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독일군의 공습으로 등화관제(燈火管制) 조처가 취해진 파리의 어느 한 모퉁이.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연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성냥을 켠다.
밤중에 하나씩 불붙인 성냥 세 개비
첫 성냥은 얼굴을 보려고
둘째 성냥은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입술을 보려고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다.
그대를 품에 안고
이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 1900~1977)의 [밤의 파리]이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프랑스판을 보는 듯하다. 안데르센의 ‘소녀’는 별빛 하늘로 올라갔지만, 프레베르의 ‘남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사랑도 의식(儀式)처럼 행할 때 온몸으로 기억할 수 있으리라. 파리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파리의 얼굴을 그리고, 파리의 두 눈을 바라보고, 파리의 입술을 지나가고, 그 다음엔 파리의 야경을 품으면 어떨까.
파리를 보려거든 몽마르트르에 오를 일이다.
파리의 얼굴을 그렸거든 샹젤리제를 지나 루브르와 노트르담에 갈 일이다.
파리의 두 눈을 보았거든 어스름 내릴 녘 센 강을 유람할 일이다.
파리의 입술을 스쳤거든 석양을 따라 에펠 탑에 오를 일이다.
어둠이 내리면 이 모든 것을 기억하라고
파리는 별처럼 빛을 총총 뿜을 것이다.
파리를 품은 몽마르트르, 혁명과 예술도 품다
몽마르트르는 작은 언덕이지만 꿈꾸는 인간 군상을 품고 있다. 순교자, 혁명가, 가난한 화가…. 그들의 얼굴을 보려거든 몽마르트르에 올라야 한다.
몽마르트르는 ‘군신(軍神) 마르스의 언덕(Mont de Mercure)’을 의미하기도 하고,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름이 뜻하는 대로 이 언덕에서 2월 혁명(1848) 이전에는 수많은 정치 집회가 열렸고, 272년에는 성(聖) 도니와 제자 2명이 순교하였다.
언덕 위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의 계단은 관광객과 파리지앵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언덕은 해발 130m에 불과하지만 성당 아래로 파리의 화려한 시가지가 펼쳐진다.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성당이 노트르담 성당이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바치는 성당이 마들렌 성당이라면 성스러운 마음, 즉 성심(聖心)에 바치는 성당이 바로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에서 프랑스가 패한 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기리고, 혼란스러워진 사회를 성심으로 회복하기 위해 기금을 모아 지어졌다. 특이한 점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이 대성당에 모두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옆으로 돌아서면 또 하나의 유서 깊은 성당이 나타난다. 여행자들은 흔히 사크레쾨르 대성당만 관람한 후 생 피에르 성당을 지나쳐 가난한 화가들의 아지트인 테르트르 광장으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생 피에르 성당을 놓치면 중세와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소박한 아름다움도 놓치게 될 것이다. 생 피에르 성당은 파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성 드니가 3세기에 생 피에르 성당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신부는 생 피에르 성당의 은촛대를 훔친 장 발장을 돌려보내며 당부의 말을 건넨다. “촛대를 판 돈은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사용하시오.” 새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장 발장은 자베르 형사에게 쫓기며 한 마을의 시장(市長)으로 신분을 감추며 살아가고, 팡티느의 어린 딸 코제트를 양딸로 삼아 키운다. 코제트는 마리우스라는 젊은이와 사랑에 빠지지만 공화주의자였던 마리우스는 혁명에 가담한다. 장 발장은 부상 입은 마리우스를 구출하고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장 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재산을 넘겨주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이 아니라 민중이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에 항거한 1832년의 6월 봉기다.
생 피에르 성당의 왼쪽 길로 접어들면 화가들의 골목이 나타난다. 무명 화가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가난한 화가는 예술만을 향해 나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에 모여들어 인상파·상징파·입체파 등의 예술운동을 꽃피웠다. 남쪽 언덕 아래 유서 깊은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물랭루주 등 유명한 카바레들이 들어서 있다. 로트레크는 몽마르트르 주변의 술집과 유곽을 소재로 [물랭루주], [유곽의 여인]을 그렸다.
몽마르트르는 성심, 혁명, 예술이란 3박자에 이율배반적인 환락까지 갖췄다. 종교와 역사와 미술의 숨결이 흐르는 몽마르트르, 파리의 얼굴이라 할 만하다.
성모 마리아를 위한 ‘노트르담’, 막달라 마리아를 위한 ‘마들렌’
런던은 템스 강 상류에 세워진 도시이지만 강의 유량이 연중 일정해 꽤 큼직한 배도 런던까지 올라갈 수 있다. 파리도 센 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지만, 강이 얕고 좁아서 큰 배는 파리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작은 배만 지나다닐 수 있다. 센 강은 파리를 가로질러 흐른다. 정확히 말하면 파리를 지나다가 중간에 꺾이기 때문에 파리를 굽어서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센 강 안의 작은 섬 시테에는 대성당이 있다.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존칭이 붙은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치는 성당이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수백 년 전에 돌로 지은 건물이다. 전면에는 탑 두 개가 서 있고, 가운데에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듯한 모양의 첨탑이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이 황제의 관을 쓴 곳으로 유명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에만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쳐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랭스․스트라스부르․아미앵에도 있고 캐나다 오타와, 베트남 호찌민에도 있다.
노트르담 지붕 끝에는 돌로 만든 이상한 동물이 빙 둘러앉아 있다. 새이기도 하고 네발짐승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이 기괴한 동물을 ‘가고일(Gargoyle)’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가고일을 최대한 흉측하게 만들어서 지붕 끝에 올려놓으면 악귀를 몰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파리에는 성경에 나오는 또 한 사람의 마리아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바치는 유명한 성당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 성당을 ‘막달라(Magdalene)’의 프랑스식 표현인 ‘마들렌(Madeleine)’이라고 부른다. 마들렌 성당은 노트르담 성당보다 훨씬 이후에 지어졌는데도 건물이 더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고대 신전을 짓던 양식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마들렌 성당 건물에는 창문도 없고 탑도 없고 첨탑도 없고 둥근 지붕도 없다. 단지 성당 외벽에 돌기둥이 둘러서 있다. 외벽의 한쪽 구석에는 머리가 없는 성 누가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의 머리가 왜 없을까? 전쟁 중에 독일군이 쏜 포탄에 맞아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박물관으로 변신한 궁전, 루브르
파리에서는 옛 궁전을 박물관이나 미술관, 도서관 등으로 개조해 쓰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도 본래는 가장 아름다운 궁전 중 하나였다. 나폴레옹 3세가 루브르에 머물렀을 때의 모습이 루브르 박물관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원목과 황금으로 장식된 나폴레옹 3세 처소(Appartements Napoléon III)의 거실과 수많은 방은 실내 인테리어의 극치를 보여준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값진 그림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언젠가 도난당한 적이 있었다. 어디에서도 팔거나 전시할 수 없는 그림을 누군가가 훔쳐 간 것이다. [모나리자]는 도난당한 지 두 해가 지난 1913년에 범인이 미술품 거래상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루브르 박물관으로 되돌아왔다.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이전 사람들은 여러 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양한 신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조각상 두 점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하나는 대리석을 깎아서 만든 비너스 여신의 조각상이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조각상은 에게 해의 밀로(메로스) 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기 때문에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하나는 날개를 한껏 펼친 천사처럼 생긴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이다. 에게 해 북동쪽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에서 발견되어 [사모트라케의 니케(Victoire de Samothrace)]라고 불린다. [밀로의 비너스]는 양팔을 잃고,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머리를 잃었지만 두 조각상 모두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을 거닐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과 대화하는 설렘을 경험하게 된다. 이 세상 최고의 보물들과 함께하는 호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에서, 비너스와 니케는 그리스에서, 함무라비 법전은 이란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왔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수많은 남의 나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만 남의 것을 전시해 비싼 입장료까지 받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보물을 소유하는 나라는 프랑스이지만 진짜 주인은 입장료를 주고 박물관에 들어가서 그 보물을 향유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천국의 뜰’ 샹젤리제 거리
태양이 빛날 때나 비가 내릴 때나, 한낮이나 한밤이나,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샹젤리제에 모두 있답니다.
어제 저녁에는 모르던 두 사람이 오늘 아침 거리에서는
긴 밤 지새우며 마음을 빼앗긴 연인이 되었지요.
……
샹송 ‘오 샹젤리제(Aux Champs-Elysees)’의 노래 가사대로라면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질 것 같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으로 유명한 샤를 드골 광장까지 뻗어 있는 1,880m의 직선 도로.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가 당신을 개선장군으로 맞이하려는 듯 도열해 있다.
‘불바르(Boulevard)’는 프랑스 어로 넓은 가로수 길을 뜻하고, ‘아브뉘(Avenue)’는 큰길을 뜻한다. 파리에는 수많은 가로수 길이 있는데, 샹젤리제는 파리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꼽힌다. 샹젤리제는 ‘천국의 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가 지는 곳을 향해 뻗어 있는 가로수 길의 모습이 마치 천국의 길처럼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1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출처: (CC) Rodrigo Menezes @ wikimedia commons> 2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상징하는 개선문. <출처: (CC) 최광모 @ wikimedia commons> |
콩코르드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다. 콩코르드 광장 한가운데에는 끝이 뾰족하고 높은 돌기둥으로 된 기념탑이 있다. 이 탑을 ‘오벨리스크(Obelisk)’라고 한다.
샹젤리제 거리의 다른 쪽 끝에는 거대한 문처럼 생긴 아름다운 아치가 있다. ‘개선문(凱旋門)’이라는 이름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문이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개선문 아래로는 자동차든 뭐든 지나다닐 수 없다. 개선문 아래의 포장도로 밑에 프랑스의 무명용사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묘지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꽃이 타오른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프랑스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1998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주최국인 프랑스가 우승하자, 개선문 부근의 샹젤리제에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프랑스가 이처럼 100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거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에서는 폭동이 자주 일어났다. 폭동을 일으킨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친 채 저항했다. 나폴레옹 3세는 이러한 저항을 막기 위해 넓은 도로를 만들었다. 도로를 넓게 확장하면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처음 도로를 확장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후 샹젤리제 거리는 세계 곳곳의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억을 수놓는 센 강, 파리의 밤을 껴안는 에펠 탑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르네.
……
날이 가고 달은 가는데
가버린 시간도 떠나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여기에 머무네 - [세계의 명시], 리베르, 2004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27세에 연인과 헤어진 후 쓴 시 [미라보 다리]다. 센 강은 흐르는데, 세월도 흐르는데, 시인의 마음은 여전히 미라보 다리에 머물러 있다. 한 시인의 애절한 목소리가 미라보를 파리의 상징처럼 우리의 가슴에 심어 놓았다.
파리 시내를 흐르는 센 강에는 30여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가장 오래된 다리는 1607년에 완공된 퐁 뇌프이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는 1900년에 만들어진 알렉상드르 3세교가 꼽힌다.
어스름한 햇살이 센 강의 다리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할 때 유람선에 몸을 싣고 센 강 가운데를 흘러가노라면, 파리의 입술에 오랫동안 입맞춤하는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파리의 센 강 유역에는 에펠 탑이 있다. 에펠 탑의 높이는 약 300m이다. 네 개의 높은 철제 다리가 탑을 받치고 있다. 에펠 탑은 마치 거인이 도시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선 것처럼 당당하다.
파란 하늘이 검은 색조를 띠기 시작하면, 거인은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거인의 위에 올라서면 파리는 낮에 응축해둔 빛을 발산한다. 밤의 파리는 그제야 모든 기억을 끌어안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그림과 아름다운 조각상과 아름다운 건축물을 사랑한다. 파리에는 에펠 탑과 몽파르나스 타워를 제외하고는 초고층 건물이 거의 없다. 파리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시민들이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 데다 법으로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의 토양은 주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반암 상태에서 석회암은 부서지기 쉬워 고층 건물뿐만 아니라 댐을 건설하기도 어렵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던 이유
파리에서 기차로 40분 정도 달린 후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베르사유 궁전이 드넓은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는 루이 13세가 사냥용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루이 14세가 증축하였다.
1 루이 14세의 모습이 그려진 부조. 전쟁의 방에 전시되어 있다. <출처: (CC) Coyau @ wikimedia commons> 2 루이 15세가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그림. 전쟁의 방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평화의 방에 걸려 있다. <출처: (CC) Coyau @ wikimedia commons> |
‘거울의 방’, ‘루이 14세의 방’, ‘전쟁의 방’, ‘평화의 방’ 등이 화려한 내부 장식을 한껏 뽐낸다. ‘전쟁의 방’ 내부의 타원 모양 부조에는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에는 유럽의 평화를 확립한 루이 15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짐이 곧 국가’라는 절대 왕정의 모습이 각종 장식품에 잘 드러나 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궁전의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진 상태이다. 하지만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 부분은 오늘날 역사 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훌륭한 건축물에 냄새나는 화장실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은 볼일이 급할 땐 시종의 도움을 받아 전용 변기에 용변을 보았다.
당시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정원 곳곳에서 용변을 봤다. 보다 못한 궁전의 정원 관리인이 용변을 보는 장소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세웠는데, 사람들은 이 표지판을 ‘에티켓’이라고 불렀다.
하이힐은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길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 신발 굽을 높게 만든 데서 시작되었다. 또한 오물의 냄새를 감추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향수 산업이 발달했다.
근접할 수 없는 신비, 몽생미셸
파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명소로는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의 해변에 떠 있는 작은 섬 몽생미셸을 꼽을 수 있다. 1979년 유네스코는 ‘몽생미셸과 만(灣)(Mont-Saint-Michel and its Bay)’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사이에 있는 몽생미셸 주변의 조수 간만의 차이는 15m에 이른다. 빅토르 위고는 간조 때 6시간 동안 15km 넘게 빠져나가는 조수를 ‘도약하는 경주마’로 비유하기도 했다. 날카롭게 솟아 있는 화강암 노두(露頭, 암석이나 지층이 지표에 드러난 부분)는 모래사장에 둘러싸여 있다가 만조 때에는 섬이 된다.
작은 바위 섬 위에 자리 잡은 몽생미셸 수도원. 위압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강렬하면서도 단순하다. 성 미카엘 상이 있는 탑과 뾰족탑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신비감은 어느새 설렘으로 바뀐다. 지평선 너머 점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몽생미셸이 점차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때는 마치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이전에는 빠른 조류 때문에 접근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900m의 둑길이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있어 섬의 턱밑까지 차가 접근할 수 있다.
8세기에 아브랑슈의 주교인 성 오베르가 꿈에서 대천사 성 미카엘의 모습을 보고 예배당을 세웠다. 이후 몽생미셸은 주요 순례지가 되었고, 966년에는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잉글랜드와의 백년전쟁(1337~1453)과 프랑스 종교 전쟁(1562~1598) 동안 포위 공격을 받으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나폴레옹 치하(1804~1815)에서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국립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섬이면서 육지인 곳, 성이면서 수도원인 곳, 몽생미셸은 참으로 정의를 내리기 힘든 곳이다.
꿈결처럼 아련하면서도 현실처럼 뚜렷한 곳
기사처럼 위압적이면서도 숙녀처럼 우아한 곳
습지로 둘러싸여 있다 바닷물이 속세를 차단하는 곳
낮에는 은빛 물을, 으스름한 녘엔 금빛 물을 융단처럼 깔고 있는 곳
그러다 스스로 빛이 되는 곳, ‘대천사 미카엘의 산’ 몽생미셸.
마음까지 옥빛으로 물들이는 지중해
론 강 유역에는 비단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 리옹이 있다. 론 강은 리옹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서 지중해의 리옹 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리옹 만에 있는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지금은 파리에 밀려나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지만, 파리가 생기기 전에는 프랑스 최대의 도시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배들이 드나드는 거대한 항구 중 한 곳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꽃과 향기로운 풀, 심지어는 잡초에서도 향기를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칸 북서쪽으로 약 10km 떨어져 있는 그라스는 날씨 좋은 휴양지이자 프랑스 향수 제조의 중심지다. 프랑스 향수 몇 병을 만드는 데 넓은 꽃밭 전체가 모두 쓰일 때도 있다.
여름에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지중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면 도시가 텅 빈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휴가가 유난히 길어서 휴가철에는 파리의 주인 없는 개들이 굶어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니스는 대표적인 휴양 도시이다. 아름다운 언덕들이 활처럼 해변을 에워싸며 하늘과 바다를 가른다. 자갈 해변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자갈을 해변에 깐다. 해운대 해변에 모래를 까는 것처럼. 유난히 옥빛을 띠는 바다는 자갈을 쓸어안으며 함께 자글거린다. 니스 주변에는 짙은 에메랄드 지중해를 배경으로 곳곳에 휴양 마을이 들어서 있다. 니스에서는 바다와 자갈의 노래를 들으며 일광욕을 즐기고 싶다.
아름다운 자연과 기후, 역사와 예술을 품은 ‘육각형 미인’ 프랑스. 이방인의 마음을 낭만과 환상으로 물들이는 마법의 땅이다. 하지만 낭만을 즐기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변주를 끌어낼 수 없다면 여행이란 얼마나 공허한 행위가 될 것인가.
몽마르트르에서 파리의 얼굴을 그리고, 미라보 다리에서 파리의 입술을 훔치고, 샹젤리제의 노천카페에서 한 잔의 포도주에 취하더라도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군사박물관인 앵발리드에서는 전쟁을, 상업주의에 물든 프랑스 포도원에서는 농약 포도주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진정한 사랑을 지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습으로 회색빛이 깔린 곳에서도 사랑은 핀다.
네이버 포스트 [이 나라의 랭킹, 순위가 궁금해]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을 Best 5
출 처 : 파리, 베르사유, 몽생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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