 청춘남녀의 달콤한 사랑을 상징하고, 죽통차에 생강을 넣어 끓인 차는 추위를 쫓고 체내의 열을 발산시키는 작용을 하며, 박하차는 더위를 물리치는데 사용된다.

이들에게 전래되는 재미있는 노래가 하나가 있다. “대나무 잎은 푸르고 무성하며 죽통은 길다. 잘라낸 죽통 마디에 사탕을 담고, 이 죽통 사탕을 먹은 애인은 변심하지 않고 오래 살아간다.” 이 노래처럼 와인(佤人)들은 대나무를 생활의 다방면에 걸쳐 이용하였고, 그들의 오랜 식문화의 하나인 차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만들어진 소산이 바로 죽통차이다.

와족들이 즐겨 마시는 또 다른 차에는 소차(烧茶)가 있다. 소차는 와족어로 ‘왕랍(枉腊)’이라고 부른다. 소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바닥을 살짝 파서 세워 놓은 화당(火塘)이라는 화로를 준비하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인다. 그런 다음 차엽을 철판 위에 고르게 깔아 불 위에 올려놓고 굽는다. 기다렸다가 차엽이 노르스름하게 구워지고 차향이 올라오면 구운 찻잎을 주전자에 넣고 다시 끓인 후, 잘 끓인 차를 작은 잔에 따라 마신다. 이 찻물의 탕색은 진한 황색으로 대개는 첫 맛이 쓴데 곧이어 단맛이 따라오며 구수한 향을 품어낸다. 죽통차와 소차와 달리 차 안에 생강, 육계, 소금을 넣고 함께 끓여 마시는 색다른 방식의 뢰차(擂茶) 또한 와족이 즐겨 마시는 차 중의 하나이다. 이곳의 한 와족이 만들어준 ‘왕랍”을 한잔 맛보았다. 이 차에 들어간 찻잎의 원료가 무었인지 물었더니, 와족인의 말로는 “와족이 대대로 설산에서 채집한 고수차 찻잎은 왕랍의 기본재료”라고 하면서 요즘엔 보이차로 부른다고 하였다.

뚜껑 없는 주전자, 토관의 매력

투박한 질감의 토관은 와족이 차를 끓일 때에 사용하는 토기 주전자이다. 운남 지역의 흙으로 만들어진 뚜껑없는 토관은 그 생김새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거기서 따라내는 차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와족들 소차나 뢰차를 끓일 때 꼭 사용하는 것은 토기로 만든 주전자이다. 나에게 왕랍을 끓여준 와족은 차를 끓일 때 토기 주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 모양이 독특하기도 하였지만, 토기가 따라내는 차맛이 하도 기가 막혀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 토관에 대한 문헌을 살펴보게 되었다. 청대 정판교(鄭板橋)는 “입은 뾰족하고, 귀가 약간 높다. 이 주전자가 있기 때문에 배고픔을 없애고, 추위를 달랜다. 주전자가 작아 차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보이지만, 은근히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소수민족들의 토기 주전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2004년 임창의 임상구(臨翔區)에서 송(宋)ㆍ원(元) 시기 차를 끓이는 도구로 보이는 작은 동(銅)주전자가 하나 출토되었는데, 이미 천 년이 넘는 오래된 것이었다. 이 동주전자의 출토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들의 동이나 토기로 만든 주전자를 이용한 차생활이 이미 천년이 넘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운남 지역의 흙으로 운남에서 만들어진 뚜껑도 없는 작은 토관은 출수구(出水口)가 있어서 차를 따르기에 매우 편리하지만 보잘 것 없는 옹기의 하나일 뿐이다. 이 작은 옹기에서 끓여낸 차를 소수민족들은 토관차(土罐茶), 고차(烤茶), 관고차(罐烤茶)라고 부른다. 운남의 대부분 소수민족들은 이 토관에 끓이거나 굽는 방식으로 보이차를 마신다. 투박한 질감이 정이 가고 흙과 함께 배어나오는 차의 향기를 한국에 전해주고 싶어 배낭이 가득찰 정도로 구입하여 한국으로 가져온 뒤 여러 사람들과 와족의 소차를 똑같이 흉내내며 만들어 마셔본 경험이 있다. 찻잔을 앞에 두고 감상하고 있노라니 그 향기가 360여년 전 명대의 여행객 서하객(徐霞客)을 생각나게 했다.

서하객이 맛보고 감동하여 기록한 태화차

창원의 와족과 함께 봉경현의 소수민족인 이족(彝族), 태족(傣族) 사이에서는 예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독특한 음다 습관이 있다. 그 이름은 백두차(百抖茶)라고 한다. 백두차는 작은 토관을 이용하여 정성스러운 절차를 거쳐 마시는 공부차(功夫茶)이다. 봉경현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주인은 물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토관을 화당(火塘)이라는 화로불 위에 얹어 데운다. 토관이 데워지면 여기에 찻잎을 넣고 찻잎이 토관 안에서 골고루 익혀지도록 100번 이상 신속하게 흔들어 준다. 잘 흔들어 찻잎이 황색으로 변하도록 구워지고 그 익은 향이 코를 찌를 때, 끓는 물을 토관에 8부만 차도록 붓는다. 토관 안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차탕이 거품이 일도록 끓으면, 다시 여러 번 물을 첨가하여 붓고 반복해서 끓인다. 차향이 지속적으로 퍼져 나오면 비로소 ‘백두차’가 완성된다. 백두의 ‘두(抖)’는 털고 흔들어 준다는 의미로, 차를 만들 때 백번을 흔들어주며 차를 굽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토관을 흔들어 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토관이 화로의 불길에서 떨어지면 안되고, 찻잎이 토관 안에서 고르게 열이 전달되어 익도록 하되, 설익어도 안되고 태워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만든 백두차는 떫고 쓴맛이 제거되어 그 맛이 부드럽고 진한 향기가 넘쳐 흐른다. 이것이 바로 명나라 때에 서하객의 눈에 비친 봉경 소수민족의 전통 음다방식의 ‘태화차’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차를 가리켜 공이 많이 들어가는 공부차라고 한다.

서하객이 봉경 마장촌에 도착한 뒤 매씨 노인 집에서 대접받은 차는 바로 백두 방식으로 만든 태화차였다. 그는 이 차를 마시고 감동하여 이를 [서하객유기]에 기록하였다. 서하객은 30년간 걸어서 중국을 여행한 지리학자이다. 유람생활 중에 중국 각지의 산해진미를 접하여 보았겠지만 오로지 ‘매노인의 태화차’만을 여행기에 남긴 점이 놀랍다. 문화여행의 열풍이 부는 오늘날, 봉경의 최초 명차 역시 서하객을 통해서 유명해졌다. 명대의 서하객이 마신 백두차는 오늘날의 토관차, 관고차와 매우 흡사하고 백족의 삼도차와도 흡사하다. 앞서 살펴보았듯 토관 자체는 매우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토관을 통해서 명대의 백두차와 태화차가 있을 수 있었고 와족의 왕랍차, 뢰차 등 임창에서 나오는 고수차들은 천년을 내려오며 지금도 토관 안에서 그 특유의 향기를 품어낸다.

운남의 차가 처음으로 문헌상에 자세히 기록된 것은 당나라 사람 번작(樊绰)이 남조국의 9대왕 세륭(世隆, 859~877) 때 지은 책 [만서(蛮书)]를 통해서이다. “차는 은생성(银生城) 관할의 여러 산에서 나오는데 흩어져 거두고 특별한 제조법이 없다, 몽사만(蒙舍蠻)은 산초, 생강, 계피와 함께 끓여 마신다”라고 번작이 기재한 것은, 오늘날 임창에 속해있는 운현(雲縣), 망회(忙懷), 차방(茶房), 임상(臨翔), 마태(馬台) 등의 토착민들이 아직까지도 차와 함께 혼합하여 음용하는 생강(薑茶), 호미차(糊米茶), 탕차(糖茶), 염차(鹽茶)들과 그 방법이 딱 들어맞는다. 이것은 당시 운남에 차를 따서 만드는 세련된 가공기술은 없었지만 이미 차가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남조시기 은생성에서 생산되고 대리지역 몽사만이 이용한 차는 당연히 운남에서 자란 대엽종 찻잎임이 분명할 것이다.

임창이 보이차의 원료 공급지로 머물렀던 까닭은?

임창(臨滄)은 야생차나무의 원산지이다. 그리고 재배차의 천국이라는 말처럼 각종 우수한 재배고차수 종자가 심겨져 녹색의 왕국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창의 고차수는 완제품으로 상품화되거나 공차로 선정되어 외지로 팔려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청나라 때 서쌍판납 지역의 고차산들은 황실의 공차를 만드느라 바빴고, 보이시는 이 차들을 관리하고 마방에 실어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나 청나라 황실로 보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임창의 훌륭한 찻잎들은 왜 원료로만 주변지역에 공급되었던 것일까?

갓 딴 맹고종 찻잎. 우수한 보이차 종자 유전자를 보유한 임창시이지만, 보이시나 서쌍 판납에 비해 차의 상품화와 유통에 소극적이었다. 임창시는 왜 훌륭한 찻잎을 보유하고도 원료 공급지에 머물렀던 것일까?

임창시를 통과하여 흐르는 란창강은 운남에서만 1200km를 흘러가고 임창에서 80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줄기로 나뉘어 여러 지역으로 흘러들어간다. 임창은 높은 산과 협곡이 대부분으로 한번 외지로 나갔다 하면 수십일, 심지어는 한 달이 걸리기도 하였다. 임창의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이족, 와족 등은 언어와, 신, 종교가 다른 까닭에 민족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각 마을마다 치안이 좋지 않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그 한 예로 와족은 무시무시한 수렵생활을 하던 민족인데 농사를 지을 철이 돌아와 파종 시기가 되면 중무장을 하고 사람을 사냥하기 위해 마을 밖을 나선다. 길 가다가 첫 번째 마주치는 사람을 만나면 생포하여 죽이고 머리를 잘라 대나무 바구니에 넣어 높이 걸어 제사를 지냈다. 인두제는 지금은 법으로 금지하여 사라졌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차 상인들이 넘지 못할 장애였다. 또한 란창강의 물이 수위가 높아지면 교통이 두절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근대에 들어서 차나무의 손쉬운 재배가 발달하면서 깊은 원시림 속의 차나무는 자연히 방치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임창의 고차원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원료공급지로만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서며 임창 지역의 차는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운남의 보이차를 대표하는 하관차창과 맹해차공장도 임창차의 원료를 사들이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하였다. 눌림이 좋은 보이 타차(沱茶)는 반드시 임창(臨滄) 찻잎이어야 한다는 소문은 예부터 있어왔다. 하관차창은 임창의 차를 사들여 사발모양의 타차를 만들고 대리지역의 백족은 이 타차를 이용하여 삼도차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임창시 차 시장의 근황

임창시에서 재배되는 빙도고차수는 600년의 오랜 재배 역사를 자랑한다. 그 씨앗은 중국 각지로 퍼져나가 우량 품종으로 인정받았으며, 2012년에는 모차가 6000위안까지 거래되었다.

임창에서 재배된 대표적인 차는 맹고대엽종 차엽(勐库大叶种茶叶)이다. 빙도(冰島)고차원은 이미 600년의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다. 쌍강의 맹고진에서 생산되는 맹고 고차수는 일찍이 그 씨앗이 중국 각지로 퍼져나가 가장 유명한 국가급 우량품종이 되었고, 그 차의 원료로 만든 맹고 보이차 또한 차엽 시장에서 가장 고급차로 팔려나간다. 그중 맹고 보이차 생산량은 년간 4000톤 이상에 이른다. 2012년 맹고의 빙도차는 1kg의 모차가 6000위안까지 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중국의 가장 유명한 명차에 들지 못하고 그 명차들에 비해 가격이나 품질이 저평가되었던 임창의 보이차의 위상을 맹고 빙도차가 모두 불식시키며 차엽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임창시의 보이차는 원료공급지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를 향해 발전해 나가고 있다. 벌써부터 맹고대엽종 찻잎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품질의 유명세를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 가운데 미국 AAM허브 그룹의 경우 중국 현지의 여러 회사들과 합작하여 임창에 ‘세계 고차곡 관광지구’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들은 맹고대설산 협곡의 풍경을 배경으로 설산의 원시삼림생태, 차의 원산지문화, 각 소수민족의 차와 풍속문화가 주체가되는 관광구를 만들어 쌍강 맹고지역을 차 산업지구로 키워나갈 것이다.

임창에는 1만년 전부터 토착민이 거주하였고, 구석기 시대에는 란창강(瀾滄江) 상류지역에 복족이라는 민족이 출현하여 차를 발견하고 재배하여 왔다. 그들의 후손들이 봉경의 3200년 인공재배 차왕수를 길러내고 또 그 후손들이 재배차나무의 천국을 임창의 대지위에 남겨 ‘만차 귀종’이라는 이름과 ‘보이차 종자 유전자은행’이라는 칭송을 받게 만들었다. 맹고 고차곡 관광구에서 소수민족이 이 지역 맹고대엽종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를 작은 토관안에서 구워주는 고차(烤茶), 소차(烧茶), 죽통차를 마시며 제2의 서하객이 되어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오영순
중국과 대만 등지의 차산을 120회 이상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차를 연구하며 인사동에서 차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생생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보이차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원광대학교 예다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발행201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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