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지리산 이야기

[스크랩] 지리산 유감

나 그 네 2015. 9. 1. 12:40

지리산!

내 고향, 내 어머니의 이름으로 설레이는 생명체다. 천석고황의 병처럼 가슴깊이 손닿지 않는 곳에 지리산이 있다. 10여년 전 처음 지리산에 올랐을 때 누군가 내게 이런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내가 “왔노라 보았노라”를 외쳤을 때 오지도 보지도 않았고 잠시 겉모습만 본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생각해봐도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넘어 개선문을 지나 천왕샘터에서 쉬다가 천왕협곡을 헐떡이며 4시간 만에 오르던 기억이 나에게는 너무나 그립고 황홀하다. 삼대에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을 보면서 나는 그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었다.

 

통천문을 지날 때 환호성 한번 지르고 제석봉 고사목을 지나며 바라본 청림의 전설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이름그대로 장터목엔 사람들로 부쩍거렸고 하산길 내내 빙판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다시 한번 지리산을 찾으리라 다짐하며 하산했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그때의 다짐대로 참 많이도 해메고 다녔다. 중간에 대간이다. 정맥이다. 바쁜 핑계로 몇 년 동안 지리산 근처에도 가지 못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지리산을 놓지 않았다. 이제는 이 능선 저 능선 오를 때 마다 또 다른 들머리 날머리를 되짚을 줄 알게 됐지만 여전히 내겐 그날의 첫 산행이 너무나 그립다.

 

산은 그렇게 배워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리산 만큼은 다닌 횟수와 탐승로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배려와 양보, 이해와 협조를 산에서 배운다. 아니 그렇게들 흔히 말한다. “허리 위로 가득찬 욕심과 괘심의 마음이 산을 타면서 허리 아래로 내려와 기운이 솟고 마음이 비워져 화낼 일이 없다”는 어느 산선배의 말씀이 나는 딱 맞다고 생각한다.

 

지리산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한들 지리산 만큼이나 알 수 있을까? 100릉 100골을 다 안다 해도 그게 벼슬은 아니다. 속세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차별받고 괄시도 받지만 적어도 산에서 만큼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향나무는 꽃으로 향을 피우는게 아니라 자기 몸으로 향을 낸다. 사람에게도 향이 있다. 평소에 진정으로 화두를 놓지 않고 정진하는 사람에게서 그사람 특유의 향이 난다. 흙을 사랑하면 숨김없는 농부같은 마음이, 물을 좋아하면 칼날처럼 날카로운 지혜로움이, 시를 좋아하면 온화함이, 그래서 산을 좋아하면 덕이 높다고 하는가 보다. 산은 언제나 아낌없이 주기 때문에.

 

진정 지리산은 “산이 산을 품고 산이 산을 업고 산이 산을 거느리는 어머니같은 존재다”

[출처] 지리산 유감|작성자 산여