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만이 아니라 정부에서도 차 생산을 집중 관리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시대에 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장인집단들의 행정 구역인 ‘다소(茶所)’가 21개소나 기록되어 있다. 장인들에 의해 차가 전문적으로 생산되었던 만큼, 차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또한 차 마실 때 필요한 각종 다구(茶具)와 다기(茶器)의 제작이 왕성해져 자기(瓷器)문화도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차를 파는 다점이 있었다 요즘 거리에는 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차를 파는 다점(茶店)이 많았다. 왕실과 사원을 중심으로 유행한 차 문화는 민간으로도 널리 퍼져 일반 백성들도 돈이나 물건으로 차를 사거나 마실 수 있었다. 차의 생산이 많아지면서, 차가 대중화되었던 것이다. 996년 성종이 철전(鐵錢- 금속화폐)을 만들어 보급하자, 1002년에 한언공(韓彦恭, 940〜1004)은 상소를 올려 화폐 유통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목종(穆宗, 997〜1009)은 “다점, 주점(酒店), 식미점(食味店- 고려시대의 상점) 등의 점포에서 전과 같이 화폐로 교역하는 외에는 일반 백성의 교역에는 베와 쌀을 사용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고려시대에 다점은 주점과 더불어 일반 백성들이 작은 돈을 갖고 가서 흔하게 이용하는 곳이었다. 고려의 길에는 관리 등이 쉬어갈 수 있는 역원(驛院)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차가 유명한 원을 다원이라고 했다. 다원에서는 기녀가 차를 달여 내오기도 했으니, 국영 다방이었던 셈이다. 차례는 차를 올리는 의식
매년 설날이나 추석에는 조상님께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내는 차례를 지낸다. 본래 차례(茶禮)는 뜻 그대로 차를 신이나 조상님께 올리는 의식이었다. 신라 충담사의 경우 미륵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공양을 했다. 차는 궁중음식으로도 각광을 받아, 국가 의식에서는 차를 올려는 진차의식(進茶儀式)이 따랐다. 진차의식은 술과 과일을 임금에게 올리기 전에 임금이 먼저 차를 청하면 신하가 차를 올리는 것이다. 고려시대 연등회, 팔관회 등에서 진차의식이 행해졌고, 사신이 왔을 때, 왕자의 책봉이나 공주를 시집보낼 때 등의 의식에도 차례가 행해졌다. 차 소비의 감소 차례에 차를 대신해 술을 올리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 차의 생산량이 크게 줄어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이었다. 조선이 불교를 배척한 탓에 사찰의 재정형편이 나빠지면서, 사원 주변에 있던 많은 차밭이 관리가 안 되어 차의 생산이 줄어들었다. 또 1480~1750년까지 기온이 크게 떨어진 소빙기를 맞이해 차 생산이 잘 되지 않기도 했다. 전북의 고부(정읍시), 고창, 무장(고창군) 등은 조선시대 차 산지 가운데 가장 북쪽인데, 17~19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간 차 생산을 볼 수 없었다. 차나무는 기온이 -13℃ 이하로 떨어지면 추위 피해(寒害)를 입게 된다. 따라서 기후가 추워지면 작황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청나라에 공물로 보내는 차의 수량이 늘면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차에 대한 세금은 늘어났다. 그러자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을 내야하는 차 생산을 더욱 기피하게 되었다. 양반들도 차에 대한 세금 때문에 차를 마음대로 마시지 못한다고 할 정도였다. 차 한 홉과 쌀 한 말, 차 한 말과 무명 30필을 바꿀 정도로 차의 가격이 비싸지면서 결국 차의 소비량이 줄고 말았다. 차 문화의 중흥 차 문화가 중흥하기 시작한 것은 기온이 다시 높아지고,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와 같은 인물들이등장하면서부터다.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중 차를 즐기기 시작하여 차와 관련한 많은 시를 남겼다. 초의선사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통달하여 당시의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동다송(東茶頌)’등을 지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주장했다. 또 1785년경에는 이덕리(李德履, 1728~?)가 차에 관한 한국 최초의 전문 저작인 [동다기(東茶記)]를 짓기도 했다. [동다기]는 차의 효능을 설명하고, 차 사업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여 차를 중국에 수출하며, 그렇게 얻은 수익을 국방 강화에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한국의 차 문화는 ‘다례(茶禮)’라 한다. 일본의 ‘다도(茶道)’, 중국은 ‘다예(茶藝)’는 크게 보면 모두 예절을 지키고, 차를 마시는 일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는 행위를 일컫는다. 다례는 차를 매개로 하여 스스로의 몸을 다스리고, 상대를 배려하며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을 외부로 드러내는 행위를 다례의 기본으로 삼는다. 차를 마시는 풍습은 오랜 세월 우리 겨레에게 사랑을 받았다. 차를 마시는 풍습은 19세기 들어 다시 되살아났지만, 일반화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의 보급은 1970년대 후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해, 1990년대 이후 건강식품으로 저변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차의 종류도 많아지고, 품질도 좋아졌으며, 생산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2011년 발표된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평균 마시는 차와 커피 소비량은 60g 대 1,800g으로 그 차이가 크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차 문화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류건집, [한국차문화사 상, 하], 이른아침, 2007;이기윤, [다도], 대원사, 1997;오미정, [차 생활 문화개론], 하늘북, 2008;이현숙, [조선시대 차산지 연구(소빙기를 중심으로)], [韓國茶學會誌] 9-2호, 한국다학회, 2003;이태진 [소빙기 자연재해와 전란의 피해], [한국사] 30권, 국사편찬위원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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