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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월드컵은 축제다. 한국의 거의 모든 팬들은 월드컵을 감독의 입장에서 경건하고 분석적으로 보지만 말이다. 축제에는 빠질 수 있는 게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맥주다. 소주는 너무 독해 경기에 집중하기 어렵고, 막걸리는 브라질 시차에 어울리는 주종이 아니다. 괜히 ‘치맥(치킨+맥주)’라는 공식이 나오는 게 아니다. ‘풋볼리스트’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하는 나라에서 생산된 맥주를 모아 ‘2014 맥주월드컵’을 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편집자주>
각국 대표 선발전
어떤 스포츠든 그 스포츠의 강국에서는 국제대회보다 국내대회가 더 어려운 법이다. 한국에서 양국 국가대표가 되는 일과 브라질에서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맥주의 풍미를 좀 내는 나라 치고 하나의 맥주가 몰표를 받는 일은 드물다. 이번 기획을 진행하면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맥주의 강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일본 등에서는 몇 종류의 수준급 제품이 쏟아졌다. 결국 ‘풋볼리스트’는 복수의 맥주를 출품한 나라들의 대표선발전을 급조했다. (*블라인드테이스팅을 처음 한 ‘풋볼리스트’ 직원들의 기준은 종잡을 수 없었다. 이들의 선택에 논리를 들이대지 마시길!)
가장 치열했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지닌 일본에서는 삿포로, 기린 그리고 선토리가 명함을 내밀었다. 삿포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회사이고, 기린은 깊은 맛을 앞세워 마니아 층을 양산한 업체 그리고 선토리는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다. 세 선수의 대결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블라인드테이스팅이 낯선 ‘풋볼리스트’ 직원들은 우왕좌왕하다 맛 혹은 익숙함 그도 아니면 시원함에 투표했다. 결과는 기린의 압승이었다. 삿포로와 선토리는 브라질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맥주순수령을 준수하는 독일과 다른 의미의 맥주천국인 벨기에 예선전도 치열했다. 밀맥주 혹은 화이트비어로 불리며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호가든과 부드러운 목 넘김과 균형 있는 맛으로 인기를 끄는 스텔라가 대결했다. 접전 끝에 호가든이 승리했다. 한편 호주에서는 빅토리아비터가 포스터스와 쿠어스를 눌렀고, 미국 대륙에서는 월드컵공식맥주 버드와이저가 밀려를 힘겹게 따돌렸다. 그리고 맥주강국 네덜란드에서는 하이네켄이 복병 그롤쉬에 덜미를 잡혀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국가대표이지만, 월드컵 초대장을 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고국의 월드컵 진출 실패로 맥주도 타격을 받았다. 아시아 최고의 맥주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중국의 칭다오는 계속해서 축구와 인연을 맺어왔다. 덴마크 최고의 맥주로 평가받는 칼스버그도 발을 동동 굴렀다.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면, '풋볼리스트'가 주최하는 맥주월드컵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이들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본선 14강 토너먼트
가장 먼저 벌어진 단판 승부는 포르투갈의 자랑 슈퍼복과 치열한 호주 선발전을 거친 비토리아비터의 대결이었다. 슈퍼복은 라거(lager)치고는 조금 높은 5.6도인 포르투갈 대표 맥주다. 둘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비토리아비터의 좀 더 특색 있는 맛에 몰표가 쏟아졌다. “특별한 맛”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사실 이 대결이 벌어진 시점은 포르투갈이 조별리그 탈락 전이었다. 포르투갈은 이래저래 운이 따르지 않았다.
다음은 하이네켄을 제치고 올라온 네덜란드의 그롤쉬와 한국 카스의 대결. 맥주 강국인 네덜란드의 선전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카스의 승리. 블라인드테이스팅에 참여한 이 중 몇은 카스의 맛을 인지하고 ‘애국적’인 투표를 했고, 다른 이들은 익숙함 맛에 한 표를 던졌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의 그롤쉬는 한국의 ‘매운맛’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진 대결은 스페인의 에스트렐라(바르셀로나 지역)와 멕시코의 자부심 코로나. 접전 끝에 에스트렐라가 승리를 거뒀다. 심판관으로 나선 여성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코로나 보다 부드러운 맛을 지닌 에스트렐라가 여심을 잡았다. 멕시코는 6대회 연속 16강에 올랐지만, 코로나는 조별리그 탈락한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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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린과 독일 벡스의 진검승부는 사무라이의 승리로 끝났다. 기린의 조금 육중한 맛이 벡스의 산뜻함을 눌렀다. 이 승부의 심판관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좀 더 풍부한 맛을 내는 맥주를 골랐다고 한다. 기린은 치열한 일본 선발전에 이어 또 한 번의 어려운 대결을 승리로 이끌며 다음 라운드로 향했다.
프랑스의 크로넨버그(크로낭부르)와 러시아의 자존심 발치카. 크로넨버그가 선택을 받았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청량감이 좋아 많은 선택을 받았다. 물론 크로넨버그가 출력이 좋지 않은 ‘풋볼리스트’ 냉장고의 안쪽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었다. 의심은 금물! 필자는 프랑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이다.
잉글랜드의 런던프라이드와 벨기에 호가든의 승부는 호가든의 승리로 끝났다. 눈은 가려도 런던프라이드와 호가든의 차이를 숨길 수 없었던 바, 호가든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입을 모아 승부를 결정지었다.
마지막 맞대결인 미국 밀러와 이탈리아 페로니의 승부는 팽팽했다. 결국 블라인드테이스팅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 참가자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밀러가 8강(혹은 7강) 티켓을 잡았다. 밀러가 더 익숙했다는 후문이다.
챔피언 맥주는?
좀 더 경쟁이 치열했던 왼쪽 대진표에서는 스페인의 에스트렐라가 일본의 기린 그리고 한국의 카스를 연달아 꺾고 결승에 올랐다. 에스트렐라는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세워 계속되는 시음으로 점점 맥주의 쓴맛에 혀를 내두르던 심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색이 큰 맥주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향해야 했다.
오른쪽에서는 밀러가 청량감을 앞세워 크로넨버그를 물리치고 올라온 호가든을 넘어섰다. 밀러는 미국 맥주 특유의 수월한 목넘김으로 유럽의 자존심을 꺾었다. 밀맥주보다는 더 익숙한 라거가 점수를 많이 받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렇게 치러진 결승전에서는 에스트렐라가 우승을 차지했다. 에스트렐라는 한결 같은 평가로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모든 대결을 지켜본 필자는 월드컵이기에 시음에 참가한 이들이 미국보다는 스페인을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우승한다고 맥주가 상을 받을 리는 만무하다.
맥주 우승국을 가린 후, 월드컵이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결과는 맥주 부문에서 우승한 스페인의 조기탈락. 특히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많은 스페인 대표팀이여 너무 슬퍼하지 마시길. 맛있는 에스트렐라를 생맥주로 드시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시라! 축구는 계속된다.
글= 류청
그래픽= 조수정
취재협조= 사브밀러, 삿포로맥주, 하이네켄코리아, 칼스버그, 칭타오, 오비맥주, 하이트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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